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모래알 조직력에 허덕이는 비주류가 ‘반문 프레임’ 동력을 끌어올릴지는 미지수다. 범친노 관계자는 “문 대표의 거취를 둘러싼 분열적 논란을 배제키로 한 결의문에 잉크가 마르기 전에 이럴 수 있느냐”라며 “구심점 없는 비주류의 반격은 일장춘몽으로 끝날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관전 포인트는 재반격에 나선 비노계의 확장성이다. 이번 게임이 비주류의 승리로 끝날 경우 정계은퇴를 선언한 손학규 전 상임고문의 등판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예측 가능한 야권 발 정계개편의 시나리오가 예측 불가능한 구도로 격상할 수 있다는 얘기다.
새정치연합의 한 관계자는 “중도성향 인사들이 나온 점을 눈여겨보라”고 귀띔했다. 박영선 의원을 필두로 조정식 민병두 정성호 의원과 김부겸 김영춘 정장선 전 의원, 송영길 전 인천시장 등은 최근 ‘(가칭)통합행동’을 결성했다. 정 의원과 송 전 시장을 제외한 6명은 지난 5일 서울시내 모처에서 회동하고 문재인 체제에 대한 회의론에 힘을 실었다.
박영선 의원과 김부겸 전 의원 등 중립지대 인사들이 ‘통합행동’을 결성, 혁신과 통합 등의 명분을 쥐고 비주류의 ‘문재인 흔들기’에 합세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이들은 첫 회동 직후 문 대표를 정조준했다. 재신임 정국에서 문 대표가 밝힌 ‘뉴 파티(New Party)’ 비전을 고리로 혁신과 통합을 위한 구체적인 실행 프로그램의 공개를 요구한 것이다. 통합행동 대변인인 민병두 의원은 지난 6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 대표를 향해 “새 정당 구상을 각계 의견을 수렴해 조기에 밝혀야 한다”며 “다른 정파도 손을 내미는 자세로 통합을 위한 구상이 무엇인지 진지한 고민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 의원은 “문 대표 흔들기는 아니다”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지만, 통합행동이 신당파 참여를 골자로 하는 ‘빅텐트’까지 검토하면서 파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비노계 한 전략통은 통합행동의 결성 의미에 대해 “반문연대의 삼각 축이 움직이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중간지대그룹 내부에선 박영선 의원을 필두로 김부겸 전 의원과 송영길 전 시장 등의 보폭이 가시화된다면, ‘안철수·손학규’ 등과의 연대 전선이 한층 견고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비주류의 조직력 구축으로 ‘반문 프레임’에 들어올 수 있는 명분과 실리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안 전 대표도 “플랜 B는 없다”며 탈당 가능성을 일축한 상황이다. 신당파인 천정배 무소속 의원도 ‘통합과 혁신’ 구도로 편입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키 어렵다. ‘호남의 천정배-영남의 안철수·김부겸-수도권의 손학규’ 구도가 급부상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박영선 의원과 김영춘 전 의원, 송영길 전 시장 등은 ‘포스트 후보’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친노계가 문 대표 1인 체제에 의존하는 것과는 달리, 외연 확대를 위한 판이 깔린 것이다.
중도파 관계자는 “김한길 전 대표의 정치적 타이밍이 지도체제 전환 등의 변곡점에서 주요하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실제 비주류 반격의 포문은 김한길 전 대표가 열었다. 재신임 정국에서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김 전 대표는 지난 9월 30일 서울시내 모처에서 안 전 대표와 배석자 없이 단독 회동했다.
김 전 대표의 요청으로 이뤄진 이날 회동에서 이들은 “문재인 체제로는 20대 총선이 어렵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김 전 대표는 다음날인 10월 1일 성명을 내고 “‘진짜 혁신’과 ‘야권 통합’으로 총선 및 대선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주류의 좌장격인 김 전 대표가 사실상 ‘휴지기’를 마치고 반문그룹의 구심점으로 나서겠다고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특히 김 전 대표는 안 전 대표와 회동 직전 당내 인사 20여 명과 만났다. 범주류이지만, 최근 문 대표와 소원해진 정세균 상임고문을 비롯해 이종걸 원내대표, 주승용 최고위원, 박영선 의원 등과 회동하고 총·대선 전략에 대한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한길 전 대표 측은 “총·대선 국면에서 친노와 본격적 전쟁을 하겠다는 선언이 아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이에 따라 반문그룹은 통합과 혁신을 앞세워 신당파 끌어안기에 나서는 한편, 단일체제인 문 대표 체제에 대한 공세를 강화할 것으로 분석된다. 비주류 내부에선 안 전 대표가 친노계와의 혁신 경쟁을, 김 전 대표가 천정배 신당 등 빅텐트 등으로 역할 분담을 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미 안 전 대표는 △당 부패 척결 △낡은 진보 청산 △새 인재 영입, 3대 혁신 방향을 앞세워 혁신 행보에 나선 상황이다.
김한길 전 대표와 안철수 대표도 문 대표 체제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1997·2002년 대선 플랜을 짠 김 전 대표는 야권의 대표적인 전략통이다. 한때 정치적 운명체였던 ‘김한길·안철수’가 역할분담을 마친 셈이다. 여기에 박영선 의원과 김부겸 전 의원은 오는 17일과 내달 4일 서울과 대구에서 각각 북콘서트를 열기로 했다. 한 비노계 의원은 “비주류가 전투모드에 나선 것”이라고 평했다.
친노계 내부는 격분했다. 재신임 정국의 여운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상황에서 비주류 인사들이 돌격을 선언하자, “또 흔들기냐”라며 격앙된 모양새다. 문 대표는 추석연휴 기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의 회동을 계기로 정국 주도권을 잡았다고 판단하고 향후 김상곤 혁신위원회의 혁신안 통과 등에 총력전을 전개, 리더십을 회복한다는 복안이다.
친노계 관계자는 “더 이상 비주류에 휘둘릴 여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특히 문 대표는 비주류의 반발이 가시화되자, 박근혜 대통령의 당적 정리를 촉구하면서 정국을 ‘박근혜 vs 문재인’ 구도로 재편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문 대표는 청와대가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반대하는 데 대해 “대통령의 호위무사를 대거 당선시켜 퇴임 후를 보장받으려는 독재적 발상”이라며 강한 대안야당 이미지 구축에 나섰다. 이른바 ‘시선 돌리기’를 통해 비주류의 공세를 차단하는 한편, ‘반 박근혜’ 프레임을 통해 범야권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이들의 2라운드는 △선출직공직자평가위 구성 문제를 둘러싼 갈등 △비주류의 조기 전대·통합 전대·비대위 체제 전환 등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다. 제2의 혁신안 사태인 선출직공직자평가위 구성의 공정성 문제가 불거진다면, 당의 원심력은 한층 커질 수밖에 없다. 여러 갈래로 나뉜 지도체제 변경 문제를 놓고 비주류가 단일대오를 형성하지 못한다면, 당의 원심력은 약화 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한 정치평론가는 “새정치연합 내홍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공천권 갈등’이다. 주류와 비주류 가운데 계파 간 갈등을 넘어설 수 있는 인적 쇄신 방안을 제시하는 그룹이, 그리고 구태 정치인 퇴출과 새로운 정치 세력의 문호 개방 등의 주도권을 쥐는 쪽이 유리하다”며 “특히 이 과정에서 호남 민심의 지지를 받는 쪽이 총·대선 국면에서 야권 발 정계개편을 주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