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의 재벌’ 삼표그룹이 시가의 2배에 달하는 금액으로 동양시멘트를 인수해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삼표그룹 본사.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잔금 납입을 완료한 삼표그룹은 오는 22일 예정된 동양시멘트의 임시 주주총회 개최 준비에 한창이다. 이 자리에서 대표이사·등기이사 선임을 완료하고 고용승계 문제와 향후 일정 등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 삼표그룹 관계자는 “신임 대표 선정은 아직 정해진 바 없다”며 “내부적으로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는 중이다”라고 밝혔다.
삼표의 ‘일사천리’ 동양시멘트 인수를 두고 업계에서는 크게 두 가지 시선이 존재한다. 갑작스러운 침묵의 반란이라고 보는 쪽이 있는가 하면, 준비된 도전이라는 평도 적지 않다. 반응이 엇갈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데 무엇보다 삼표는 그동안 눈에 띄는 행보를 거의 보이지 않았던 탓이다.
삼표는 건설자재를 생산하는 중견그룹이지만 계열사 모두 비상장사라 시중에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다. 동양시멘트 인수전에서도 최종입찰 결과 발표 직전까지 삼표의 승리를 예상하는 이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으니 ‘깜짝’, ‘반란’, ‘충격’이라는 표현이 붙을 만했다.
하지만 삼표를 자세히 뜯어보면 언제든 ‘화력’을 뿜을 준비가 돼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과거 누렸던 화려한 시절, 재계에서도 손에 꼽을 만한 호화 혼맥, 오너 일가의 탄탄한 자산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삼표의 역사를 살펴보면 지금은 사라진 강원산업으로 연결된다. 1960~1970년대 연탄사업으로 전성기를 누린 강원산업은 1966년 삼표의 전신인 삼강운수를 설립했다. 이후 2000년대 이전까지 레미콘 업계 1위를 놓치지 않으며 승승장구했으나 외환위기 이후 사세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현재는 삼표를 중심으로 10여 개 계열사를 두고 있다. 2014년 기준 한 해 총 매출액 1조 9500억 원, 법인세 이자 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 1300억 원 규모를 기록하고 있다.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
범위를 넓혀보면 정 회장의 형 정문원 전 강원산업 회장은 고 박용오 두산그룹 회장과 동서지간이었으며 아들 대호 씨는 삼양통상 허남각 회장의 장녀 정윤 씨(43)와 결혼했다.
혼맥만큼이나 정 회장 일가의 재산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원도 인제 아침가리 땅을 포함해 전국 각지에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동양시멘트 인수에 사용하기 위해 정도원 회장과 정대현 대표의 부동산을 담보로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으로부터 2800억 원을 대출받았다. 종합해보면 삼표는 언제든 성장을 위한 ‘출격’이 가능한 상태였던 것이다.
하지만 삼표는 끊이지 않는 구설수에 늘 발목을 잡혔다. 특히 지난해에는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킨 이른바 ‘철피아’의 몸통으로 그룹 계열사인 삼표이앤씨가 지목돼 검찰 수사를 받기도 했다. 당시 검찰은 삼표이앤씨 본사와 정 회장 자택을 압수수색을 벌였으며 정 회장과 정대현 대표에게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이뿐 아니라 삼표는 납품 편의 등에 관한 청탁 명목으로 철도시설공단 간부와 정치인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수사를 받기도 했다.
삼표는 2000년대 이전까지 레미콘업계 1위를 놓치지 않았다.
동양시멘트 인수를 준비하던 지난 4월에도 중소기업청이 위장 중소기업으로 고발한 기업에 이름을 올리며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알엠씨, 남동레미콘, 유니콘 등 자회사 5개 공장에 대한 고발이 접수된 것. 중기청의 고발 내용을 보면 삼표는 최근 3년 평균매출액 6369억 원으로 공공조달시장 참여가 제한되자 위장 중소기업을 차려 지난 2년간 252억 원의 관급 납품계약을 따냈다. 삼표그룹 관계자는 “해당 사안은 최근 검찰로부터 증거불충분에 따른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고 반박했다.
올해 초 검찰 수사가 일부 마무리되고 내부적으로도 기업 변화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삼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 결과물이 동양시멘트 인수인데 이러한 변화 중심에는 정대현 대표가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5년 과장으로 입사한 정 대표는 2011년 결혼 전까지 회사에서 근무하며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결혼 직후 정 대표는 아내와 함께 2년 가까운 시간을 학업으로 보내고 2013년이 돼서야 회사에 복귀한 이색 경력을 갖고 있다.
삼표 관계자는 “아직 정도원 회장 밑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있으니 정 대표가 최종 결정권자는 아니다. 하지만 동양시멘트 인수 등 굵직한 사안들을 진행하며 아버지 곁에서 현장을 배우고 있다. 책임감이 강해 지금부터 미래 사업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으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등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며 “동양시멘트 인수에도 해고노동자 복직, 재무구조 개선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지만 차근차근 해결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