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PO와 빙그레의 첫 가을
역대 최초의 PO는 1986년에 열렸다. 전기리그 우승팀과 후기리그 우승팀이 한국시리즈에서 맞붙던 경기 방식이 그해부터 변경돼 전·후기 모두 2위였던 해태가 전체 승률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다. 대신 전기 우승팀 삼성과 후기 우승팀 OB가 한국시리즈의 남은 한 자리를 놓고 PO에서 만났다. 삼성은 에이스 김일융을 내세웠지만, OB는 김일융을 피하기 위해 에이스 최일언이 아닌 박노준을 깜짝 선발로 내세웠다. 결과는 김일융이 4안타 무실점, 박노준이 6안타 1실점으로 나란히 완투. 이만수가 1회 1사 2루서 결승타를 때려내 삼성이 가까스로 이겼다.
3차전에서도 다시 한 번 완투 대결이 펼쳐졌다. OB 최일언이 삼성 타자 30명을 상대로 8안타 6탈삼진 완봉승을 따냈다. 시즌 내내 팔꿈치 부상으로 고전했던 삼성 김시진도 OB의 26타자를 맞아 5안타 2탈삼진 2실점으로 잘 던지고 완투패했다. 비록 승자와 패자는 갈렸지만, 팽팽한 투수전의 백미를 보여주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빙그레는 창단 3년 만인 1988년 PO에서 삼성을 상대로 첫 가을잔치를 경험했다. 빙그레의 1차전 선발이던 사이드암 투수 한희민은 부담감 때문에 전날 잠을 설치고 아침에 주스 한 잔으로 배만 겨우 채운 상태였다. 그러나 6피안타 5탈삼진 무실점으로 예상을 뒤엎는 완봉승을 따내면서 빙그레 역사에 첫 가을잔치 승리를 선물했다.
빙그레는 한화로 이름을 바꾼 뒤 또 한 번 PO에 역사적인 순간을 아로새겼다. 이글스가 낳은 불세출의 ‘홈런왕’ 장종훈이 1999년 두산과의 PO 3차전에서 만루홈런을 터트렸다. 장종훈은 1990년대 초반 화려한 전성기를 보낸 뒤 서서히 선수생활의 끝을 바라보고 있던 참이었다. 두산은 선발 최용호가 1회 선취점을 내주고 무사 만루 위기까지 몰렸지만, 장종훈을 잡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 교체하지 않았다. 그러나 장종훈의 클래스는 여전했다. 4구째 슬라이더를 받아쳐 역대 포스트시즌 네 번째이자 PO 두 번째인 그랜드슬램을 작렬했다. 장종훈 개인에게는 1989년 한국시리즈 이후 10년 만에 그려낸 포스트시즌 아치였다. 한화는 그렇게 한국시리즈에 올라갔고, 결국 우승까지 차지했다.
# 불 지른 김성근 감독과 불 끈 선동열
선동열.
이 모든 어수선한 상황을 정리한 건 역시 ‘야구’였다. 해태 선동열이 환상적인 투구로 관중석의 분란을 잠재웠다. 4회 무사 2루서 일찌감치 구원 등판한 선동열은 첫 타자 이광길을 1루 땅볼로 잡아낸 뒤 다음 타자 김동기부터 여덟 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돌려 세웠다. 여전히 포스트시즌 사상 최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순간이다. 선동열은 이날 6이닝 동안 22타자를 상대해 그 가운데 절반인 11명을 삼진으로 돌려 세웠다.
# 롯데 주형광·해태 김대현의 역투
송진우
해태 김대현은 많은 야구팬에게 낯선 이름이다. 이유가 있다. 1985년 해태에 입단했다가 1988년 8월 팀 휴식일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가 고인이 되기 전, 가장 빛나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경기가 바로 1987년 OB와의 PO 4차전이었다. 연장 10회까지 40타자를 상대로 완투하면서 9안타 3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1차전 선발승에 이어 시리즈 2승째. 3차전에서 선동열을 격파하고 사기가 오를 대로 올랐던 OB의 기세를 잠재워 버린 역투였기에 더 값졌다.
1991년 빙그레와 삼성의 PO는 아예 ‘완투 시리즈’로 기억된다. 빙그레 한용덕이 1차전 완봉승과 4차전 완투승(3실점)을 기록했고, 빙그레 송진우도 2차전에서 연장 10회 완투승(1실점)을 올리며 날아올랐다. 상대팀 삼성에서도 재일교포 투수 김성길이 3차전에서 1실점 완투승을 거둬 삼성 마운드의 자존심을 세웠다.
