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촌 거주자는 70세 이상의 노인, 맹인·거동불편자, 기초생활수급자 등 소외계층이 대부분이다. 알코올중독과 병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외부 사람을 경계하고 멀리하며 무료급식과 정부의 지원으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매월 20일 정부로부터 받는 50만원 남짓의 기초생활수급비로 도박을 하거나 퍽퍽한 삶을 달래기 위해 술을 마시는데 사용한다. 또한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는 등 동자동 쪽방촌 일대는 그야말로 무질서 그 자체이고 치안사각지대였다. 게다가 쪽방촌 환자 20여명은 누구 하나 찾아오는 사람 없이 생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다.
지난 2월 1일 용중지구대장으로 부임하기 전까지는 이러한 사정을 잘 알지 못했다. 경찰 생활의 대부분을 수사나 형사 분야에서 일한 터라 지구대장이라는 직책은 약간 생소했다.
부임한지 보름째 되는 2월 15일 `옆방에서 심한 악취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잠긴 문을 부수고 안에 들어가 보니 심하게 부패가 진행 중인 정모(73)씨가 발견됐다. 이미 숨을 거둔지 5일만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쪽방촌에는 이러한 사례들이 종종 발생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발생하는 쪽방촌의 실태를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관련 기관과 관내 협력단체 등의 협조를 받아 쪽방촌 사람들의 마음에 작은 희망의 불씨를 피워주기로 결심했다.
정부나 민간단체의 지원에만 익숙해진 이들에게 스스로의 힘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존감을 일깨워 주고 싶었다. 봉사활동을 통해 보람을 느끼게 하고 쪽방촌 주민끼리 서로 의지하며 도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자 이들을 주체로 한 자율방범대 창설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
지난 3월 10일 주민간담회를 열고 주민 30명으로 자율방범대를 구성했다. 지역 특성에 맞는 근무인원과 근무시간, 근무방법을 정하고 3월 23일부터 자율방범대원들이 쪽방촌, 새꿈공원, 갈월동, 남영동 일대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다. 3월 29일에는 용중지구대 직원, 자율방범대원·생활안전협의회 회원들이 공원일대 대청소를 실시하고 화단에 꽃 심기행사도 개최했다.
5월 23일에는 황폐해진 공원 등 주변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대원들과 용중지구대 직원들, 대학생 자원봉사자 등이 나무와 화초를 심는 화단조성 행사를 실시했다.
이러한 성과에 자신감을 얻어 5월 29일 서울경찰청 황운하 생활안전부장, 용산경찰서장, 용산구의회 의장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정식으로 자율방범대 발대식을 개최했다.
현재 30명으로 구성된 자율방범대는 5개조로 주 5회(월~금) 주간·야간 근무를 하고 있다.
주간근무는 쪽방촌 문안순찰을 통해 평소 몸이 불편한 사람이나 최근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가 특별한 사정이나 일이 있는 지 알아보며 세상과 단절된 사람들의 생명선 역할을 하고 있다. 야간근무는 새꿈어린이공원일대의 도박, 폭력, 음주소란 등 각종 무질서행위에 대한 계도활동을 전개하며 노숙자와 주취자들이 점령한 공원일대를 선량한 시민들의 품으로 되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용중지구대와 새꿈공원 자율방범대가 함께 노력한 결과, 올해 5월 달에는 전년 대비 같은 기간에 비해 112신고건수가 무려 25.4%나 감소했다. 특히 도박, 폭행시비, 음주소란 신고가 눈에 띄게 줄었다. 그동안 경찰관에게 비우호적이던 쪽방촌 주민들도 태도를 조금씩 바꾸어 먼저 인사를 건네기 시작하는 등 주민들이 마음을 조금씩 열고 있어 희망의 빛을 느끼고 있다.
특히 남영치안센터장 양찬호 경위는 자율방범대원들과 합동순찰을 하며 쪽방촌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다. 그는 경찰의 역할뿐만 아니라 형, 동생, 친구의 노릇을 자처하며 얼어붙어 있는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있다.
쪽방촌이 물질적으로는 부족하더라도 서로 아끼며 의지하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도심 속 마을의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쪽방촌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속적인 관심과 친구다.
[온라인 사회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