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박삼구 회장이 우선매수청구권을 보유하고 있던 금호산업 지분 50%+1주에 대한 최종 매각 가격을 결정할 당시 채권단이 가장 의심스러워했던 부분은 ‘과연 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까’였다. 채권단 내에서는 이미 ‘박 회장이 가진 게 없다’고 알려져 있었던 탓에 ‘매각 가격을 너무 비싸게 매기면 안 된다’는 의견도 나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다고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에 매각했다가는 헐값, 특혜 시비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했다. 금호산업 지분 50%+1주에 대한 최종 매각 가격 7228억 원은 결국 박 회장과 채권단이 절충할 수 있는 가장 비싼 가격이 된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채권단에서 이 정도는 가능하겠다는 판단에 따른 가격이 아니겠느냐”며 “박 회장이 자금 조달에 실패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내다봤다.
재계와 금융권에서는 대체로 박 회장이 기한 내에 자금조달계획서를 채권단에 제출하고 인수대금을 최종 납입해 올해 안에 금호산업을 되찾아갈 것으로 보고 있다. 금호산업 인수 문제에 그룹 재건이 걸려 있기 때문에 박 회장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박 회장의 금호산업 인수 문제가 시장의 지대한 관심을 받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금호그룹 내에서 “인수금액이 10배에 달하는 홈플러스보다 오히려 더 큰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하소연할 정도다.
금호그룹은 금호산업 인수자금 조달계획을 은밀히 진행하고 있다. 공식적인 자금조달계획서 제출 기한은 오는 30일이지만 그보다 일주일 전인 23일까지 채권단의 사전 검증 작업을 거쳐야 한다. 채권단 관계자는 “말도 안 되는 계획서를 내거나 계열사를 관여시킬 경우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금호그룹 관계자는 “법적 테두리에서 벗어나거나 무리한 계획은 세우지 않는다”며 “채권단이 수긍할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금호산업 인수자금 조달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방안이 얘기되고 있다. 우선 금호산업 최종 매각 가격을 정하기 전, 박 회장에게 우호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진 NH농협은행과 우리은행이 인수금융에 참여해 힘을 실어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농협은행의 경우 진작부터 금호그룹의 파트너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파다했고 우리은행은 채권단 내에서 박삼구 회장이 금호산업을 인수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으로 전해진다. 채권단 다른 관계자는 “최종 매각 가격을 정하기 전 은행들은 대부분 박 회장에 우호적이었다”며 “그중에서도 특히 우리은행은 박 회장이 금호산업을 인수할 수 있도록 매각 가격을 더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농협·우리은행을 비롯해 일부 증권사도 금호산업 인수금융에 참여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들만으로는 7228억 원을 충당할 수 없다. 이들의 인수금융 규모가 많아야 2000억 원 수준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은 이 외에 박 회장이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한 지분과 박 회장과 아들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의 금호산업 보유 지분을 활용한 주식담보대출로 2300억 원가량 조달할 수 있는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를 합해도 4300억 원에 그친다.
금호터미널이 지난 9월 25일 금호고속 주식 100%를 3900억 원에 칸서스HKB사모펀드에 매각, 이 자금을 금호산업 인수대금으로 활용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 바 있다. 비록 콜옵션(나중에 주식을 되살 수 있는 권리)을 달았지만 그룹 모태라며 지난 6월 인수한 금호고속을 불과 3개월 만에 되팔았다는 것은 그만큼 금호그룹이 급했다는 방증으로 인식됐다.
그럼에도 시장 일부에서는 여전히 칸서스가 재무적투자자(FI)로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금호고속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금호그룹과 칸서스 간 어떤 식으로든 금호산업 인수 문제를 논의했을 것이라는 관측에서다. 채권단은 계열사를 끌어들여서는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금호산업 인수 과정에서 직·간접적인 경로는 물론 계열사를 끌어들이는 어떤 식의 편법도 절대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몇몇 기업이 백기사로 나서는 방안도 점쳐지고 있다. 박 회장이 직접 “적지 않은 SI(전략적 투자자)들이 도움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대표적인 기업으로 신세계가 언급되고 있다. 금호산업의 광주종합터미널 부지에서 광주신세계백화점을 운영하고 있는 신세계가 박 회장의 요청을 거부하기 힘들 것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신세계는 지난 8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백기사로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신세계 관계자는 “금호그룹 쪽에서 아직 요청이 오지도 않았으며 설사 요청이 온다 해도 기존에 넣은 것이 상당해 더 넣을 수 없다”며 “추가로 더 넣을 생각이라면 차라리 (금호산업을) 사는 게 낫다”고 말했다.
신세계는 2013년 광주신세계의 광주종합터미널에 대한 임차보증금으로 5000억 원을 들인 바 있다. 또 지난 2월에는 비록 나중에 철회하긴 했으나 금호산업 인수의향서(LOI)를 제출하기도 했다.
박삼구 회장의 금호산업 인수자금 조달계획은 아직 완전히 구성되지는 못했다. 시장에서는 박 회장이 금호산업을 최종 인수하는 것에 무게를 싣고 있지만 일부 계획했던 바가 최근 하나씩 틀어지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 금호그룹 관계자는 “아직 정확하게 결정된 것은 하나도 없다”며 “시장에서 나도는 여러 방안에 대해서도 된다, 안 된다는 평가가 엇갈리는 만큼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