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춘 한국능률협회(KMA) 상임교수
◇疑人不用 用人不疑(의인불용 용인불의)
疑人不用 用人不疑(의심 가는 사람은 쓰지 말고 한번 쓴 사람은 의심하지 말라). 이 말은 중국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열었던 청나라 강희제의 용인술(用人術)로 널리 알려져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 삼성 이병철 회장의 인사철학, 백범 김구 선생도 좌우명으로 삼을 정도로 유명한 고사성어이다. 사람 하나 잘 쓰면 기업이나 국가가 흥하고, 사람 하나 잘 못쓰면 기업이나 국가가 망할 만큼 사람을 보는 안목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준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조직의 인사(人事)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을 골라내기 보다는 모두를 의심하되, 그 중에서 덜 의심스러운 사람을 골라내어 계약관계를 유지하는 시스템을 발전 시켜 왔는지도 모른다. 조직 내에 조직침묵이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것을 보면, 의심하는 주체가 상대방을 의심할 경우, 상대방 역시 그 주체에게 신뢰 보다는 의심으로 응수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갈 공산이 크다.
◇건강한 관계 맺음
‘행복의 조건’을 집필한 미국 하버드대학의 조지 베일런트 교수는 행복하기 위해 해야 할 여러가지 과업 중에서도 자신의 ‘정체성’과 ‘친밀감’을 발전시킬 것을 권고하고 있다. 정체성과 친밀감은 자신이 가진 것을 긍정하는 바탕 위에서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맺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한다. 실제로 세계적인 장수 마을로 유명한 이탈리아 사르데냐 섬의 장수비결은 그들이 먹고 마시는 과일, 포도주 같은 음식 못지 않게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 간의 끈끈한 관계 맺음이 주 요인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실 건강한 관계 맺음은 쌍방향이다. 일방(一方)이 다른 일방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양자 간에 흐르는 감정의 주조(主調)는 ‘의심’이 될 수 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일방이 다른 일방을 신뢰하기 시작하면, 양자 간에 흐르는 감정의 주조(主調) 역시 ‘신뢰’가 될 것이다.
◇먼저 신뢰하라
작은 일로도 신뢰는 깨지기 쉽고, 의심은 증폭되기 쉽다. 인간의 본성상 신뢰하기 보다는 일단 의심하는 것이 덜 손해 본다는 경험의 법칙이 역사적으로 더 흔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먼저 신뢰하기’이다. 상대방이 나를 죽이려 덤비는 적군이 아닐 경우, 상대방이 나와 계약이나 협상을 통해 이해관계를 관철 시켜야 하는 사람이 아닌 경우에는 확실히 그렇다. 설령 내가 먼저 신뢰함으로써 상대방보다 손해를 좀 본다고 하더라도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내가 본 ‘손해’의 대가는 다른 형태로 되돌아 올 가능성이 크다.
어떤 경우에라도 의심보다는 신뢰의 효용이 클진대, 만약 상대방이 나와 이해관계가 걸린 경우라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이상’ 못지 않게 ‘현실’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더 현실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역시 ‘먼저 신뢰하기’가 중요하다. 물론 이 때의 신뢰는 상대방에 대한 ‘의도’를 신뢰하라는 것이지, 상대방의 ‘방법’과 ‘행동’까지 신뢰하라는 뜻은 아니다.
상대방의 ‘의도’를 신뢰하는 것은 중요하다. 상대 역시 나처럼 생각이 있고, 욕심이 있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면, ‘자기 딴에는 뭔가 다른 뜻이 있겠지’를 믿는 것이다. 그리고 천천히, 상대의 ‘행동’과 ‘방법’을 확인해 봐도 늦지 않다.
의심하기보다 신뢰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 어렵지만 우리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글 최경춘 한국능률협회(KMA) 상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