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물범과 똑같이 생긴 심리치료용 로봇 ‘파로’는 치매 예방까지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이제는 일본 노인복지시설의 필수품이 됐다.
일본 지바현에 있는 노인복지시설은 몇 년 전부터 로봇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노인을 침대에서 옮길 때에는 간호로봇이 부드럽게 안아 휠체어로 이동시켜준다. 덕분에 직원들은 육체적 부담을 덜고, 노인들의 낙상 위험도 크게 줄어들었다.
대화형 로봇 ‘팔로(PALRO)’는 시설 입주자들의 고독과 불안감을 치유하는 역할을 맡는다. 신장 40㎝, 이족보행이 가능한 팔로는 어린아이와 같은 귀여운 목소리가 특징이다. 비록 눈 코 입은 없지만 100명 이상의 얼굴을 구분해 이름을 부를 수 있으며, 퀴즈를 내거나 직접 춤을 추면서 “함께 노래해요”라고 말을 거는 기능을 갖췄다.
인터넷 접속도 가능한데, 가령 “내일은 날씨가 어때?”라고 물으면 스스로 정보를 검색해 “비가 내린다고 하네요”라고 대답한다. 흡사 똘똘한 어린아이와 대화를 나누는 느낌이다. 시설에 적응하지 못했던 한 80대 여성은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연신 호소했으나, 팔로와 만난 후 그 재미에 푹 빠져 더 이상 집으로 가겠다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대화형 로봇 ‘팔로’
치열한 로봇개발 경쟁 속에서 가장 먼저 두각을 나타낸 건 쓰쿠바대학의 벤처기업이 개발한 로봇슈트 ‘할(HAL)’이다. 할은 신체에 장착해 손발의 움직임을 보조해주는 장치로, 근력이 부족한 장애인이나 노인들의 보행을 돕는다. 만일 뇌졸중(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해진 사람이 할을 착용하면 일상생활을 정상인처럼 할 수 있다.
할은 일본뿐만 아니라 유럽에도 수출돼 큰 호평을 이끌어냈는데, 단순히 신체보조 장치를 뛰어넘어 재활치료에 도움이 되는 까닭에 유럽에서는 이미 의료기기로 허가를 받은 상태다. 일본에서는 현재 160여 개의 병원 및 요양원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내년 중 보험적용 대상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가격이 떨어져 로봇슈트 할 보급은 더욱 확대되리라 기대된다.
또 다른 성공적인 사례로, 치매관리 분야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심리치료용 로봇이 있다. 하프물범과 똑같이 생긴 ‘파로(PARO)’가 바로 그것이다. 파로는 쓰다듬거나 말을 걸면 실제 애완동물처럼 반응을 하고, 표정과 울음소리가 그때그때 달라져 마치 정말 살아있는 듯한 착각이 드는 로봇이다. 10년 전 처음 선을 보인 후 노인들에게 정서적인 안정을 주는 건 물론 치매 예방까지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이제는 일본 노인복지시설의 필수품이 됐다.
실제로 오카야마의 요양원에 사는 87세 여성은 언제나 파로를 곁에 두고 지낸다. 인자하게 미소를 지으며 파로의 등을 어루만지고, 볼을 부비는 모습에서는 끈끈한 유대관계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심각한 치매 증세로 가족들을 힘들게 했다고 한다. 집에서 간호하던 딸은 “고함을 지르거나 욕을 하고 접시를 집어던지는 일이 일상적이었다”고 전했다.
그런 가혹한 나날을 보내던 중 “치매환자들에게 파로가 효과적”이라는 말을 듣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파로를 렌트했다. 놀랍게도 어머니의 병세는 호전됐다. “먹이는 어떻게 줘야 하니?” “나와 친해질 수 있을까?” 등등 어머니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어머니는 파로와 함께 거처를 요양원으로 옮기게 됐지만, 표정이 한결 밝아졌으며 문제행동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어쩌면 ‘자신이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존재가 생긴 것이 그 이유일지 모른다.
한편, 고독사 방지를 염두에 둔 수면상태 감지시스템도 각광받고 있다. 한 예로 침대회사인 파라마운트베드는 2009년 고령자시설 전용으로 센서 내장형 매트리스를 발매했다. 수면상태, 호흡, 심장 박동수, 맥박 등 사용자의 건강상태를 모니터로 확인할 수 있는 게 특징. 이로 인해 시설 직원의 야간간호 부담을 어느 정도 덜 수 있게 됐다. 덧붙여 내년에는 호흡에 변화가 생기면 간호실의 모니터와 의사의 휴대단말기에 경보가 표시되는 등 의료기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스마트침대를 출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장래에는 이러한 시스템을 재택요양에 적용할 방법도 모색 중이다. 만약 실현될 경우 멀리 떨어져 사는 부모님의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알람이 울리면 의료진이 달려가는 구조를 통해 ‘고독사’를 막는 시스템 구축이 가능해진다.
수십 년간 인공지능 관련 의료연구개발에 종사해온 오에 가즈히코 도쿄대 교수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의사와 똑같은 의료지식을 갖고 환자를 살피는 컴퓨터를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단, 여기서 분명히 짚어야 할 것은 의사를 대체하는 자동진단시스템이 아니라 의사의 생각을 돕는 시스템이라는 점이다.
이를 위해 그는 ‘온톨로지(Ontology) 공학’을 활용하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의학지식과 관련된 정보를 잘게 세분화해 인공지능(AI)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심근경색이란 무엇인지, 폐암이란 무엇인지, 또 뇌경색증은 무엇인지 등을 순차적으로 인공지능에 저장해 지금까지 약 6000개의 질병에 대한 데이터가 완성됐다. 오에 교수는 이 목표가 실현되면 “일본 전역 어디서나 최고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