# 호세 시리즈
1999년 롯데와 삼성의 PO는 숱한 명장면과 화제를 낳았다. 키워드는 모두 롯데의 ‘검은 갈매기’ 호세로 수렴된다. 호세는 롯데가 시리즈 전적 1승3패로 몰렸던 PO 5차전에서 영웅이 됐다. 3-5로 뒤진 9회말 1사 1·2루서 외야 우중간 펜스를 넘어가는 끝내기 3점 홈런을 작렬했다. 사직 관중의 환호가 부산 전역에 넘실댔다.
1999년 열린 플레이오프 5차전 삼성-롯데 경기에서 호세가 역전 끝내기 3점 홈런을 친 뒤 동료의 축하를 받고 있다. 작은 사진은 7차전에서 호세가 솔로홈런을 친 뒤 삼성팬들에게 오물세례를 받자 흥분, 야구 배트가 들어있는 케이스를 관중에게 던지는 모습. 연합뉴스
롯데가 결국 3승3패로 균형을 맞춘 7차전에서는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남은 난투극이 벌어졌다. 호세가 6회초 1-2로 따라붙는 솔로홈런을 치고 3루를 도는 순간 맥주 캔이 날아왔다. 호세가 더그아웃 앞에서 동료와 하이파이브를 할 때는 물병을 비롯한 각종 쓰레기가 날아들었다. 하필이면 얼음주머니가 호세의 급소를 강타했다. 흥분한 호세는 배트를 관중석으로 던졌고, 한 관중이 맞아 부상을 입었다. 호세의 퇴장이 선언되자 롯데 선수들은 전원 그라운드에서 철수했다. 또 다시 오물 투척이 이어졌다. 롯데 박영태 코치와 3루 쪽 관중 사이에는 발길질도 오갔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심판진의 끈질긴 설득으로 경기는 23분 만에 재개됐다. 롯데 마해영이 다시 솔로홈런을 쳐 2-2 동점이 됐고, 7회초 김응국이 중전 적시타를 때려내 롯데가 3-2로 역전했다. 삼성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8회말 김종훈의 2점포와 이승엽의 솔로포로 스코어를 5-3으로 뒤집었다. 그러나 9회초 1사 1루서 고(故) 임수혁이 극적인 우월 2점 동점홈런을 터트리면서 승부를 연장전으로 몰고 갔다. 결국 11회초 김민재의 결승 좌전 적시타가 터져 롯데가 6-5로 이겼다. 역대 가장 파란만장하고 ‘과격한’ PO 승부로 꼽힌다.
# 관중의 수비 방해와 강동우의 부상
2009년 SK와 두산의 PO 4차전에서는 쉽게 보기 어려운 해프닝이 벌어졌다 3-3이던 7회초 2사 1·2루에서 SK 박정권의 타구가 외야 좌측으로 향했다. 타구는 좌익수 김현수의 글러브 위로 날아가다 관중이 펜스 안까지 내민 손에 맞고 그라운드로 떨어졌다. 그 사이 2루주자 정근우와 1루주자 박재상이 득점에 성공했다. 타구가 관중의 손에 맞고 그라운드 안으로 들어왔으니, 심판은 일단 볼데드를 선언한 뒤 정상적으로 타구가 날아갔을 때의 상황에 근거해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일단 그 타구가 김현수가 직접 잡기 어려운 안타성 타구였다는 점에는 양 팀 모두 동의했다. 따라서 관중의 수비 방해로 인한 아웃으로 선언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1루주자의 득점까지 인정해야 하는지 여부를 놓고는 의견이 분분했다. 결국 득점 인정. 두산 김경문 감독이 항의해봤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1998년 삼성과 LG의 PO 2차전에서는 외야 펜스의 안전성에 대한 야구계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큰 부상이 나왔다. 삼성 강동우가 2회 LG 이병규의 타구를 잡으려고 시도하다 대구구장 외야 펜스에 부딪혀 왼쪽 정강이가 복합 골절되는 부상을 입고 실려 나갔다. 단국대를 졸업하고 그해 고향팀 삼성에 입단했던 강동우는 타율 3할을 기록하며 신인답지 않은 맹활약을 펼쳤지만, 이후 수년 동안 원치 않은 공백기를 거치면서 부상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삼성은 강동우의 부상 이후 곧바로 딱딱한 외야 펜스를 교체했다.
