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정준양 전 포스코그룹 회장이 9월 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정 전 회장은 1차 소환조사에서 포스코플랜텍의 전신인 성진지오텍 고가 매입 의혹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준필 기자
다른 대기업과 마찬가지로 포스코 그룹도 수많은 기업을 설립하고, 인수했으며 매각도 많이 했다. 하지만 포스코플랜텍과 관련해서는 의미가 남다르다. 현대제철의 고로 완공, 특수강 사업 진출 등을 통해 현대자동차그룹이 이뤄낸 소재에서 완제품까지 수직계열화를, 포스코도 만들기 위해 의욕적으로 인수한 기업이 바로 포스코플랜텍이다.
의도는 좋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포스코플랜텍은 포스코 인수·합병(M&A) 역사상 최대 실패 사례로 남게 됐다. 가장 큰 원인은 경영진의 경영능력 부족, 시장 추이에 대한 이해 부족, 플랜트 사업에 대한 관리 부족 등 여러 ‘부족함’이 종합적으로 엮인 것이다. 인수 과정에서 정치권의 외압이 작용했다는 의혹까지 얹어져 이명박 정부 비리의 주범으로 낙인찍히기까지 했다.
포스코플랜텍은 1982년 제철정비로 설립돼 성진기계, 포철산기에서 성진지오텍으로 이름을 바꾼 후 2010년 포스코에 1592억 원에 인수됐으며 2013년 기존 계열사였던 포스코플랜텍과 통합해 현재의 사명으로 바뀌었다. 포스코의 제철소 및 제강공장 공사에 참여하며 철강 및 비철금속 설비 설치, 공장 건설 등에서 특화를 이뤄낸 포스코플랜텍은 화공, 에너지 해양모듈, 물류, 원자력 발전 등 중공업과 관련한 다양한 사업 활동을 벌이는 종합 중공업업체다.
다른 중공업업체에 비해 회사 규모는 크지 않지만 포스코플랜텍의 사업구조는 대형 중공업업체의 포트폴리오와 유사하다. 바로 이 점이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이 포스코플랜텍을 인수한 이유다.
포스코는 철강 본업에서는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갖고 있다. 그런데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 글로벌 철강업계의 적대적 M&A가 만발하면서 포스코도 외국 세력에 의해 경영권 상실 위기에 처한 바 있다. 다행히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과 제휴하면서 위기를 넘겼으나 이때 포스코는 큰 교훈을 얻었다. 경쟁사의 공세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철강 본업의 경쟁력은 물론이려니와 생산한 철강재를 안정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수요산업을 함께 보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수직계열화는 선진국으로 갈수록 철강업체의 가치가 떨어지는 추세와 중국 등 기업들의 참여로 갈수록 공급과잉 사태로 몰려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반드시 이뤄내야 하는 과제였다. 이와 관련해 포스코가 추진한 것이 대우조선해양 인수였다. 지금으로서는 인수 불발이 도움이 됐으나 당시 대우조선해양을 잡지 못한 것은 포스코에 큰 불안요소가 됐다. 포스코 설립자인 박태준 명예회장조차 안타까워했다는 후문이다.
정준양 전 회장이 부임했을 때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포스코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고로 가동을 중단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반면 같은 시기 현대제철은 고로를 가동했다. 현대제철은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모비스, 현대로템, 현대위아 등 그룹 내 자체적으로 거대한 수요산업을 갖고 있고 범현대가이자 포스코의 가장 큰 고객 중 하나인 현대중공업이 현대제철을 지지했기 때문에 포스코의 위기감은 증폭됐다.
사업을 전개하는 데 위기감과 조급함에 끌리면 상황을 정확하게 보는 판단력이 흐려지게 마련이다. 정준양 전 회장이 중심을 잃고 무리한 사업 확장을 전개한 것은 이러한 조급증 때문이었다는 게 포스코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신성장동력 발굴이라는 명목으로 자전거를 비롯해 전기자동차, 무인궤도차량 등에 손을 대고, 포스코건설과 대우엔지니어링을 통해 쌓은 주택과 건물, 제철소 건설 노하우를 기반으로 육·해상 플랜트 사업을 확대하려 했다. 다분히 현대차그룹을 의식한 것이었다.
2010년 포스코가 포스코플랜텍의 전신인 성진지오텍을 인수한 것은 대우조선해양의 대체재 성격이 강하다. 여기에 2009년 11월 두산중공업이 누려왔던 원자력 발전 주기기 독점 납품권이 끝난 데다 2011년 8월에는 터빈 제너레이터에 대한 독점권이 종료되면서 원전 시장이 돌파구로 여겨졌다. 이에 당시 대부분 중공업업체가 원전 시장 참여를 모색했는데, 성진지오텍은 원전 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정준양 전 회장, 나아가 포스코 입장에서는 성진지오텍을 인수하면 중공업과 관련한 모든 사업에 뛰어들 수 있어 현대차그룹에 버금가는 수직계열화를 이뤄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다. 결국 성진지오텍은 포스코그룹의 일원이 됐고 포스코플랜텍으로 이름을 바꿨다.
문제는 출발할 때부터 벌어졌다. 1592억 원이라는 인수금액이 너무 비싸다는 의혹이 제기된 터에 막상 인수해보니 장부상 드러나지 않은 부실 규모가 컸다는 후문이다. 의아스러운 점은 회사의 부실을 키운 주인공인 전 사주 정전도 전 회장을 인수 후에도 대표이사에 앉힌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실세들과 친분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던 정 전 회장이었기에 회사 인수는 포스코가 정치권의 압박을 이겨내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상황이 어떻든지 간에 회사 경영을 잘하고, 인수 후 실적으로 증명했다면 소문은 그대로 끝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포스코 품에 안긴 포스코플랜텍은 그룹의 지원을 받아가며 구조조정 대신 사업 확장에 나섰다. 선박 구조물을 제작하던 회사가 선박을 건조했으며, 육상에 이어 해양 플랜트 영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조선·해양 플랜트 발주 시장은 이미 하락세로 돌아선 뒤였다. 전 세계적인 불황에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면서 수주물량은 줄고 수주를 해도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에, 대금 결제도 대부분 완공 후에야 받을 수 있는 헤비테일 방식으로 계약했다. 현금이 부족한 포스코플랜텍에는 재앙이었다.
포스코는 포스코플랜텍을 살리기 위해 인수가의 3배가 넘는 5000억 원 이상의 자금을 지원했고, 뒤늦게나마 희망퇴직, 비수익 사업 중단 등과 같은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포스코그룹 출신 경영진들과 기능직 숙련공을 투입해 경영과 생산 부문을 바로잡으려 했다. 하지만 회사는 자본잠식 상태에 몰려 결국 채권단에 워크아웃을 신청하기에 이른다.
포스코플랜텍 인수의 장본인이었던 정전도 전 회장은 구속기소됐고, 정준양 전 회장도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으며, 포스코플랜텍을 비롯한 포스코 비리의 정점에 있는 이상득 전 국회의원도 검찰에 소환된다.
포스코플랜텍 사태는 2018년 창립 50주년을 앞두고 있는 포스코 역사에 가장 치욕적인 인수 실패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조정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