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도청 이전 10년을 맞은 남악신도시가 인구 5만의 자족도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공공기관 이전’만을 전제로 신도시를 조성하면서 호남 중심거점 광주의 동력 약화 등 후유증도 남아있다. 사진제공=전남도
지난 1986년 광주와 분리된 전남도의 청사 이전작업은 김영삼 정부가 1993년 전남도청을 포함한 광주민주화운동기념사업을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이전 후보지가 무안군 삼향면 일원으로 결정된 뒤 광주·전남 통합과 도청이전문제는 민선 전남도지사 선거과정에서 공약으로 등장, 통합론자과 이전론자로 갈리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목포와 인접한 무안으로의 도청 이전은 동부권 소외, 거점도시 광주의 동력 상실 등을 초래할 것이라는 여론이 광주와 인근 시·군, 동부권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이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도청이 들어선 남악리 일대는 개발 당시 248가구 880여 명이 살고 있던 조그마한 농촌마을이었다. 하지만 도청이 들어서면서 이 일대는 ‘상전벽해(桑田碧海)’와 같은 큰 변화가 일어났다.
남악신도시는 여느 행정도시와 마찬가지로 가장 큰 공공기관인 전남도청을 중심으로 조성됐다. 오룡산 아래 남악리에 전남도청이 자리하면서 전남도교육청, 광주지검 목포지청, 전남지방경찰청, 광주지법 목포지원, 전남도선거관리위원회 등 공공기관, 금융기관, 단체 등 76곳이 속속 이전하면서 업무도시의 면모를 갖췄다.
광주 상무지구가 광주시청, 나주 빛가람혁신도시가 한전을 중심으로 조성돼 있는 것과 같은 구조다. 그만큼 남악신도시 조성 시 전남도청 이전이 핵심이었다는 얘기다. 남악신도시에는 9월말 현재 1만 8000가구에 5만 4000명이 거주하고 있다. 남악신도시가 서남부지역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셈이다.
전남도는 오는 2019년까지 4만 5000가구 15만 명이 거주하는 자족도시 조성을 목표로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KTX 호남고속철 2단계(광주 송정-목포) 완공, 무안공항 활성화, 해남 기업도시 조성 등 인프라가 확충되면 서남해안시대를 열어가는 전진도시로서 자리매김할 것으로 전남도는 기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전남도청 이전이 긍정적인 면만 남겼을까. 이전론자들은 목포 무안권 인구 증가와 경제규모가 확대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속살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다. 남악신도시가 목포와 무안 경계에 생기면서 인구 5만 명이 늘었다고 하지만 공공기관 직원들의 이주 외에 새로 유입된 인구는 거의 없다.
지난 10년간 무안군 인구는 2만 명 늘었지만 목포시 인구는 2010년 25만 명을 정점으로 매년 2000여 명씩 줄어 현재는 24만 명선이 붕괴됐다. 목포 원도심에 있던 사람들이 남악신도시로 옮겨온 것뿐이다. 경제규모도 마찬가지로 총량에서는 큰 변화가 없어 한마디로 ‘아랫돌 빼서 윗돌 괸 것’이라고 봐야 한다. 오히려 목포 원도심의 심각한 공동화라는 문제점을 남겼다.
지난 6월 한국은행 목포본부가 내놓은 ‘전남도청 이전 10년, 지역경제 변화와 향후 과제’를 들여다보면 남악신도시의 효과는 10년이 지나면서 이미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입인구의 73.9%가 전남지역에서 이주했고, 광주에서 이사한 주민은 8.6%에 불과하다는 ‘암울한’ 통계 이외에도 지난 2009년 이후 도청 이전에 따른 경제효과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목포본부의 분석이다.
우선 지난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목포시와 무안군의 연평균 GRDP(지역내총생산)는 각각 11.6%, 8.9%를 기록했으나 2009년 이후 목포시는 마이너스로 바뀌고 무안군의 증가율 역시 크게 둔화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2005∼2008년 4.0%였던 목포시·무안군 연평균 종사자수 증가율은 2009∼2013년 0.9%로 크게 축소되면서 전남 평균(3.3%)에도 미치지 못했다.
여기에 이렇다 할 산업기반을 갖추지 못한 서남권의 공공기관 이전 효과는 계획만큼 거창하지 못했다. 최근 들어 남악신도시 인구가 많이 늘어나지 않는데다 나주에 광주·전남혁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앞으로 4년 동안 남악신도시 인구가 10만 명가량 늘 수 있을지는 미지수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한 전남 동부권과 중부권은 거리 등 심리적으로 멀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 뿌리나 다름없는 광주·전남의 동력이 집중되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이로 인해 석유화학·제철 등 산업기반을 지닌 동부권, 거점도시 광주와 연접한 중부권, 공공·행정기관 중심의 서남권 등으로 전남도는 ‘삼분’됐다. 또한 공무원 절반 정도가 나홀로 거주를 하고 있는 터이다.
이에 전남도의 한 관계자는 “교통·산업·관광 인프라가 잘 갖춰지면 자족도시 조성이 가능하다”며 “천혜의 자연환경, 지역문화, 친환경 먹을거리 등 훌륭한 자산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남악신도시를 중심으로 한 전남은 미래의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를 추동할 ‘엔진’격인 전남도청 공무원들의 역량 하락은 더욱 심각한 문제다. 광주 광산동 시절만하더라도 전남도청 공무원들은 자타가 인정하는 ‘1류’였다. 스스로 광주시청 공무원을 한 단계 깔고 보는 선민의식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남악시대 10년은 전남도청 공무원들을 ‘2류’로 전락시켰다는 지적이다. “이전 초창기만 하더라도 술을 마시다가도 찬바람을 맞으며 도청으로 되돌아와 야근을 밥 먹듯이 했다. 정부 예산을 따기 위해 밤샘 작업을 한 후 새벽 KTX를 타고 서울에 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게 도청 출입 언론계 인사의 전언이다.
이런 의욕은 오래가지 않았다. “광주에 집을 두고 매일 출퇴근하거나 주말에만 올라가는 ‘이중생활’에 지치고 이전으로 인한 비용 부담에 서서히 의욕을 상실했다”며 “능력보다는 줄대기 인사에 익숙해지면서 점차 손에서 일을 놓았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전남도청의 남악 이전은 인구 5만의 자족도시로 자리 잡아가면서 당초 우려를 어느 정도 벗어냈다. 그러나 ‘공공기관 이전’만을 전제로 신도시를 조성하면서 인근 지자체의 인구 유출, 전남 동부권의 불만, 호남 중심거점 광주의 동력 약화, 공무원들의 사기저하 등 후유증도 남아 있다. 그만큼 새로운 성장 모멘텀이 절실하다. 전남도가 어떻게 도청 남악 이전의 완성도를 높여 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정성환 기자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