배영은 스포츠동아 기자 yeb@donga.com
두산의 ‘가을 DNA’ 재주 부리는 곰 매번 ‘드라마’ 연출 두산은 ‘가을의 팀’이다. 최근 10년 동안 벌써 7번째 가을잔치를 치르고 있다. 시즌 성적에서 두산보다 훨씬 앞서거나 어깨를 나란히 했던 팀들도 가을에 만나면 두산을 두려워한다. 수많은 포스트시즌 경험, 그리고 그 안에서 얻은 자양분이 두산 선수들의 몸 안에 그대로 입력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준플레이오프 두산과 넥센의 4차전에서 대역전극을 펼친 두산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사진제공=두산 베어스 그 저력이 폭발한 경기가 바로 두산이 PO행 티켓을 최종적으로 거머쥔 10월 14일 준PO 4차전이었다. 넥센에 2승 1패로 앞선 채 4차전을 시작한 두산은 2-9로 뒤지던 경기를 뒤집어 역대 포스트시즌 최다 점수차(7점) 역전승 신기록을 작성했다. 7회부터 9회까지 3이닝 동안 9점을 뽑았고, 무엇보다 5-9로 뒤져 패색이 짙던 9회초에만 무려 6점을 얻어내면서 11-9로 대역전승을 거뒀다. 종전 포스트시즌 최다 점수차 역전승 기록은 2001년 10월 25일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두산이 삼성에 6점차 열세를 뒤집은 것이었다. 두산이 14년 전 자신들이 쓴 가을의 전설을 스스로 새롭게 고쳐 쓴 것이다. 준PO MVP로 선정된 두산 이현승이 “기적이라는 단어가 현실로 눈앞에 벌어진 것 같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을 정도다. 실제로 두산은 그저 여러 차례 포스트시즌을 경험한 것뿐만이 아니라 숱한 명승부를 만들어 냈다. 특히 2010년 삼성과의 PO는 지금까지도 ‘크레이지 시리즈’로 기억되는 명장면 열전이자 감동의 드라마였다. 5차전까지 끝장 승부가 이어지는 가운데 5경기가 모두 1점 차 승부로 끝났다. 당연히 역대 처음 있는 일. 게다가 5경기 모두 엎치락뒤치락 시소게임을 거듭한 끝에 8회 이후에야 승부가 갈라졌다. 다 끝났다고 생각된 순간 뒤집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양 팀은 하루하루 내일이 없는 혈전을 이어갔다. 두산은 5경기 동안 무려 35명(경기당 7명)의 투수가 출동하는 인해전술을 펼쳤다. 특히 두산 고창성은 준PO부터 PO까지 10경기 모두 등판하는 기록을 세웠다. 삼성도 총 30명(경기당 6명)의 투수를 투입하는 총력전으로 맞섰다. 1차전에선 삼성이 8회 박한이의 역전 3점홈런을 앞세워 6-5로 역전승했고, 2차전에선 두산이 4-3으로 반격에 성공했다. 3차전은 역사에 남을 혈투였다. 연장 11회까지 4시간 58분이 걸렸다. 두 팀 합쳐 투수 16명(삼성 7명·두산 9명), 4구 19개(삼성 11개·두산 8개)가 나왔다. 최종 승자는 두산. 손시헌의 끝내기 안타로 9-8 역전승을 거뒀다. 그러나 4차전에서는 다시 배영수의 슈퍼 세이브와 함께 삼성이 8-7로 이겼다. 그렇게 2승 2패로 팽팽한 균형을 이뤘다. 운명이 걸린 5차전 역시 접전. 7회 5-5로 승부의 균형을 다시 맞춘 뒤 양 팀 다 추가 득점을 하지 못한 채 승부를 연장까지 끌고 갔다. 결국 연장 11회말 삼성 박석민의 끝내기 안타가 터지면서 뜨거웠던 승부에 마침표가 찍혔다. 삼성의 극적인 한국시리즈 진출. 그러나 야구팬들은 그야말로 ‘야구의 모든 것’을 보여줬던 두산과 삼성을 향해 승자와 패자 구분하지 않고 박수를 아낌없이 보냈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