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가운데 현 정권이 내놓을 국정교과서 내용을 짐작케 하는 책 한 권이 주목을 받고 있다. 가까이는 교학사에서 만든 한국사교과서를 떠올릴 수 있지만 보다 적나라한 ‘민낯’은 지난 2008년 출간된 ‘대안교과서-한국 근․현대사(도서출판 기파랑)’에서 찾을 수 있다. 출간 당시 숱한 논란을 양산한 대안교과서는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이 주축이 된 교과서포럼이 3년여간 집필해 펴낸 책이다. 해당 책이 2017년 국정교과서의 프로토타입(Prototype, 원형) 역할을 할 것이라는 목소리에는 일관된 흐름이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지난 12일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전환을 확정했따. 사진은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 장면.
“우리 청소년들이 왜곡된 역사 평가를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뜻있는 이들이 현행 교과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청소년들이 잘못된 역사관을 키우는 것을 크게 걱정했는데 이제 걱정을 덜게 됐다. 이 책의 출판은 중요한 의미가 있고, 후일 그 자체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2008년 5월26일 교과서포럼의 ‘대안교과서’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당시 한나라당 대표)의 인사말이다. 한 유력 일간지는 대안교과서를 소개하며 “균형 잡힌 역사 교육의 첫걸음”이라고 표현했다. 당시 교과서포럼 상임대표를 맡았던 박효종 서울대 교수는 “대안교과서는 좌편향도 우편향도 아니며 자유와 인권이라고 하는 헌법적 가치에 바탕을 두고 서술한 것”이라고 밝혔다.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이 주축이 돼 2008년 출간한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특히 민왕후(책은 명성황후를 민왕후로 표기함) 세력으로부터 축출된 김옥균을 비롯 박영효 서재필 등 개화 급진파들의 업적을 중요하게 부각시키고 결국 이승만이라는 기폭제를 통해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기틀을 세우는 과정을 중요한 흐름으로 서술하고 있다.
“1945년만의 해방만으로 해방의 진정한 의미가 성취된 것은 아니었다. 해방의 진정한 의미는 1948년 자유, 인권, 시장 등의 인류 보편의 가치에 입각하여 대한민국이 세워짐으로써 비로소 확보될 수 있었다. 그러한 시각에서 광복절의 역사적 의미를 미래지향적으로 고쳐 생각해야 한다(p.144)”
그런 만큼 1945년 8월15일 광복절 못지않게 1948년 8월15일 건국절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올해 광복절 축사에서 박 대통령이 “오늘은 광복 70주년이자 건국 67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말하거나 이번에 새누리당에서 국정교과서 추진을 당론으로 채택하면서 “국정교과서는 제2의 건국”이라는 표현을 쓴 것과 묘하게 닿아있다.
자연스럽게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매우 우호적이다. 책은 집권 기간 활동에 관해 “1945년 해방 후 귀국하여 우익 자유주의진영의 지도자로 활동했으며, (중략) 이후 12년간의 집권기간에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국내 공산주의운동을 억압했으며, 철저한 배일정책으로 일본에 대해 강경 자세를 견지하였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미국과 유엔의 도움으로 공산군을 격퇴했다”는 식으로 대부분 긍정적으로 서술한다.
다소 비판적 내용이라면 “1960년 3월 선거에서 네 번째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전국적으로 행해진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4.19민주혁명으로 사임했다”는 정도다. 과오에 관해선 건조하게 서술하고 있다면 공을 서술한 대목에서는 톤이 달라진다. “대한민국의 기틀을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체제로 올바로 잡는 데 동시대 어느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커다란 공훈을 세웠다(p.158).”
반면 이승만 필생의 라이벌인 백범김구 선생에 대한 평가는 상대적으로 박하다. 언급된 분량부터 이승만 대통령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특히 “1896년 민왕후의 원수를 갚고자 일본 상인을 군인으로 오인하여 살해하였다” “한인애국단을 조직하여 항일테러활동을 시작하였다”와 같은 부정적인 일화를 언급하거나 “1948년 남한만의 단독 총선거를 실시한다는 국제연합의 결의에 반대하고 북한에 들어가 통일전부 수립을 위한 교섭을 벌였으나 실패하였다. 이후에도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하지 않았다”면서 부정적 뉘앙스를 숨기지 않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다. 책은 출간 이전인 지난 2006년 시안이 처음 공개됐을 당시 ‘5.16쿠데타’가 아닌 ‘5월 혁명’으로, ‘4·19혁명’이 아닌 ‘학생운동’으로 표기해 반발을 일으켰고, 결국 수정해 출간된 바 있다.
여론을 수렴해 ‘5.16 쿠데타’라고 적시하긴 했으나 “6.25 전쟁을 거치면서 군부는 한국에서 다른 사회집단에서 가장 유능하고 잘 조직된 집단으로 성장하였다”며 “청렴한 이미지로 명망을 얻고 있던 박정희 육군 소장” “기득권 집단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웠다” “객관적인 현실에서 경제발전이야말로 가장 시급한 국민적 과제임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는 등 당시 상황을 호의적으로 묘사했다.
박정희 대통령 평가에 있어서는 “그는 식민지로 전락한 한국 민족의 사대주의, 자주정신의 결여, 게으름, 명예심의 결여를 증오했으며, 그 결과로 빚어진 민중의 고난과 가난에 근원적으로 분노하였다”며 “민족의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는 데 소수 엘리트 지도자의 역할을 준비하였다”고 평했다.
또한 민주진영으로부터 많은 비판이 제기되는 독재집권에 관해 “그의 권위주의 통치는 한국 사회에 역사적으로 축적되어 온 성장의 잠재력을 최대로 동원하는 역설적 결과를 낳았다”면서 “측근의 부정부패에 엄격했으며 스스로 근면하고 검소하였다”는 반론을 폈다.
반면 김대중 전 대통령 별도 소개는 박정희 대통령 소개의 1/4 수준인 것도 눈에 띈다. 분량으로는 박정희 정부 최장기 비서실장을 지낸 김정렴 실장 소개란과 비슷하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이 추진한 햇볕정책에 관해 “북한과의 교류를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면서도 “기대한 북한의 개혁․개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흔들리는 국가체제를 유지하고자 선군정치를 펼치고, 국제사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핵실험을 강행하였다”면서 평가 절하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네트워크 회원들이 14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어 국정화 추진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사진=임준선 기자).
물론 현 정부에서 추진하는 국정교과서가 앞서 살펴본 대안교과서와 비슷한 내용이 담길 것이라는 이야기는 기우에 가깝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과 교육계에서는 국정교과서 추진 속내에 ‘특정 인물의 친일 행적을 옹호하고 뉴라이트 역사관을 주입할 것’이라는 의구심을 거두지 않는다.
이와 관련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은 “친일교과서가 나온다든가 또 누구를 찬양하는 교과서가 나온다든가 이것은 불가능하다”면서도 “문제가 되는 것은 근․현대 약 100년의 역사,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어떻게 연결이 되는가. 이걸 우리가 올바르게 쓰면 된다”는 소신을 밝혔다.
현 정부가 국정교과서 이름으로 낙점한 ‘올바른(right) 교과서’가 대안교과서가 말하는 ‘뉴라이트(right) 사관’을 쫓는 것은 아닌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