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예상을 뛰어넘는 실적으로 코스피지수 2000 돌파를 이끌었지만, 속사정이 그리 편치만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 내가 잘해서? 남이 잘 돼서!
삼성전자의 사업을 크게 둘로 나누면 스마트폰 TV 가전 등 완제품(세트)과 반도체 디스플레이 패널 등 부품이다. 완제품이 잘되면 삼성 제품이 잘 팔린 게 되지만, 부품이 잘 팔렸다면 꼭 삼성이 잘 해서만은 아니다. 물론 삼성이 부품을 잘 만들었기 때문이겠지만 삼성이 만든 부품을 사서 간 완제품 제조업체들의 물건이 잘 팔렸을 수 있다. 이번 3분기 실적이 그렇다.
동부증권 유의형 연구원은 “외부로의 판매 증가가 부품 부문 실적이 잘 나온 이유로 보인다”면서 “‘삼성페이’는 전자결제시장에서 영향력 있는 플랫폼 기반이 될 것이고 ‘기어S2’가 다른 스마트워치보다 나은 제품이지만, 이러한 제품들이 영업이익에 영향을 미치기까지에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평가했다. 삼성페이와 기어S2가 혁신을 가져올 필수 아이템도 아니라는 점에서다.
결국 지난해 중국 샤오미에 이어 올해에는 화웨이가 스마트폰 부문에서 선전하고 있는데, 중저가폰을 잘 팔고 있는 중국 업체 등이 삼성에서 부품을 많이 사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아울러 2분기 말 달러당 1115.5원이던 환율이 3분기 말 1185.3원으로 오른 것도 호실적의 원인이라는 평가다. 환율이 오르면 달러로는 같은 매출을 올려도 원화로 환산하면 액수가 많아진다. 그런데 환율 효과는 미국이 기준금리 인상을 지연하게 되면 원화약세도 주춤해지는 ‘양날의 칼’이다.
# 이번엔 서프라이즈! 다음엔 쇼크?
IBK투자증권 이승우 연구원은 “4분기 실적은 다소 주춤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미국 금리인상 지연으로 달러 강세 효과가 반감되고 삼성페이 등의 성공을 위해 스마트폰 부문의 마케팅 비용이 늘어날 가능성이있다”고 내다봤다. 실제 삼성전자는 미국에서 삼성페이 기능을 사용할 구매자들에게는 120달러의 리베이트를 제공할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보통 4분기는 경쟁사인 애플이 힘을 쓰는 시기다. 9월 애플이 내놓은 ‘아이폰6s’ 시리즈들이 본격적으로 판매된 게 보통 이때다. LG의 새로운 스마트폰도 글로벌 시장에 출시된다. 특히 지난해에는 없었던 아이패드 신제품이 나왔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삼성전자 3분기 실적에는 대화면 스마트폰인 패플릿 ‘갤럭시노트5’가 크게 기여했다. 삼성의 노트 시리즈는 애플의 ‘아이패드’ 등 태블릿 PC의 천적이었다.
그런데 애플이 11월부터 판매할 신형 아이패드는 12.9인치로 노트 시리즈 대비 훨씬 더 크다. ‘애플 펜슬’도 출시해 삼성의 ‘노트 펜’에 대항한다. 마이로소프트(MS)도 태블릿 겸용 랩톱의 화면 사이즈 13.5인치짜리 ‘서피스 프로4’를 최근 출시했다. 이 때문에 4분기에는 스마트 기기의 판가 하향 및 수익성 축소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많다.
# 주주환원, 하기도 안 하기도…
지난 1분기 한때 주당 150만 원을 호가하던 삼성전자 주가는 8월 자칫 100만 원이 깨질 뻔했다. 7일 3분기 실적발표 직후 주가가 반짝 급등했지만, 여전히 연중 고점 대비 하락폭이 크다. 지난 3월 19일 주가가 150만 원을 넘었을 때 코스피는 2000선이었다. 8일 코스피가 두 달여 만에 2000선을 회복했지만, 삼성전자 주가는 여전히 120만 원이 채 안 된다. 지난 7월에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으로 외국인 투자자들과 한바탕 싸움을 벌여야 했다.
삼성이 삼성전자 주가를 떨어뜨려 이재용 부회장이 대주주인 삼성SDS와의 합병 비율을 유리하게 가져갈 것이란 의혹도 제기됐다. 이 때문에 주주들, 특히 외국인 주주들을 달래기 위해서 삼성전자가 조치를 취할 것이란 공감대가 형성됐다. 주요 외신들도 주요 글로벌 투자자들이 삼성전자가 보유한 막대한 현금자산에 주목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주주들이 잔뜩 목을 빼고 ‘선물’을 기다리는 형국이다. 안 내놓으면 실망이 클 수밖에 없다.
삼성증권 황민성 연구원은 “주주환원 정책을 내놓는다면 그간 삼성전자의 저평가가 삼성SDS 등 합병에 활용될 것이라는 시장의 오해도 불식시킬 것”이라며 “투자자들은 최고 경쟁사 수준인 30%가량의 배당성향(이익금 가운데 배당금 비율)과 경영진과의 소통 확대를 원하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가장 유력한 방안은 자사주 매입이다. 주가가 경쟁사 대비 낮다는 명분으로 주가를 부양하고 아울러 추후 지배력 강화에도 활용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삼성물산은 자사주를 KCC에 넘기며 제일모직과의 합병에 활용했고, 제일기획도 자사주를 활용해 지배구조에 큰 변화를 줬다. 그리고 이 같은 자사주 활용 때문에 이를 주주환원보다는 대주주 및 지배구조 개선으로 이해하는 시각이 많아졌다.
익명의 한 증권사 연구원은 “최근 주주환원에 대한 기대감이 시장에서 언급되고 있지만, 기존에 보여줬던 특별배당이나 소각 없는 자사주 매입과 같은 액션은 단기적인 수급 측면 이외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요인”이라고 꼬집었다.
# 주가와 상속·증여세의 딜레마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으로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전자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 확보는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금산분리 규제가 강화될 경우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통합 삼성물산’이 가져올 수 있는 여지도 열렸다.
하지만 아직 숙제는 남았다.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3.35%(보통주 기준)이다. 시가(8일 종가기준)로 6조 3000억 원이 넘는다. 이 부회장이 이를 증여나 상속 받으려면 세금만 3조 원 넘게 내야 한다. 주가가 높아지면 그만큼 내야 할 세금도 늘어난다. 주주들을 만족시켜 이 부회장 등 현 경영진에 대한 지지를 높이려다 자칫 세금 부담을 키울 수도 있는 셈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