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마다 펼쳐지는 사회인야구 경기 중 포수는 타석에 익숙한 얼굴의 선수가 들어설 때 투수를 향해 이렇게 외친다. ‘선수 출신’이 나왔다고. 그 순간 투수는 물론 포수 뒤에 서 있는 심판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 사회인야구에서의 선출은 ‘잘하면 본전(선수니까), 못하면 피박(선출이 그것도 못하느냐)’이다. 2700여 사회인야구팀 중 선수로 뛰는 일반인들만 50만 명이 넘는다. 물론 선출도 포함돼 있는 숫자다. 그러나 선출 중에서도 프로 출신은 색다른 이미지로 다가간다. 최고의 무대에서 활약하다 은퇴한 까닭에서다. 현재 사회인야구에서 활약하는 프로 출신의 숫자는 정확히 집계되지 않지만 의외로 많다.
OB 출신 문희성(왼쪽)과 SK 출신 신윤호는 사회인야구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이들로 꼽힌다.
통산방어율 4.30, 100승 달성, 18완투승, 6완봉승 그리고 1231탈삼진을 달성했던 포크볼의 달인 이상목(44·한화-롯데-삼성 출신)은 지난 2007년 은퇴 후 ‘탑건설 마에스트로’란 사회인야구팀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다. 그는 건설회사에 재직하면서 회사 야구팀 에이스 역할을 도맡았다. 사회인야구에서도 이상목의 포크볼은 유명했다.
왼쪽부터 이상목, 김상호.
이렇듯 프로 출신이면서 사회인야구에서 뛰고 있는 선수는 한두 명이 아니다. 최근엔 두산 베어스에서 방출된 임태훈이 사회인야구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는 보도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지금은 일본 독립리그에 입단했지만, 한때 두산 최고의 불펜 투수가 개인적인 문제로 프로 생활을 잇지 못하고 사회인야구인의 일원이 됐다는 소식은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현재 사회인야구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는 OB 출신 문희성(42)이다. 선수 시절 그의 별명은 ‘만년 유망주’였다. 195㎝의 키와 110㎏이나 나가는 체중으로 인해 ‘무늬만 용병타자’란 수식어도 뒤따랐다. 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남양주 사회인야구팀의 리더 역할을 하며 팀이 각종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게 이끄는 첨병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더욱이 그는 남양주시에서 ‘명품 볼파크’라는 야구장을 운영하며 사회인야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고 있는 중이다.
“처음엔 나도 사회인야구에는 시선도 두지 않았다. 그러다 ‘안성 드래곤즈’란 팀에서 여러 차례 입단 제안을 해왔고, 계속 거절하다가 마지못해 야구장으로 향했던 게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프로 출신이라고 경기를 대충 하거나 소홀히 하면 비난과 원망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슬라이딩도 더 열심히 했고, 수비도 부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몸을 날렸다. 그 후론 나를 보는 시선들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더라.”
사회인야구 리그에서 프로 출신이라고 해서 무조건 환영해주진 않는다. 야구를 좋아해서 모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야구를 존중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선출도 욕을 먹기 마련이다. 문희성은 그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프로 때처럼 플레이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문희성은 “시합에 나가서 종종 프로 출신들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면서 “서로 얼굴 보면 웃음밖에 나오지 않지만 야구에 대한 미련과 회한이 우리를 사회인야구로 이끈 데 대해선 모두 동의하는 편이다”라고 덧붙였다.
‘혹사’란 수식어를 꼬리표처럼 달고 다녔던 SK 출신 신윤호(40). 2007년 LG에서 방출됐다가 2008년 SK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갔고, 이후 은퇴했다가 입단 테스트 끝에 2014년 SK에서 다시 프로 마운드에 올랐다. 안타깝게도 그의 복귀는 오래 가지 못했지만, 그가 복귀한 배경에는 사회인야구가 자리한다.
“아이들에게 야구를 가르칠 순 있지만, 내가 또 공을 던질 거라곤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사회인야구를 하면서 선수 생활에 대한 욕심이 생겼고, 그 욕심이 SK 입단테스트를 보게 한 것이다. 결국 복귀는 몇 경기 던지지 못하고 마무리됐지만, 사회인야구를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야구는 지도의 의미로만 남았을 것이다. 솔직히 최영필(KIA), 손민한, 이호준(이상 NC) 선수들을 보며 나도 할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을 가졌다. 하지만 사회인야구에서 일주일에 한두 번 공 던진 사람이랑 매일 체계적인 시스템에서 훈련했던 선수랑은 실력 차이가 컸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었다.”
신윤호는 은퇴 후 참치회사에서 영업파트를 맡아 사회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지금은 주류도매 일을 하며 술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가운데 주말마다 사회인야구에 나가 공을 던진다.
“처음엔 내가 사회인야구를 한다고 하니까 이상한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뭐가 아쉬워서 사회인야구 마운드에 오르느냐는 시각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야구쟁이’는 야구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그래서 야구를 놓기가 어렵다. 공을 제대로 던지지 못할 때는 욕도 두 배로 먹지만 성적 부담 없이 뛰고 즐기는 사회인야구는 내 인생의 중요한 취미 생활이다. 현재 9개 팀에 이름을 올려놓고 뛰고 있다.”
문희성은 사회인야구의 인기와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프로 출신의 사회인야구 참여는 긍정적인 효과가 훨씬 많다고 설명했다.
“어쩌면 이 부분도 재능기부나 마찬가지다. 같은 팀 선수들에게 야구의 기술이나 경험을 알려주면서 야구를 좀 더 세밀하게 파고 들어가게 만드는 역할을 우리(선출)가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취미생활을 뛰어 넘어 야구를 통해 받은 행복을 야구를 통해 갚아나간다고 생각하면 사회인야구에 더 큰 의미를 담아갈 수 있다. 일찍 은퇴한 선수들이 있다면 사회인야구에 눈을 돌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