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서 총정치국장
이후 2011년 4월 상장으로 또 한 번 진급한 황병서는 2014년 3월엔 조직지도부 군사담당 제1부부장으로 임명된다. 그의 승진은 이 시기부터 더욱 불이 붙어, 그해 4월 15일과 26일 각각 대장을 거쳐 차수로까지 나아간다. 그리고 불과 며칠 뒤인 5월 2일, 전임자 최룡해를 대신해 최고사령관을 제외하곤 군부 최고직급인 인민군 총정치국장에 임명된다. 불과 5년 사이, 중장에 불과했던 무명 정치군관이 세 단계 초고속 승진을 거듭한 셈이다.
2014년 1년간, 김정은은 148회의 공개 활동에 나선 바 있다. 이 중 황병서는 무려 98회나 김정은과 동행했다. 전임 총정치국장이자 실세로 일컬어지는 최룡해의 수행횟수가 47회라는 것을 감안할 때, 이는 어마어마한 수치다.
2014년 10월 4일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온 북측 대표단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왼쪽),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 인천 송도 오크우드 호텔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일요신문 DB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 정부와 국제 사회에서도 황병서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는 지난해 10월,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일에 최룡해, 김양건 등 실세들과 깜짝 방한하며 위세를 과시했다. 특히 김정은 담당 1호 경호팀 1개 조가 직접 경호하기도 했다. 지난 8월엔 북한의 지뢰도발과 관련한 남북고위급회담에 대표로 참여해 우리 측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과 머리를 맞대기도 했다. 총정치국장이란 위상도 위상이지만, 이러한 대외 행보를 두고 우리 관계자들 대부분은 ‘황병서가 곧 북한의 2인자이자 실세’라는 분석을 내놨다.
일단 황병서라는 인물의 성격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리영호가 일선 사령관 출신의 작전통이라면, 황병서는 단 한 번도 지휘관 경력이 없는 철저한 정치군관 출신이다. 그는 군인이지만, 한편으론 관료에 가깝다. 이력의 거의 대부분을 중앙당 조직지도부에 몸담았던 황병서는 능력 있는 정치행정 관료였지, 배짱 좋게 개인적인 파벌을 형성해 세를 과시하거나 따로 개인권력을 휘두르는 타입은 전혀 아니었다.
그는 윗선의 지시를 철저히 지키고 수행하며 아랫사람들을 관리했으며, 사욕을 챙기거나 야심을 품지도 않았다. 사욕이나 야심을 품으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중앙당 조직지도부에 오랫동안 있으며 그 생리시스템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북한 고위층 대부분, 외화벌이를 위해 자신의 자식이나 친척을 해외에 내보내는 것이 관례가 됐다시피 하지만 황병서는 최근 해외에 나가려는 자기 아들을 해외에 내보내지 않고 제지할 정도다. 정말이지 꼬장꼬장한 관료의 전형이다.
그렇다고 빨치산 아비를 둔 최룡해처럼 출신 성분이 눈에 띄는 것도 아니다. 그는 한갓 아전에 불과했다. 일설에 의하면 김정은의 생모인 고영희 일가와 관계가 두텁다는 얘기가 있지만 어찌됐건 그가 현재의 자리에 오르는 데에는 철저히 정치군관과 관료로서의 능력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의 당 정치 관료로서 능력을 높이 산 김정일은 아들 정은이 고등교육을 이수할 때, 정은의 학업과 신분(김정은은 평 군인 및 대학 재학시절, 대외적으로 후계자로서 신분을 철저히 숨기고 가명으로 다니며 학업을 이수했음) 관리를 당시 조직지도부 군 담당 1부부장이었던 리용철과 김경옥에 맡겼으며 그에 대한 극비적인 실제실무를 황병서가 했다고 한다.
