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회식을 고수하는 기업이 있는 반면 새로운 회식 문화를 선도하는 기업도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일요신문 DB
굴지의 대기업에 다니는 우 아무개 씨(29)는 입사 후 두 번의 충격을 받았다. 너무 많은 업무량에 놀랐고, ‘미친 듯’ 노는 회식문화에 또 놀랐다. 특히 학생시절 발도 들여 보지 못했던 룸살롱은 우 씨에게 ‘신세계’였다. 연달아 나오는 예쁜 여성들과 ‘19금’을 뛰어넘는 야한 게임과 대화가 처음엔 적응되지 않았다. ‘첫 경험’ 때는 잔뜩 얼어있었지만 갈수록 익숙해졌다. 우 씨는 “회식 때 신세계를 처음 경험해보고 나중엔 중독돼 월급을 버는 족족 갖다 바치는 사람도 있을 정도”라며 “거의 매일 새벽 출·퇴근을 하다 보니 회식을 짧고 굵게 한다. 상사가 지저분하게 노는 모습을 보는 게 썩 유쾌하진 않지만, 업무량과 스트레스를 알기 때문에 짠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 현직원들이 말하는 회식문화는 팀장의 취향과 팀원 구성에 따라 다르다는 게 중론이었다. 앞서 우 씨의 경우 팀 전원이 남성이고, 회사 전체 구성원 역시 남성 비중이 높기에 가능한 회식문화다. 현대차그룹의 한 계열사에 다니는 이 아무개 씨(여·29)는 “외부에서 자유로운 분위기의 회사라고 알고 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라며 “팀별로 편차가 크다. 옆 팀은 팀장님이 여성인데 술 회식 말고 맛집을 찾아다니며 회식을 한다. 우리 팀장님은 술을 좋아하신다. 맥주잔에 소주를 한가득 부어 마시고 노래방을 가는 코스다. 그나마 다행인 건 회식이 잦지 않다는 거다”고 조직 분위기를 전했다.
지나친 술 강권 등 부정적 회식 문화를 막기 위해 회사 차원에서 노력하는 곳도 있다.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회식문화를 바꾸고자 하는 것. 삼성전자에 다니는 김 아무개 씨(32)는 “입사 4년째인데 한 번도 회식하며 취할 때까지 술을 마셔본 적이 없다. 술을 입에 대지도 않고 음식만 먹다 가는 사람도 있다”라며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회식 자체를 별로 하지 않고, 2차는 절대 안 간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회식 문화가 이렇게 잡힌 건 인사팀 등에서 기업문화를 관리하며 관련 교육을 하기 때문이다. 직원들끼리 자발적으로 2, 3차를 가는 건 말리지 않지만 공식적인 회식은 1차에서 마무리한다. 룸살롱을 가거나 회식하며 폭음을 하는 것도 철저히 금지한다. 김 씨는 “회식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에겐 좋은 문화다. 하지만 다 같이 모여 ‘으쌰으쌰’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지나치게 깔끔한 회식문화에 불만이 있다”고 설명했다.
지나치게 좋은 회식문화 때문에 오히려 직원들이 괴로운 경우도 있다. 더 참신한 회식문화를 만들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는 막내직원들은 분주하다. LG그룹의 한 계열사에 다니는 최 아무개 씨(여·26)는 분기에 한 번씩 머리가 아프다. 회사에서 참신한 회식을 하는 팀에게 상을 주는 경진대회가 열기 때문이다. 최 씨는 “술을 잘 못해 입사 전엔 ‘회식을 세게 하면 어떻게 하나’ 고민했던 터라 참신한 회식이 다행인가 싶다가도 이젠 힘들다”라며 “영화보고 밥 먹는 회식은 이제 식상해졌다. 미니 체육대회, 전통시장 가기, 공원 놀러가기 등 안 해본 게 없다. 차라리 식당만 정하면 되는 평범한 회식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고 말했다.
