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재단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채무를 떠안으며 발생한 ‘연쇄효과’로 인해 문을 닫아야 할 위기에 몰렸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건물 3채를 통틀어 감정가는 395억 원에 달했지만 건물에는 이 전 대통령 채무 64억 원(대출금 및 임대보증금 포함)이 걸려있었다. 청계재단은 당시 이 채무까지 포함해 기부처리하고, 나머지 331억 원을 자본금으로 설정했다. 그리고 2009년 9월 30일 부동산에 대한 등기이전 절차를 완료했다.
그로부터 보름 뒤, 청계재단은 대명주빌딩(서초동 1717-1)을 담보로 우리은행으로부터 50억 원을 대출 받는다. 이 전 대통령 채무를 떠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거액의 돈을 빌린 것이다. 당시 <일요신문>은 이러한 사실을 최초 확인한 바 있다. 송정호 청계재단 이사장은 <일요신문>과 인터뷰에서 “이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건물 세 곳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채무를 해소하는 데 사용했다”고 밝혔다. 장학재단이 장학 사업보다 설립자의 빚을 갚는 사업을 최우선적으로 한 셈이기에 일각에서는 “납득할 수 없다”라는 반응이 이어지기도 했다.
앞서 자신의 채무를 장학재단에 넘긴 이 전 대통령은 ‘양도소득세’마저 재단에 넘긴 사실이 파악되기도 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재산과 담보된 채무를 증여할 경우, 법적으로 채무를 양도한 것으로 보고 증여자에게 양도소득세가 과세된다. 즉 채무 64억 원에 대한 양도소득세를 이 전 대통령이 내야 하지만, 재단은 이 역시도 ‘대납’한다. 양도소득세를 재단이 납부하도록 이 전 대통령과 ‘특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재단은 2009년과 2010년 두 번에 걸쳐 양도소득세 ‘12억 3500여만 원’을 종로세무서에 납부한 것으로 드러났다.
청계재단의 장학금 감소 이유는 명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는 상태다. 청계재단 장학금은 건물 3채의 임대료 및 관리비 수입에서 마련된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수입이 줄어들었기 때문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지만, 국세청 공익법인 공시를 통해 확인한 결과 임대료 및 관리비 수입은 2010년 12억 1677만 원에서 2014년 14억 9153만 원으로 해마다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적어도 수입 문제가 장학금 사업에 지장을 주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문제는 결국 ‘지출’로 파악된다. 이중 채무 정리에 대한 후유증이 한몫을 차지하고 있다. 청계재단은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간 매년 꾸준히 2억여 원의 이자를 은행에 지급해 총 12억 5092만 원을 지출했다. 대학교육연구소 박거용 소장은 “같은 기간 장학금 총액이 24억 3530만 원인 점을 감안하면 은행이자 비용이 과도하게 지출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청계재단이 아직까지 채무 상환을 순조롭게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익재단의 경우 재산을 담보로 한 채무는 주무관청에 허가 및 상환 계획을 제시하는 게 원칙이다. 청계재단 관리·감독 권한을 가진 서울시교육청은 애초 2012년 9월 21일까지 채무를 상환하라고 청계재단에 통보했고, 청계재단 역시 이를 받아들였다.
청계재단 입구. 박은숙 기자
하지만 이후 청계재단은 재무사정을 이유로 상환연기를 요청했고, 현재 2015년 11월 1일까지 상환연장이 된 상태다. 이 같은 상환연기에 대해 일각에서는 서울시교육청이 ‘특혜’를 준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당시는 보수성향인 문용린 전 서울시 교육감이 재직 중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청계재단 측에서 ‘여러 노력을 하고 있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거듭 요청해왔다. 당시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았고 재단 측이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해 ‘경고’ 조치를 주고 상환기간을 연장시켜 줬다.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고 절대 특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사정을 봐줘 기간 연장까지 해줬던 서울시 교육청은 다가오는 상환일(11월 1일) 이후로 더는 기다려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아직 설립취소 예고 공문을 정식으로 내거나 한 적은 없다. 최근 청계재단과 여러 차례 접촉을 했다. 1일까지는 청계재단이 어떻게든 채무를 정리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마지노선을 앞두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청계재단은 부랴부랴 시가 150억 원 상당의 양재동 영일빌딩을 매각해 현금을 마련하겠다는 초강수를 뒀다. 지난 5월부터 급매물로 나온 영일빌딩은 최근 한 개발업체가 매입 의사를 밝히면서 재단으로서는 한숨 돌리게 됐다. 하지만 첩첩산중으로 개발업체가 시가 보다 10% 할인된 가격을 요구함으로써 돌발 변수를 맞았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박홍근 의원이 입수한 지난 8월 ‘재단법인 청계 제2회 이사회 회의록’에 따르면 “주무관청에서 10월 전에 채무에 대해 상환이행이 이루어 지지 않을시 재단에 면허를 취소하겠다고 경고를 하고 있다”며 “이에 재단에서는 150억 원에 매도를 의뢰하였으나 부동산 경기 침체 및 경기 불황으로 매수자와 접촉을 하여도 가격만 내리려고 하는 실정이므로 가격조정을 했으면 한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이에 이사 전원은 “10% 정도를 조정, 135억~140억에 매도를 추진”하겠다고 의견을 모은다. 재단 재산의 손실을 감수할 정도로 갈 길이 급했던 셈이다.
이렇듯 장학사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청계재단은 이 전 대통령의 채무를 떠안으며 발생한 ‘나비효과’로 인해 장학사업은 둘째 치고 재단 존립까지 위협받고 있는 형국이다. 청계재단이 이 전 대통령의 ‘개인 금고’라는 의혹이 점점 현실로 나타나는 셈이다. 이에 청계재단 관계자는 “항간에 알려진 대로 손해를 보면서 건물을 내놓는 게 아니다. 채무는 정상적으로 정리될 것이다. 더 이상 재단을 흔들지 말라”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박홍근 의원은 “장학금으로 써야 할 거액의 돈을 설립자인 전직 대통령이 진 빚을 갚느라 생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설립취소에 내몰릴 정도로 비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은 부끄러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