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비리 의혹 수사의 최종 목적지가 MB 일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비리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는 이상득 전 의원이 지난 5일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에 소환됐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검찰 내에서 포스코 수사는 한동안 ‘계륵’으로 통했다. 지난 3월 검찰 최정예 조직 중 한 곳인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조상준)가 야심차게 착수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고 오히려 무리한 수사라는 지적에 시달렸던 이유에서다. 여권 내에서조차 포스코 수사 출구전략을 마련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퍼져갔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 고위 인사는 “시작부터가 부담스러웠다. 이완구 전 총리의 부패척결 일성 다음날 압수수색에 착수해 청와대 하명에 의한 기획 수사라는 비판을 들었던 검찰로서는 반드시 의미심장한 결과를 내야했다. 그래서 수사 초반 서둘렀던 측면이 있다”고 털어놨다.
검찰이 그렸던 포스코 수사의 ‘큰 그림’이 지난 정권 실세, 특히 이 전 대통령 일가를 중심으로 하는 ‘영포라인’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포스코 비리→정·관계 게이트→MB 일가’로 이어지는 전략을 세웠다는 것이다. 친이계가 포스코 수사에 강력 반발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이게 검찰의 발목을 잡았다. 정치적 노림수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디테일’을 놓쳤다는 반성이 검찰 내에서 들렸다. 포스코 임원 등 핵심 피의자들 영장은 줄줄이 기각됐고 전 정권 실세와의 연결고리를 찾으려던 수사가 난항을 겪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기초로 돌아가자’는 목소리가 나온 것도 이 무렵부터다. 앞서의 서울중앙지검 고위 인사는 “황교안 총리 임명 후 2기 사정 정국과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포스코 수사가 다시 활기를 띄게 된 것은) 검찰 의지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면서 “자존심을 구긴 수사팀이 원점부터 다시 해보겠다고 별렀다. 특수2부 검사 전원이 매달렸다. 일단 시발점인 포스코 주변부터 다시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고 귀띔했다. 그 후 검찰은 정준양 전 회장을 다섯 차례나 소환하며 재임 시 비리를 집중 추궁했고, 포스코 관련 업체들에 대한 수사 역시 한층 강화했다.
고삐를 다잡은 검찰 수사의 ‘하이라이트’는 10월 5일 이상득 전 의원 소환이었다. 지난 2012년 저축은행 금품 비리로 징역 1년 2개월을 선고받은 뒤 2013년 9월 만기 출소한 이 전 의원은 2년여 만에 다시 검찰청 포토라인에 섰다. 한때 서초동 주변에선 이 전 의원의 나이(80세)를 감안해 서면조사 가능성도 흘러나왔지만 검찰은 정공법을 택했다. 이 전 의원은 조사에 앞서 “내가 왜 왔는지 모르겠다”며 억울함을 토로했지만 검찰은 혐의 입증을 자신하고 있다. 측근의 부축을 받으며 기자들 앞에 섰던 이 전 의원은 검찰 조사실에선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대답했다는 후문이다.
검찰은 이 전 의원이 포스코 협력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지인들에게 일감을 몰아주도록 압력을 행사하고 그 대가로 돈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위해 검찰은 이 전 의원 측근과 관련 있는 포스코 협력업체 여러 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 자료들을 대거 확보했다. 이 전 의원 포항 지역구 사무국장 출신 박 아무개 씨가 대주주로 있는 T 사, 이 전 의원 후원자 채 아무개 씨가 대표인 N 사, 이 전 대통령 모교 동지상고 총동문회장 출신의 한 아무개 씨가 운영하는 S 사 등이 검찰 타깃이 됐다. 세 명 모두 지역 정가에선 이 전 의원 최측근이자 후원자로 꼽히는 인물이다.
일단 이 전 의원은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지인들이 포스코로부터 특혜를 받은 부분에 대해서 자신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 전 의원이 정준양 전 회장 선임 과정에 개입했고, 그 이후 정 전 회장을 통해 측근들에게 일감을 몰아준 정황을 발견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동안 정치권과 사정당국 주변에선 이 전 의원 등 MB 정권 실세들이 정 전 회장을 발탁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서울중앙지검의 다른 관계자는 “이번 사건 핵심은 MB 실세들의 포스코 사유화다. 정권 입맛에 맞는 회장을 앞에 세운 뒤 뒤로는 온갖 방법으로 이득을 취했다. 그 정점에 이 전 의원이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1년 1월 4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신년인사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정준양 포스코 회장과 악수를 나누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런 가운데 검찰은 최근 이 전 의원 주변 수사 과정에서 거액의 현금이 수십 차례 조세회피지역과 일본, 홍콩 등지로 송금된 흔적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확한 액수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수백억 원대에 달한다”고 귀띔했다. 그 기간 역시 이 전 대통령 재직 시절이던 2009~2012년에 집중돼있다고 한다. 또 미국에선 이 전 의원 측근이 천문학적 돈을 관리하고 있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어 검찰이 이에 대한 진상파악에 나섰다. 특히 검찰은 국내 특정 금융기관이 비자금 일부의 일본 송금 및 관리 등에 개입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이 부분에 대해 조만간 진위 규명에 나설 예정이라고 한다.
물론 이 돈이 이 전 의원 측과 연관성이 있는지는 수사를 통해 드러날 부분이다. 검찰은 비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간 기간이 이 전 대통령 및 정준양 전 회장 재직 때라는 점, 이 전 의원과 가까운 측근들이 운영하는 회사가 그 출처라는 점에서 개연성이 높다고 본다. 실제로 몇몇 참고인들은 “매달 돈을 걷어 이 전 의원 측에 보냈는데 그중 상당액이 해외로 다시 송금됐다고 들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이 전 의원에게로 흘러들어갔을 비자금 발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좀처럼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검찰이 기대를 거는 이유다.
사정당국 관계자들은 검찰이 해외로 시선을 돌렸다는 데 주목하는 모습이다. 지난 정권 실세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모은 비자금 중 일부를 정권이 바뀌기 전 해외로 빼돌려 관리하고 있다는 세간의 소문과 맞물려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검찰이 MB 정부의 역점 사업이었던 해외 자원개발 비리 파일을 다시 들춰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뭔가 큰 게 걸린 것 아니냐”는 말이 퍼지고 있다.
오랜 청와대 파견 경험이 있는 사정기관 고위 인사는 “검찰이 출소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뿐더러 고령인 이상득 전 의원을 소환하는 데엔 그만큼 자신감이 있다는 얘기”라면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친이계 ‘돈줄’을 찾아 그 흐름을 틀어막으려는 게 진짜 목표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국내에서 MB 실세들의 비자금 저수지를 찾는데 실패한 현 정권 핵심부가 해외에서 그 실마리를 찾았다는 보고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본격적인 ‘영포 게이트’가 시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