기업 색깔과 구성원에 따라 회식문화가 달라지기도 한다. 기독교 문화를 강조한다고 알려진 이랜드의 경우 외부에 회식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회사원 신 아무개 씨(여·27)는 “회식문화가 괴로워 이직을 알아보고 있다. 술 강권이 없다는 기독교계 회사나 외국계 회사가 그런 점에선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전직 이랜드 직원은 “확실히 회사 분위기는 회식을 지양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상사마다 달라 술을 전혀 안 먹는다고 말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이처럼 대기업의 경우 음주 후 있을 사고를 방지하고, 기업 이미지 개선을 위해 회식문화도 신경을 쓴다. 가장 괴로운 건 중견기업, 중소기업들이다. 기업 대표, 임원들의 조직 장악력이 세고, 똘똘 뭉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위기 때문에 사원들의 하소연이 그치질 않는다. 한 중견기업 신입사원 이 아무개 씨(32)의 말이다.
“신입사원이라고 약속 있는지 묻지도 않고 회식을 통보한다. 새벽 5시 30분 출근이지만 자정까지 무조건 술자리가 이어진다. 2, 3차는 기본이다. 일주일에 두 번씩 이렇게 회식을 해대는 통에 위염이 생겼다. 부장에게 얘기했더니 ‘술 안 권할 테니 분위기를 위해 자리만 지켜라’고 말하더라. 하지만 역시 술이 좀 들어가니 ‘위염으로 안 죽는다’며 또 술을 권했다. 늦게 취업한 터라 소중한 직장인데 술 때문에 퇴사를 고민하니 미칠 노릇이다.”
또 다른 건설 관련 기업의 입사 2년차 박 아무개 씨(30)는 “다들 회식을 못 해 안달이다. 4차까지 술자리를 이어가고 그것도 모자라 새벽까지 스크린골프를 치고 진이 다 빠진 후에야 파한다”라며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참을 만 하지만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마셔야 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가끔 보면 집에 가기 싫어서 회식을 이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털어놨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
여직원 회식자리 엿보기 “토하고 또 먹어라” 헐~ 1차 고기에 술자리, 2차 노래방으로 이어지는 코스는 아저씨들의 회식 문화로만 여겨졌다. 여성들은 마지못해 따라가 분위기를 맞추다가 자리가 빨리 파하길 기다린다는 게 직장 회식자리의 선입견이다. 하지만 여자들만 모인 곳은 다르다. 더 화끈하게 놀고, 훨씬 깔끔하게 헤어진다. 간호사들의 회식은 군대 뺨칠 정도다. 대형병원 간호사들은 군기가 센 걸로 유명하다. 때론 회식자리까지 긴장감이 이어지기도 한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일하는 김 아무개 씨(여·29)는 “보통 분과별로 의사들과 같이 회식을 하는 경우가 많다. 분위기는 대체로 좋은 편인데 간호부장이 참석하는 자리에선 어느 때보다 더 긴장하게 된다”라며 “혹시라도 술 먹고 풀어질까 노심초사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배 아무개 씨(여·29)는 “술을 거의 못한다. 얼굴이 새빨개졌는데도 강권하는 문화가 있어 힘들다. 못 마시겠다고 빼자 ‘먹고 토하고 또 먹으면 된다’며 절대 봐주지 않더라. 여자들이 더 무섭다”고 말했다. 여성들이 많은 학습지 교사는 고된 업무강도에 회식 역시 몰아친다. 모든 수업과 업무가 끝나면 저녁 시간이 훨씬 지나 회식이 시작되는 터라 1차만 해도 12시가 넘는다. 신 아무개 씨(여·37)는 “회식을 하면 안 오는 사람한테도 회비를 걷는다. 때문에 거의 빠지지 않는 분위기다. 말을 많이 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감정노동 강도도 센 편이라 한 번 모이면 정말 열심히 논다”며 “지점별로 분위기가 다르지만 우리는 회식이 잦은 편이다. 가정이 있는 여성들이 많은데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많이 먹고 많이 논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