K뷰티 열풍의 주인공인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해외원정도박 혐의로 구설에 휘말리게 됐다. 사진은 서울 명동의 네이처리퍼블릭 매장. 일요신문DB
지난 2일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검사 심재철)는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100억 원대 해외 원정도박을 한 혐의(상습도박)다. 검찰은 앞서 지난 9월 30일 정 대표를 소환해 한 차례 조사를 벌였다. 이후 이틀 만에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이다.
검찰은 정운호 대표가 ‘범서방파’ 계열 폭력조직의 소개를 받아 지난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마카오·필리핀·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일대에서 국내 폭력조직이 운영하는 불법 카지노 도박장 ‘정킷(junket)방’에서 100억 원대 도박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킷방은 브로커들이 수수료를 주고 유명 카지노의 VIP룸을 빌려 직접 도박장을 운영하는 형태를 말한다. 특히 정 대표가 참여한 도박은 1회 베팅액이 1억 원이 넘는 거액 도박판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운호 대표.
앞서 지난 8월 정 대표가 해외도박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일부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그러나 네이처리퍼블릭은 이에 대해 강하게 반발한 바 있다. 네이처리퍼블릭 측은 “정 대표는 검찰로부터 어떤 조사 요청이나 통보를 받은 적이 없다”며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대한 보도는 법적으로 대응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회사 측의 이러한 부정에도 불구하고 정 대표의 상습 해외도박은 어느 정도 사실로 밝혀진 것이다.
특히 검찰은 정 대표가 회사 자금을 빼돌려 도박자금으로 사용한 단서도 잡고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개인 돈이 아닌 회사 돈을 횡령해 도박에 이용한 사실까지 드러나면 사건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이에 대해 정 대표는 검찰 조사에서 도박 혐의는 인정하면서도, 횡령 혐의는 극구 부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해외 원정도박 혐의를 받고 있는 정운호 대표는 K뷰티 열풍을 주도한 중저가 화장품 업계에서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1965년생으로 전남 함평 출신인 정 대표는 서울로 올라와 남대문에서 과일과 의류 소매업 등 보따리장수로 장사를 시작했다. 이후 28세였던 지난 1993년 화장품 사업으로 눈길을 돌려 세계화장품을 설립, 자체 화장품 브랜드인 식물원과 쿠지인터내셔널을 만들어 성공시켰다.
정 대표가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2003년 중저가 화장품 매장 ‘더페이스샵’을 설립하면서다. 더페이스샵은 에이블씨엔씨 ‘미샤’와 함께 브랜드숍 열풍을 주도했다. 공격적인 매장 확장 정책을 펴던 더페이스샵은 결국 오픈 2년 만에 미샤를 제치고 업계 1위를 달성했다.
더페이스샵이 업계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자 정 대표는 회사 지분을 LG생활건강과 사모투자펀드 어피니티에퀴티파트너스 등에 매각해 2000억 원 상당의 시세차익을 올렸다.
이후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있던 정 대표는 4년여 만인 2010년 네이처리퍼블릭 지분 100%를 사들이고 대표를 맡으며 화장품 업계에 다시 돌아왔다. ‘자연주의 화장품’이라는 콘셉트로 중국과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등 사세를 키워나갔지만, 초창기에는 실적이 좋지만은 않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국내 화장품 시장이 위축됐고, 화장품 브랜드숍이 과포화된 상태에서 제살 깎아먹기식 할인 경쟁을 시작해 매출은 늘어나도 영업적자를 기록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이익을 포기하고 매출을 늘리는 전략을 이어왔고, 그 결과 지난해 매출 2552억 원에 영업이익 238억 원으로 흑자 전환하는 성과를 기록했다.
이처럼 회사가 안정궤도에 오르며 성장세를 보이는 순간 정 대표는 해외 원정도박이라는 구설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기업공개(IPO)를 준비 중이던 네이처리퍼블릭으로서도 오너리스크라는 악재를 만나 상장 작업에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정 대표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은 6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중앙지법 이승규 영장전담판사 심리로 열릴 예정이다. 하지만 정 대표 측 변호인은 반성한다는 취지로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법원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대표에 대한 구인장을 발부한 법원은 일단 원칙대로 지정된 기일에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검찰은 정 대표 외에도 마카오·필리핀·캄보디아 등 동남아 일대 불법도박장에서 해외 원정도박을 벌인 의혹이 제기된 국내 기업인 5~6명의 신원을 확인,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이에 따라 이들의 혐의와 신원이 추가로 공개될 경우 기업인의 해외 원정도박 사건은 더욱 확대될 가능성도 남아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