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무개 씨 일가족 3명이 사망한 채 발견된 다세대주택. 이 씨 가족은 딸이 명문고에 합격하자 이 곳으로 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준필 기자
“아저씨는 부인 때문에 1층 살고 싶다고….”
8일 오전 11시 무렵 기자와 만난 해당 다세대주택 건물주는 이같이 말했다. 그는 “딸이 명문 고등학교 합격했다고 부부가 겨울에 이쪽으로 이사를 왔다”며 “그 때도 경제적으로 꽤 어려워 보였다. 얼마 전에도 아저씨가 부인 휠체어를 밀어줬다”고 밝혔다. 이 씨 가족은 지난 1월 해당 다세대 주택으로 이사했다. 그는 “아저씨, 사람 참 좋아보였는데…. 이런 일이 생길 줄 몰랐다”고도 덧붙였다. 다른 이웃들은 “아저씨가 자기 딸이 좋은 학교에 다닌다는 얘기도 가끔 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 양은 인근에 있는 유명 외국어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다만 부인 김 씨는 말기암 환자로, 최근까지도 몸이 좋지 않아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
과연 이들 가족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경찰 조사를 토대로 구성한 사건의 전말은 대략 이렇다. 지난 7일 이 씨의 처조카 김 아무개 씨(28)는 등기우편을 받았다. 김 씨의 고모부인 이 씨가 전날 보낸 워드로 작성한 6장짜리 유서였다. 이 씨는 유서에서 “아내가 나를 속이며 돈을 많이 써서 집안 사정이 어려워졌다”며 “아내의 빚이 많아 너무 힘들다. 부채를 처리해달라”고 밝혔다.
김 씨는 이 씨와 연락이 닿지 않아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이 씨가 거주하고 있는 다세대 주택으로 출동해 이 씨와 부인 김 씨 그리고 딸 이 양의 주검을 발견했다. 당시 이 씨의 얼굴엔 검정 비닐봉지가 씌워져 있었다. 양쪽 발목과 무릎은 끈과 같은 재질로 묶인 상태였다. 게다가 손목이 뒤로 묶여 뒷짐을 진 자세로 거실에 있었다. 김 씨와 이 양은 각각 안방의 바닥과 침대에서 반듯이 누운 채로 발견됐다. 아내와 딸이 발견된 안방 벽에 붙은 A4용지엔 “삶이 고단해 먼저 간다”며 “부검을 원치 않는다. 언론에 알려지지 않길 바란다”는 내용의 글이 적혀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발견 당시 이 씨는 코와 입이 테이프로 막힌 채 얼굴에 비닐봉지를 덮어쓰고 있었다”며 “헝겊 재질로 목 부분을 딱 공기가 안 통할 정도로만 헐겁게 감았다”고 밝혔다.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바로 이 씨가 죽음을 택한 방식이다. 네티즌들은 “손목이 뒤로 묶여 있고 목이랑 무릎이 결박됐는데 도대체 어떻게 자살을 하냐?” 등의 글을 올리며 타살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 관계자는 “이 씨가 먼저 자신의 다리 부분을 끈의 종류로 묶고 오른쪽 손에 매듭을 미리 만들어 놓았다”며 “뒷짐 진 채로 오른손을 매듭 안에 넣고 왼손으로 비닐봉지를 쓴 뒤 목을 헝겊 재질로 목을 두른 다음 나머지 왼손을 나머지 매듭으로 넣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왼손 쪽의 매듭이 헐거운 상태로 있었다고 한다. 이 씨가 왼손을 넣기 위해 매듭을 살짝 풀어 놓았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경찰은 외부인의 침입 흔적이 없고 이 씨가 처조카 김 씨에게 보낸 유서에서 집 비밀번호와 열쇠 위치를 알려주며 “문을 열고 들어와서 보면 된다”고 말했던 점도 이 씨의 자살 근거로 들고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 씨의 사인이 ‘질식사’로 나왔기 때문. 이 씨의 위장에서 알약이 나오지도 않았다. 이에 대해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교도소의 죄수들이 이런 방식으로 자살을 하곤 한다”며 “스스로 몸을 묶는 방식으로도 자살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나머지 두 사람의 ‘사인’은 무엇일까. 경찰은 이 씨가 유서의 내용 대부분을 할애해 금전적인 문제로 아내를 심하게 탓하고 있는 점을 들어 이 씨가 이들을 죽였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경찰은 “세 명이 다 같이 죽자고 했으면 비슷한 형태로 죽었을 거다”며 “남자가 둘을 어떻게 한 뒤 스스로 그런 방식을 선택했던 것 아닌가, 약 쪽으로 가능성을 보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김 씨와 이 양의 사인은 ‘불명’이었다. 이들의 위장 속에서도 이 씨처럼 알약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경찰은 “수면제나 독극물이 꼭 알약만 있는 건 아니다. 가루약도 있고 물약도 있다. 그건 독물 검사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고 보탰다. 경찰은 8일 국과수에 사망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시신에서 채취한 시료에 대한 정밀 약독물 검사를 의뢰했다.
일가족 세 사람이 사망한 과정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우선 국과수에 따르면 이 씨의 사망추정시각은 ‘7일 오전 8시 이후’다. 이 양의 담임교사는 같은 날 8시경 이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험기간인데도 이 양이 학교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 이 씨는 담임교사에게 “아내가 죽어 경황이 없어 딸이 학교에 가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반면 아직 사인이 불분명한 부인과 딸은 사망추정시각 역시 불분명하다. 사건 발생 전날인 6일 오후 1시경 이 씨는 유서가 담긴 등기 우편을 처조카에게 부치기 위해 우체국을 찾았다. 당시 모습은 우체국 CCTV에도 찍혔다. 결국 이 씨는 자신이 자살하기 최소한 19시간 전에 유서를 발송한 셈이다. 그리고 그 당시 딸 이 양은 살아 있었다. 지난 6일에는 정상적으로 학교에 등교해 시험까지 봤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가장 큰 의혹은 바로 딸의 죽음이다. 기본적으로 기초생활수급자였던 이 씨가 빚과 생활고로 힘겨워 하고 있었으며 부인은 말기암으로 죽음이 임박한 상황이다. 따라서 부부가 함께 자살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16살인 여고생 딸은 사망 전날까지도 학교 시험을 봤으며, 곧 학교 기숙사에 들어갈 예정이었다고 한다. 딸이 인근 유명 외국어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이사를 왔으며 이 씨는 평소 이웃들에게 딸 자랑을 하곤 했다고 한다. 유서에는 딸과 관련된 내용이 거의 없는데 ‘딸이 혹시 죽지 않고 깨어나면 병원에 보내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적어도 이 씨가 이런 내용이 담긴 유서를 작성하고 발송할 당시까지 딸은 살아 있었다. 그런데 이 씨가 유서에 이런 내용을 미리 적어 놓은 까닭은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이 사건은 생활고를 비관한 일가족이 모두 사망한 안타깝고 씁쓸한 사건이다. 그렇지만 일가족 세 명이 사망에 이른 과정과 방식이 불분명한 데다 딸의 죽음을 둘러싼 궁금증까지 제기되면서 그 씁쓸함 뒤에 석연치 않은 구석이 남고 말았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