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화 이슈로 정국이 ‘박근혜 대 문재인’ 구도로 재편되자 반문 3인방이 존재감 표출을 위해 고심하고 있다. 사진은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실제 안 전 대표의 혁신 논쟁은 즉각 ‘내부 총질’ 논란으로 이어졌다. 천정배 신당의 동력은 한층 약화됐다. 농사 칩거에 들어갔던 정 전 장관의 내달 복귀도 불투명하게 됐다. 다만 천 의원은 안 전 대표와 정 전 장관과는 달리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 심상정 정의당 대표와 국정화 저지를 위한 ‘3자 연석회의’를 구성, 다소 숨통이 트인 모양새다. 3자 연석회의는 천 의원의 제안으로 전격 구성됐다.
앞서 천 의원은 지난 11일 수구기득권 세력의 역사 독점에 반대하는 비상대책회의 구성을 범야권에 공개 제안했고, 이틀 뒤인 13일 문 대표와 국회에서 단독 회동하고 정의당까지 참여하는 3자 연석회의에 합의했다. 이들이 단독 회동한 것은 올해 5·18 민주화운동 전야제에서 만난 지 5개월여 만이다. 한때 천 의원이 문 대표의 통합 가능성 제기에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명대사를 인용, “너나 잘하세요”라고 한 것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다.
특히 천 의원은 연석회의를 제안하면서 “새누리당의 양심적인 인사들까지 같이하자고 의견을 나눴다”며 연대 전선의 확장을 예고했다. 연석회의 제안이 천 의원의 승부수가 아니냐는 분석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천정배 신당이 야권 발 정계개편을 넘어 정국 이슈로 확장하는 데 한계를 느끼자 선제로 승부수를 던지는 일종의 ‘시선 돌리기’를 시도했다는 얘기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가장 최근 조사인 10월 둘째 주 정례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2.2%포인트)를 보면, 최근 한 달간 여야 지지도 추세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9월 셋째 주 41.6%를 기록한 새누리당은 이후 10월 둘째 주까지 ‘41.3%→40.4%→41.7%’, 새정치연합은 ‘26.6%→26.2%→ 27.2%→25.7%’의 분포를 보였다.
천정배 신당이 9월 셋째 주 공식화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적어도 범야권 지지층 및 중도층 갈라치기에 실패한 셈이다.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에선 순위권 안(10위)에도 들지 못했다. 천 의원의 최대 아킬레스건인 약한 대중성 고리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다. 제3정당 잔혹사의 전철을 밟아가는 천 의원이 국면전환용 승부수를 던졌다는 분석에 힘을 싣는 대목이다.
비주류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추진은 역사 인식의 문제로, 반대 투쟁을 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며 “국정화 저지를 위한 연석회의와 야권연대는 별개”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친노계 관계자는 “19대 총선 때 야권연대 문제로, 이제는 ‘선 가치연대=후 선거연대’가 일종의 공식화됐다”며 “연석회의에서 국정화 이슈 등을 논의하다 보면 (통합이나 연대도) 테이블에 오르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이에 대해 천 의원 측은 “지금은 국민과 함께 국정화 저지에 총력을 기울일 때”라면서도 염동연 전 의원 등을 중심으로 한 서울 당산동그룹이 내부적으로 신당 추진을 위한 물밑 작업을 계속 추진키로 했다. 천 의원이 정국의 중심에 선 뒤 연말 정국에서 신당 파괴력을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안 전 대표는 더욱 궁지에 몰렸다. 그는 문 대표가 청년 일자리정책을 발표한 지난 11일 “낡은 진보 청산을 위해 DJ와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극복해야 한다”며 당 주류에 직격탄을 날렸다. 안 전 대표는 △합리적 개혁 노선 △이분법적 사고 극복 △부패 척결 △DJ와 노 전 대통령 극복을 ‘낡은 진보 청산 4대 기조’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그는 친노계에 민감한 ‘19대 총선 평가보고서’와 ‘18대 대선 평가보고서’의 공개검증을 요구했다. 친노계에 대한 파상공세로 야권 발 정계개편 구도를 ‘낡은 진보 대 혁신 진보’로 나누려는 사전 포석이다. 범친노 관계자는 “적전분열하자는 것이냐”라며 격분했다. 안 전 대표는 이와 관련해 “국정화 문제에 대해선 문 대표와 생각이 다르지 않다”고 논란을 봉합했다.
안 전 대표 측 내부에선 국정화 저지와 당내 혁신을 따로 추진하는 ‘투 트랙’ 전략에 대한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내부에선 시민불복종 운동으로 번진 국정화 정국에서 안 전 대표가 어느 수위까지 문제제기를 할지 고민하고 있다. 문 대표를 비롯해 비노(비노무현)인 이종걸 원내대표까지 ‘목숨 건 투쟁’을 천명한 상황인 만큼 안 전 대표도 존재감 확보에 나서야 한다는 위기감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일각에선 이참에 전면에 나서서 안 전 대표가 주창한 ‘합리적 개혁 대 기득권 수구’ 구도를 통해 새정치의 대중화를 꾀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 문’ 구도로 짜인 국정화 정국에서 안 전 대표가 ‘합리적 개혁’을 고리로 모호성 논란에 휘말린 새정치 프레임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전망이다.
지난 4·29 서울 관악을 보궐선거에서 패한 뒤 전북 순창에 칩거 중인 정 전 장관은 오는 11월 14일을 ‘감자 캐는 날’로 정했다. 지난 9월 밝힌 통일씨감자재단 설립 계획 공개가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정 전 장관도 정치 복귀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독자적 진보정당 창당에 나선 ‘국민모임 창당준비위원회’와의 관계도 정리됐다. 자유인이 된 셈이다.
때마침 천 의원이 신당 창당을 선언, ‘천정배·정동영’ 연대도 수면 위로 서서히 부상했다. 내년 제20대 총선에서 천 의원과 손잡은 정 전 장관이 전주 출마로 여의도 복귀를 시도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됐다. 새정치연합을 제외한 야권통합 연대체가 구성될 경우 탈당한 박주선 무소속 의원과 박준영 전 전남지사 등과 함께 정치 재개를 본격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천 의원도 정 전 장관과 관련, “한국 정치에서 그만한 정치인도 없다”고 말했다. 야권 관계자는 “지금은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면서도 “정치는 모든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한 평론가는 “국정화 정국에서 천 의원 등이 움직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총선을 앞두고 벌어질 여권 내 권력투쟁과 야권의 공천 갈등으로 공간이 열릴 경우 반문 3인방의 플랜B가 치고 들어갈 가능성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