북한 정권은 왜 이러한 정치군인 황병서를 총정치국장에 앉힌 것일까. 연재를 통해 반복해서 언급하지만, 총정치국장은 북한 군부의 당적 정치지도를 담당한다. 우리 군의 그 어떤 직책과도 비교될 수 없는 공산권 군부 특유의 직책이다. 형식적으로 군 간부들에 대한 인사권 및 검열권과 관계되고 있으며, 사실상 군부 최고 핵심실세다.
김정은 시대에 두 명의 총정치국장이 존재했다. 물론 조명록 전 총정치국장이 사망하기 전 김정각 제1부국장이 맡고 있었지만 정식 총정치국장으로는 최룡해와 현재의 황병서다. 두 사람 모두 군이 아닌, 당을 주요 무대로 활동한 당 정치 간부 출신이다. 황병서야 본분이 군인이라지만, 전임자 최룡해는 심지어 군인도 아니었다.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오른쪽)과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2014년 8월 25일 남북고위급회담에서 6개항에 합의하고 악수하는 모습. 사진제공=통일부
전례를 비춰보면 이는 하나의 변화로 볼 수 있다. 2010년 11월 사망 전까지 약 15년간 총정치국장을 맡았던 조명록은 공군사령관까지 지낸 정통군인이었다. 이전 인민무력부장 겸 총정치국장 오진우도 마찬가지. 김정은 시대 이전까지 총정치국장 자리는 철저하게 지휘관 경력이 있는 정통군인이 맡아왔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최룡해와 현재의 황병서의 등장은 유심히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사실상 최룡해와 황병서는 당 정치 간부로서 군에 파견된 케이스나 마찬가지다. 물론 이는 김정일의 복안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 연재에서 언급했듯, 김정일은 세습시기 가장 먼저 군부에 손을 댔다. 아들 정은이 아버지 김정일이 사망하고 난 이후 가장 먼저 물려받은 직책도 ‘군 최고사령관(2011년 12월 30일 공포했지만 12월 23일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비상확대회의에서 추인됨)’이었을 정도다.
김정일의 소위 선군시대를 거치며 북한 군부는 그 권력과 규모 면에서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졌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 이러한 군부는 최고 권력자에게 있어서 두려움의 대상이자 쿠데타와 관련하여 강력한 통제의 대상으로 변모했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마오쩌둥의 말처럼, 무장 세력의 힘은 간과해선 안 되는 존재다.
물론 전임자 최룡해는 당 간부로서 이러한 군의 통제라는 중책을 맡고 총정치국장 자리에 올랐지만, 개인적인 실책으로 인해 그 자리를 내놔야 했다. 이는 지난 연재에서 언급했듯, 최룡해는 2014년 초, 복권을 시도한 김경희 측에 동조하면서 이미 조직지도부 권력을 틀어쥔 김설송으로부터 철퇴를 맞은 것. 그 자리를 황병서가 차지했다는 점을 놓고 볼 때, 황병서는 김설송과 김정은이 믿는 사람으로 보인다.
황병서의 등장은 군에 대한 당의 통제 및 지도가 강화됐음을 의미한다. 황병서의 등장 이후 군과 당의 권력관계가 실제 상당히 변했다. 필자가 지난해 6월 입수한 첩보에 따르면, 지난해 4월을 기준으로 군 총정치국의 인사권이 약화된 반면 당조직지도부 군사부분의 인사권은 한층 강화된 것을 확인했다.
기존 당조직지도부는 군 연대장급과 특수부대 대대장급까지 인사권을 쥐고 있었는데, 지난해 4월 당 간부선발 지도서에 하달된 방침에 따라 한 단계 아래인 군 대대장급과 특수부대 중대장급까지 인사권을 쥐게 됐다. 반면 그나마 대대장급 이하 인사권을 쥐고 있었던 총정치국의 권한은 중대장급까지 제한됐을 정도로 사실상 군부에 대한 입김이 약해졌다.
