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M&A로 부채비율이 높아졌지만 박성수 회장(왼쪽)의 사업 확장 의지는 여전하다는 분석이다. 사진은 이랜드 건물. 일요신문DB
이랜드그룹이 공정거래위원회 지정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신규 지정된 해는 지난 2012년. 당시 이랜드그룹은 30개 계열사에 자산 5조 2420억 원으로, 신규지정되자마자 재계 50위(공기업 제외) 안에 들었다. 중저가 의류브랜드업체로 알려져 있던 이랜드그룹이 비로소 ‘대기업’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3년이 지난 2015년 4월, 이랜드그룹의 계열사 수는 25개로 줄었지만 자산은 6조 6570억 원으로 늘어났다. 3년 만에 자산이 1조 4150억 원 증가했다. 재계 순위도 8계단 오른 42위를 기록했다. 특이한 점은 이랜드그룹의 25개 계열사 중 상장기업이 없다는 것. 기업공개(IPO)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랜드의 몸집과 성장 속도에 걸맞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랜드가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의 M&A 열정이 자리 잡고 있다. 1995년 영국 의류브랜드 글로버럴 인수로 시작한 이랜드의 M&A는 2004년 뉴코아, 2006년 까르푸 인수로 이어졌다.
2010년 들어서면서 박 회장은 M&A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그 해 2680억 원에 대구 동아백화점, 950억 원에 서울 그랜드백화점 강서점 등을 인수하더니 2011년 이탈리아 패션잡화브랜드 만다리나덕(700억 원)과 제화업체 엘칸토(200억 원) 등을 인수했다. 2012년 이탈리아 패션잡화브랜드 코치넬리(500억 원), 2013년 미국 패션브랜드 케이스위스(2000억 원), 2014년 제주·청평 풍림리조트(300억 원) 등이 지난 몇 년간 이랜드 M&A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실패하긴 했지만 미국 메이저리그 프로야구단 LA 다저스를 인수하려 했던 일도 화제가 된 바 있다.
이랜드는 지난 10년여 동안 M&A에 조 단위의 자금을 쏟아 부으면서 사업 확장에 성공했다. 그러나 거액의 자금을 들인 탓에 차입금 규모가 늘어나고 부채비율이 높아지는 등 재무건전성에 빨간불이 들어오고 말았다.
일부 신용평가기관은 올 초부터 이랜드의 재무건전성에 대해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랜드의 지난해 차입금 규모는 4조 8000억 원으로 차입금 의존도가 58%에 달하며 부채비율은 무려 366%였다. 그룹 지주사 역할을 하는 이랜드월드의 차입금도 지난해 말 4조 5721억 원에서 올해 5조 2081억 원으로 늘어난 상태다. 핵심 계열사 중 하나인 이랜드리테일 역시 지난해 총 차입금이 2조 2272억 원이다.
이들 차입금이 대부분 만기가 1~2년인 단기여서 부담이 더 크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이 성장 전략을 추진할 때는 필연적으로 재무적 위험 요인이 따르게 마련”이라며 “성장 전략 못지않게 이를 지탱해줄 수 있는 재무안정성에도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금호아시아나, STX, 웅진, 동양 등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자칫 ‘승자의 저주’에 빠질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랜드 관계자는 “부채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워낙 캐시카우(수익창출원)가 확실하고 현금 회수가 좋아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면서 “그룹 차원에서도 만일을 대비해 여러 가지 방안을 마련해놓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랜드가 믿고 있는 ‘확실한 캐시카우’는 중국 사업이다. 1996년 중국 시장에 진출한 이랜드는 해외사업의 60% 이상이 중국에 치중해 있을 정도로 중국 사업에 공을 들여왔다. 특히 3~4년 전까지만 해도 회사 직원들조차 정신없다고 하소연할 정도로 매년 50~60% 초고속 성장을 이뤄왔다. 하루에 매장 3~4개를 오픈했다는 것이 이랜드 내부 직원들의 얘기다. 국내에서 이미 철수한 이랜드의 일부 중저가 브랜드가 중국에서 부활해 대박이 나기도 했다. 국내 화장품·의류 사업이 중국에서 크게 성장한 것과 비례한다.
하지만 이 같은 호황이 최근 중국 경기 침체로 제동이 걸리고 있다. 일부에서는 서너 개 팔리던 것이 한두 개 팔리면서 매출과 영업이익이 기대에 크게 못 미친다는 얘기도 들려오고 있다. ‘수익은 꾸준히 가져다줄지 모르나 미래 성장 가능성이 낮다’는 캐시카우의 속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단면이다.
50~60%에 달하던 이랜드의 성장 속도도 10%대로 뚝 떨어졌다. 이랜드의 과도한 차입금과 높은 부채비율에 우려를 나타내는 결정적인 이유다. 이랜드 관계자는 “오히려 10% 성장이 정상적인 수준”라며 “최근의 중국 경기 침체가 중국 시장에 신규 진출하는 기업에는 큰 어려움이겠지만 우리처럼 이미 기반을 잡은 업체에는 생각보다 큰 타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랜드는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해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는가 하면 지난해 말 신동기 전 나무코프 대표를 재무총괄부문 대표로 영입하며 자산 유동화에 힘쓰고 있다. 겉으로는 아닌 척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 경고등이 들어온 재무건전성을 되돌아보고 있다는 의미다.
IB(투자은행)업계에서는 이랜드의 고민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이랜드리테일 등의 상장이 거론되고 있다. 일부 계열사를 상장하면 최소 2조 원가량의 자금이 일시에 유입돼 재무적인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랜드 역시 몇 년 전부터 일부 계열사들의 상장을 통해 자금을 마련할 것이라는 계획을 전한 바 있다.
하지만 이랜드의 상장계획은 되레 ‘없었던 일’로 여겨지고 있다. 이랜드 관계자는 “일부 계열사를 상장하면 문제가 깨끗이 해결된다는 점을 알고 있다”면서 “그렇지만 당장 자금이 급한 것도 아닌데 굳이 상장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다만 그는 “상장 가능성은 늘 열어두고 있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계열사 상장을 제외하고 최근 이랜드는 차입금을 줄이고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한 길을 다양하게 찾고 있는 분위기다. 그러나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만만치 않다. 또 박성수 회장의 사업 확장 의지가 멈춘 것도 아니다. 멈추기는커녕 더 큰 투자와 확장을 꾀하고 있다는 것이 재계와 증권가의 시각이다. 박성수 회장과 이랜드가 자금압박에서 어떻게 벗어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