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호사협회가 사시존치TF를 꾸리고 활동하는가 하면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한법협’을 구성해 사시 폐지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등 사시 존폐에 대한 논쟁이 격화되고 있다. 사진은 서초동 법조거리.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기수문화도 없고, 선후배라고 부르는 것도 어색할 정도였다. 수세에 몰리다보니 모래알도 뭉치게 돼 있더라.”
로스쿨 출신의 변호사 조 아무개 씨(31)의 말이다. 지난 9월 로스쿨 출신의 변호사 600여 명이 모여 한국법조인협회(한법협)를 결성했다. 대한변협과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사시존치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면서 심정적으로만 반기를 들고 있던 로스쿨 출신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인 것. 창립총회에서 초대 회장을 맡은 김정욱 변호사(변호사시험 2회)는 “특정 회원들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협회들의 행태에 대해 단호히 지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조계 전반을 지탱하는 힘은 철저한 기수문화다. 모든 법조인이 연수원 기수로 선후배를 가르고 공고한 카르텔을 유지하다보니 내부에서는 로스쿨 출신의 법조인들이 기를 펴기 어렵다. 또 사법시험 폐지를 코앞에 두고 로스쿨을 ‘돈스쿨’이라 비하하는 사시존치 진영과 대결구도가 형성되면서 법조현장에서 로변들이 겪는 고충도 만만찮다. 올해 3차 시험이 11월에 마무리되면 2017년까지 사법시험으로 법조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은 단 150명으로 한정됐다. 발등에 떨어진 불 앞에서 사시존치를 위한 움직임과 로변들의 기 싸움이 치열한 까닭이다.
사시존치 진영에서 눈에 띄는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는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고시생 모임(고시생모임)’이다.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한편, 온라인을 통해 사시존치에 부정적인 기사를 공유하는 ‘댓글부대’를 모으고, 국회의원실 전화번호를 공유해 사시존치를 요청해달라고 전한다. 또 곳곳에서 꾸준히 1인 시위를 벌이고, 사법시험 폐지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국회의원들 지역구를 찾아가 단체 시위까지 이어가고 있다.
특히 새정치민주연합 전해철, 이상민 의원이 이들의 주요 ‘저격대상’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로스쿨을 도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 지역구와 의원 사무실 앞에서 꾸준히 시위를 벌이면서 해당 의원들이 느끼는 부담도 상당하다. 사법시험 존치에 관한 법안 심사를 미뤄 자동폐기되기를 기다리는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전해철 의원은 고시생모임 회원들과 만나 “10월, 11월 중에 사시존치 관련 법안 심사를 하겠다”며 입장을 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한법협의 조원익 공보이사는 “몇몇 의원들이 사시존치를 주장하는 이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며 “이 이슈로 정치적 지지를 잃을까 의원들이 고심하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고시생모임’이 사시 폐지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국회의원들에 대해 단체 시위를 하는 모습.
‘고시생모임’ 권민식 대표(36)는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지는 현재 프레임이 부담스럽지만 할 말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법협이든 우리든 똑같이 잘못된 제도의 피해자다. 비싼 비용을 들여야만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둔 게 애초의 문제다. 기존 고시생들을 흡수하지 못하게 제도를 만들어놓고 사시마저 폐지하는 건 부당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대한변협이 만들어 활동하고 있는 사시존치TF가 고시생모임의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는 의혹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선 두 단체 모두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고시생모임 권 대표는 “작년에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단체다.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은 50여 명, 전체로 보면 300명이 조금 넘는다. 고시생들이라 조직적으로 힘을 발휘할 만큼 적극적으로 활동하기 힘들고, 활동비 마련도 어렵지만 외부의 어떤 도움도 받지 않고 모임을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한변협 측도 논의 차원에서만 나온 언급이었다고 관련 의혹을 일축했다. 한상훈 대변인은 “회의에서 한 관계자가 ‘고시생들이 힘들게 관련 활동을 하고 있으니 밥값이라도 대주는 게 어떠냐’고 언급한 게 잘못 알려졌다”고 말했다.
사시존치에 가장 박차를 가하고 있는 단체는 역시 대한변협이다. 하창우 대한변협 회장은 당선 당시 사시존치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 공약을 지키기 위한 사시존치TF를 꾸려 사회 전방위적으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 유출된 내부 회의록에 따르면 국회의원을 친노계와 비노계로 나눠 ‘친 사시파’를 설득하는 전략까지 꾀하고 있었다. 또 국회의원 자녀의 로스쿨 특혜의혹을 파헤쳐 여론조성을 이끌었다는 내용도 공개됐다. 이에 대해 한상훈 대변인은 “회장의 공약이었고 이를 이행하려는 활동의 일환이다. 부당한 로비나 선거개입을 한 것처럼 비춰지는데 협회 내에서는 억울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일선 변호사들은 이 같은 법조계 내부 다툼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내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로스쿨 출신 변호사는 “법률시장이 불황에다 곧 개방도 앞두고 있는데 내부 싸움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서로 제도적 개선을 외친다고 하지만 외부에서는 ‘밥그릇 싸움’으로밖에 인식하지 않는다. 상생해서 시장을 확대하고 다양한 활로를 찾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