또한 김정은 시대 들어 군부를 대상으로 하는 특별사찰과 감사가 급격히 증가했다. 선군정치 이후 급격히 비대해진 북한 군부는 현재 각종 부패 현상이 만연해진 상황이다. 군 내부 부패 현상은 곧 중앙(북한으로 치자면 중앙당)의 통제력 약화와 더 나아가 쿠데타 발발 가능성이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여말선초 시대, 고려의 멸망은 무인세력의 부패에서부터 시작됐고, 월남의 패망 역시 군부의 부패가 결정적이었다.
김정은과 당 조직지도부 역시 현재 비대해진 군부, 게다가 부패가 만연해 중앙 통제력이 약화되기 시작한 현재의 군부를 다잡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심산이 서게 된 것이다. 지난해 9월 필자가 입수한 총정치국 지시문은 이 같은 상황을 그대로 전해준다. 이는 황병서가 막 총정치국장으로 취임한 2014년 6월께 하달한 지시문으로 ‘간부들 속에서 비사회주의 현상을 뿌리 뽑을 데 대하여’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다음은 당시 지시문을 통해 언급된 주요내용이다.
▲군 해군사령부, 포병사령부, 고사포사령부 등의 일부 후방담당 장령들과 고위군관들이 휴일에 모여 도박을 하다 판돈으로 댈 수 있는 현금이 부족하자 자기 부대 공급될 식량과 피복, 기름 등을 대고 도박을 하다 적발 ▲1군단과 5군단의 3.8선 전연군단 내 일부 고위급 정치 및 안보 담당 군 간부들이 군 내 후방 군수물자들과 심지어 남한에서 보낸 삐라에 묻혀 보낸 1달러, 위앤화와 식료품 및 필수품까지 보관하고 있다 장마당에서 팔다 보위총국(기존 보위사령부) 중앙지도 그루빠에 적발 ▲8군단과 9군단의 북-중 국경연선 군단급 부대들에서는 산하 부대 고위급 군관들과 일부 병사들이 한국영화나 퇴폐적인 요소가 들어있는 메모리를 소지하고 있다 적발.
이러한 적발 활동을 직접 나서서 한 적임자가 황병서인 것이다. 한 마디로 황병서는 군을 통제하기 위해 당에서 파견된 ‘대리인’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황병서의 권한은 당과 그 윗선에서 기인되는 것일 뿐, 대부분 사람들이 과장되게 분석하고 있는 ‘실권자’의 개념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
이는 북한에서 진골과 같은 항일빨치산 2세로서 정통성을 가진 관계로 자기 파벌 형성과 때론 권력야심도 드러내기도 했던 최룡해와 비교해 보면 좀 더 명확해진다. 지난해 10월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 일정을 마치고 인천공항을 통해 돌아가던 날, 가벼운 에피소드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최룡해는 비행기 탑승 직전, 뭉그적거리는 황병서를 두고 담당 부관에게 “야! 총정치국장 빨리 탑승하라고 해”라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
정리=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북한 군부 뇌물수수의 진화 현금 대신 체크카드로… 북한에선 지난 2012년부터 외화거래가 가능한 평양시 내 낙원백화점, 외화상점, 창광원, 광복거리상업센터, 볼링관 등에서 체크카드 사용이 가능해졌다. 이는 평양시 내 상품유통구조를 현대적으로 미화하기 위한 방편이다. 이에 간부들에게도 계급에 따라 체크카드가 보급됐다. 대장급은 월 한도액 1000달러, 중·상장급은 500~700달러, 소·중장급은 100~300달러 정도다. 이 때문에 과거 불필요하게 큰 보따리로 물자가 오가다 단속에 적발됐을 때와 비교한다면, 최근 체크카드를 이용한 뇌물수수는 더욱 효과적이고 간편해졌다. 김정은 역시 과거 차량, 시계 등 이른바 현품으로 ‘선물정치’에 나섰던 것에서 벗어나 최근에는 이 체크카드를 통한 ‘선금정치’에 나서고 있다는 후문이다. [걸] |
필자 이윤걸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