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건 작성자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문건 보관자와 유족은 이를 전량 소각했다고 주장하는 동안 소위 ‘찌라시’라 불리는 정보지들이 문건 리스트의 전파자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문건의 실체가 불분명해 수사가 혼선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도 각종 정보를 취합해 리스트를 전파하고 있는 ‘찌라시’ 관계자들의 저력이 돋보이지만 그들 역시 리스트가 담긴 문건 실체에는 접근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정보지가 전파자인 동시에 새로운 작성자가 되면서 이번 논란 역시 그동안의 연예계 루머와 유사한 양상으로 변모되고 있다. 그만큼 현재 나돌고 있는 문건 리스트 관련 인사 정보의 신뢰도가 낮다는 얘기. 게다가 정보지가 언급한 인사들의 명단이 인터넷에 유출되면서 이는 다시 사이버수사대의 수사 대상이 됐다.
우선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인사는 일간지 대표 A 씨다. 유가족이 성상납 술대접 등을 받은 대상으로 지목해 고소한 네 명 가운데 한 명으로 알려진 A 씨는 비록 이름이 지워진 채였지만 KBS가 입수한 문건에도 등장한다. 문건에는 소속사 대표 김 아무개 씨가 고 장자연에게 A 씨와의 잠자리를 유도하게끔 했다고 적혀 있다. A 씨 외에도 같은 일간지 관계자 몇몇의 이름이 추가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또한 금융계 고위층 인사 B 씨와 IT회사 대표 C 씨 등도 유가족의 고소로 수사 선상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연예관계자들의 이름 역시 많이 언급되고 있다. 특히 고인이 문건을 통해 태국까지 동행해 골프 및 술접대를 했다고 거론한 방송국 PD D 씨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실제로 고인이 방송국 PD 등과 같은 시기에 태국을 다녀온 출입국 기록이 확인돼 눈길을 끌고 있다. 서너 명의 PD 이름이 더 나돌고 있지만 수사 선상에 올라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또한 외주제작사 대표 두 명의 이름도 오르내린다.
이 외에 광고주에 해당되는 대기업 고위층 관계자의 이름도 두세 명 거론되고 있다. 고인의 소속사 대표 김 씨와 친분이 두텁다고 알려진 탓에 성상납을 받은 인사로 지목되고 있지만 문건과의 직접적인 연관 관계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현재 경찰은 공개된 문건에 실명이 등장하는 인사들과 유족이 고소한 인사들을 중심으로 한 사실 확인에 수사력을 집중한다는 입장인데 목격자 진술과 정황 수사 등으로는 혐의 입증이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항간에선 리스트가 담긴 문건을 경찰이 입수할 지라도 워낙 고위층 인사들이 많은 데다 수사기관 관계자도 있어 정상적인 수사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우선 KBS의 문서 입수 경로를 둘러싼 의혹은 유 씨가 운영 중인 호야 스포테인먼트 사무실에서 버린 쓰레기봉투에서 문건을 찾았다는 KBS의 설명을 경찰이 받아들이면서 일단락됐다. 그럼에도 제3자가 문건을 갖고 있을 가능성과 고인이 또 다른 문건을 남겼을 가능성 등은 여전히 의혹으로 남았다.
<일요신문>에선 고인이 자살을 3일 앞둔 시점에서 누군가에게 팩스를 보냈다는 사실을 단독 확인했다. 고인이 세상을 떠난 게 3월 7일이니 그가 누군가에게 팩스를 보낸 날짜는 3월 4일 즈음이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이매동 소재 고인의 집 인근의 한 사무실을 찾은 고인이 누군가에게 팩스를 보냈는데 한두 장은 아니고 10여 장 정도로 양이 많았다고 한다.
“고 장자연 씨가 가끔 팩스 보낼 일이 있으면 우리 사무실에 들러 팩스를 쓰곤 했다. 그날 역시 팩스 좀 쓰겠다며 사무실에 왔는데 한두 장 간단하게 보내던 평소보다 문서가 좀 많았다. 손님과 대화 중이라 무슨 문서인지는 보지 못했다. 요즘 부쩍 TV 출연이 많아졌다고 축하해줬는데 3일 뒤 자살했다는 얘길 듣고 깜짝 놀랐다.”
고인이 ‘장자연 문건’을 작성한 날짜는 2월 28일이다. 따라서 이날 고인이 누군가에게 보낸 여러 장의 문서가 바로 문제의 문건일 가능성이 높은 것. 유가족의 주장처럼 유 씨 주도로 작성된 문건으로 고인이 문건 작성 사실을 후회했다면 이를 누군가에게 팩스로 보냈을 가능성은 크게 줄어든다. 반면 유 씨의 주장처럼 고인이 주도적으로 작성한 문건이며 공개 의지도 강했다면 누군가에게 팩스로 문건을 보냈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현재 일본에 체류 중인 고 장자연의 소속사 대표 김 아무개 씨는 매스컴과의 전화 통화에서 “(장 씨가) 유복하게 살았고 외제차까지 몰았는데 성 상납하고 맞을 이유가 있겠느냐”고 항변한 바 있다. 김 대표의 주장처럼 고인은 분당 소재의 복층형 빌라에 살며 외제 승용차를 몰고 다녔다. 또한 부모가 모두 사망했지만 유복한 집안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 지난 21일 장자연의 자살사건을 수사 중인 분당경찰서에서 중간 발표가 있었다. | ||
확인 과정에서 몇 가지 의문점이 발견됐다. 우선 고인이 살던 집은 소유가 아닌 전세로 알려졌다. 인근 부동산 업자에 의하면 “4년 전쯤 전세 계약해 지금 집에서 언니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면서 “공기 좋고 경치 좋은 집을 찾았는데 마침 그 집은 벚꽃이 피면 경치가 뛰어난 집이었다”고 설명한다.
전세 계약은 고인이 아닌 고인 언니 명의로 된 것으로 알려졌고 4년 전 계약 당시에는 고모가 동석했다고 한다. 고인이 타고 다니던 외제 승용차 역시 고인 명의가 아닌 리스 차량이었다. 별도로 고인 명의의 국산 중형차가 한 대 있었는데 이 차는 고인의 오빠가 타고 다녔다.
고인의 고향인 전라북도 정읍시 주민들은 고인 가족이 상당한 재력가로 알고 있었다. 지난 2002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고인의 부친이 이 지역에서 상당히 유명한 D 업체 고위층이었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본래 고인의 고모와 고모부가 운영하는 회사로 현재는 본사를 다른 지역으로 옮겼다.
그러나 고인의 부모와 친분이 있었다는 한 주민은 고인의 집안이 알려진 것처럼 부유하진 않았다고 말한다. D 업체 일가라 엄청난 부자로 알려졌지만 이는 조금 부풀려진 것이라고.
“고인의 할아버지는 상당한 부자였지만 고인의 부모는 평범한 아파트에 살았는데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편이긴 했지만 어마어마한 유산을 물려줄 정도는 아니었다. 두 자매가 먼저 서울로 떠나고 아들만 오락실 등을 운영하며 정읍에서 혼자 살다 몇 년 전 정읍을 떠났다. 다만 둘째 딸(고인의 언니)은 돈이 좀 있다고 들었지만 호화로운 집에 살며 외제차를 몰고 다닐 정도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반면 D 업체 회장인 고인의 고모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생활고 때문에 (장)자연이가 힘들어 했다니 말도 안 된다”며 경제적으론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분당·정읍=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