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도시 전설의 중요한 테마 중 하나는 ‘출생의 비밀’이다. 이 분야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인물은 바로 코트니 러브. 록 뮤지션이자 배우이며 비주얼 아티스트인 그녀는, 요절한 록 뮤지션 커트 코베인의 아내로 더 유명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녀의 어머니는 정신과 전문의이자 작가인 린다 캐럴이며 아버지는 출판업자인 행크 해리슨. 할머니는 유명 작가인 폴라 폭스다. 그런데 코트니 러브의 할아버지에 대해선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대신 소문이 돌 뿐이다.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배우로 일컬어지는 말런 브랜도가 바로 코트니 러브의 할아버지라는 것이다.
가수이자 배우인 코트니 러브(록 뮤지션 커트 코베인 아내)가 말런 브랜도의 외손녀라는 소문이 꽤 오래 전부터 돌고 있다.
코트니 러브의 가계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건 가슴 아픈 일이다. 그녀의 어머니 린다 캐럴도, 할머니 폴라 폭스도 모두 어린 시절에 부모에게 버림 받았다. 그 시작은 코트니 러브의 증조부와 증조모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엘시 드 솔라(1902~93)는 쿠바 사람이었다. 그녀는 16세 때 첫 결혼을 했고, 19세 때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폴 하비 폭스라는 미국인 남성과 결혼한다. 남편과 함께 드 솔라도 시나리오를 썼지만, 그들의 작품은 할리우드에서 쓰레기로 평가 받았다. 대신 그들은 사교계의 핵심이었다. 폴 하비 폭스는 당대 최고의 남성미를 자랑하던 스타 더글러스 페어뱅크스와 사촌이었고, 부부는 할리우드 스타들과 매일처럼 파티를 즐겼다. 언젠가는 험프리 보가트가 술에 취한 엘시 드 솔라를 수영장에 빠트린 적도 있었다. 스콧 피츠제럴드와 젤다 커플도 폭스 부부와 절친이었다.
엘시와 폴은 둘 다 알코올 중독자였고, 정돈되지 않은 거친 삶을 살았다. 그런 그들에게 아이가 생겼다. 1923년, 21세였던 엘시 드 솔라는 딸 폴라 폭스를 낳았다. 부부는 아이를 기를 능력도, 자격도, 의지도 없었다. 그들은 미련 없이 갓 태어난 폴라를 보육원으로 보냈다. 보다 못한 폴라의 외할머니는 보육원에서 어린 손녀를 데려와 어느 목사 집안에서 양육시켰다. 다행히 좋은 사람들이었고, 그들의 배려 속에 폴라 폭스는 작가가 될 수 있는 자양분을 쌓게 된다. 이후 폴라는 생모인 엘시와 한두 번 만났지만, 평생 거의 접촉 없이 지냈다.
말런 브랜도
젊은 시절 뉴욕에서 지내던 폴라 폭스에겐 엘렌 애들러라는 절친이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스텔라 애들러. 수많은 배우들을 키워낸 연기 코치였고, 그녀의 학생들 중엔 아직 스타가 되기 전의 말런 브랜도도 있었다. 당시 브랜도는 연기 수련을 하면서 스승의 집에서 기숙을 하고 있었고, 폴라 폭스도 친구와 함께 스텔라 애들러의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었다. 한 집에 기거하는 젊은이들은 곧 친구가 되었다. 이때가 1943년. 그리고 폴라 폭스는 다음 해인 1944년에 딸 린다를 낳는다. 그녀는 누가 아버지인지 밝히지 않았고, 계속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 어린 딸을 입양 보냈다. 당시 브랜도의 사생활은 매우 난잡했는데, 후일 “아마 그때 태어난 나의 자식들이 이곳저곳에서 자라고 있을 것”이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하지만 폴라 폭스도, 말런 브랜도도, 린다의 출생에 대해서, 누가 아버지인지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어머니 린다 캐럴
린다는 샌프란시스코의 이탈리아계 미국인인 잭 리시와 루엘라 리시 부부의 가정에서 성장했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몰랐던 린다는 어머니의 성인 ‘폭스’도, 양부모의 성인 ‘리시’도 따르지 않고, ‘캐럴’이라는 성을 자신의 이름에 붙였다. 그녀에겐 주디 캐럴이라는 절친이 있었는데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 그녀는 친구의 성을 따랐고, 그렇게 그녀는 린다 캐럴이 되었다. 그녀가 자신의 생모가 폴라 폭스라는 걸 알게 된 건 성인이 되었을 때. 하지만 이렇다 할 왕래 없이 지냈다. 린다는 1963년에 출판업자인 행크 해리슨이라는 남자와 결혼했고 1964년에 딸 코트니를 낳았다. 하지만 마약에 절어 살았던 행크는 막 걸음마를 시작한 딸의 손에 환각제인 LSD를 쥐어 주었고, 린다는 이런 환경에서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생각에 이혼하고 1970년에 코트니와 함께 포틀랜드의 히피 공동체에서 생활한다. 재혼했지만 곧 이혼했고, 모녀는 뉴질랜드로 이민을 떠났다. 이런 환경 속에서 코트니는 약간의 자폐 증상이 있는 아이로 성장했고, 성인이 되었을 땐 스트리퍼나 디스크자키 등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다가 뮤지션의 길로 뛰어든다. 그녀의 엄마인 린다 캐럴은 정신과 전문의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코트니 러브가 말런 브랜도의 손녀라는 이야기는 꽤 긴 시간 동안 떠돌았던 이야기다. 코트니나 엄마 린다의 입술이나 턱 부분을 보면 브랜도와 꽤 닮았다는 걸 알 수 있을 듯. 놀랍게도 코트니 러브는 배우 캐리 피셔의 집에서 노년의 말런 브랜도를 만난 적이 있었고, 이때 브랜도의 칫솔을 훔칠 생각도 했다고 한다. DNA 검사를 해볼 생각이었던 것. 하지만 그녀는 실행하지 않았고, 가끔씩 이 사실에 대해 기자들이 물을 땐 “뭐… 뉴욕을 오가던 선원일 수도 있겠죠”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곤 했다.
한편 코트니는 할머니 폴라 폭스를 만난 적도 있었는데, 한 시간 동안의 만남 동안 두 사람은 극도로 껄끄러운 감정을 감출 수 없었고, 이후 재회가 이뤄지진 않았다.
과연 코트니 러브의 할아버지는 말런 브랜도일까? 올해로 92세인 폴라 폭스는 여전히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있고, 브랜도가 세상을 떠난 지금 밝힐 방법은 없으며, 코트니도 더 이상 자신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저 전설이 되어 떠돌 뿐이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