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이상득 전 의원에 대한 사전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두고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10월 5일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에 소환된 이 전 의원이 측근의 부축을 받으며 청사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하지만 친박 핵심들은 사건 자체만 볼 것이 아니라, 이 전 의원이 MB 정부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의원 사이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앞으로 있을 총선과 대선에서 새누리당 내 친이계와 관계설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두루 살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극명하게 엇갈리는 양쪽의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을 경우 이 전 의원 신병처리 문제는 오는 11월 초까지 최종 결정이 연기될 수도 있다.
# 친박 핵심 복잡한 속내
이상득 전 의원 신병처리 문제가 계속 연기되면서 여의도 정치권에선 “친박 핵심에서 이 전 의원의 구속을 원치 않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특히 이 전 의원이 지난 5일 검찰 소환조사 후 친박 핵심들과 서울시내 모처에서 회동했고, 이 자리에서 구속하지 않는 쪽으로 얘기가 정리됐다는 말까지 정치권과 검찰 안팎에서 돌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친박 핵심과 이 전 의원이 서로 만나서 불구속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도대체 친박 핵심들은 왜 이 전 의원 구속에 부정적일까.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은 MB 정부 당시 사사건건 충돌했다. 지난 2007년 당내 경선 당시부터 쌓여온 앙금이 MB 정부 5년 동안 곳곳에서 갈등으로 표출된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세종시 수정안이었다. 이 전 대통령도 대선 당시에는 행정수도 이전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당선 후 “이대로는 안 된다”며 수정안을 제출하면서 원안을 고수했던 친박계와 충돌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세종시 수정안을 극구 반대하는 박근혜 의원을 향해 “잘되는 집안은 강도가 오면 싸우다가도 멈추고 강도를 물리치고 다시 싸운다”고 말하자, 박 의원이 “그런데 집안에 있는 한 사람이 마음이 변해 갑자기 강도로 돌변한다면 어떻게 하느냐”고 맞받아치는 등 감정의 골이 상당히 깊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양측을 오가며 사태를 진화하고 가교 역할을 했던 이가 다름 아닌 이 전 의원이었다. 정치권 다른 인사는 “두 사람이 너무 감정이 안 좋을 때도 ‘그러면 안 된다. 박근혜를 제치면 결국 정권을 내주게 된다. 어쨌든 극단적 상황은 피해야 한다’면서 이 전 대통령을 설득했던 게 이 전 의원이었고 그 같은 사실을 친박 핵심들이 잘 알고 있다”며 “그래서 친박 핵심들은 이 전 의원이 두 번씩이나 구속되는 사태는 막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MB 정부에 몸담았던 한 인사도 “전 정부에서 성골은 이 전 의원이었던 만큼 그를 친이계로 분류하는 이들이 많지만, 정치적 뿌리를 보면 정통 민정계로, 박근혜 대통령과 정서적으로 훨씬 더 가깝고 그래서 조율이 가능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인사는 특히 “친박계도 내년 총선과 내후년 대선을 친박계만으로 치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결국은 전략적 선택으로라도 이 전 의원은 불구속해야 할 필요가 친박 핵심들에겐 분명히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 명분과 정치 사이 고민
정치권의 이런 분위기는 검찰에게는 부담이다. 이 전 의원의 혐의 내용을 정확하게 알면 그런 얘기를 하기 쉽지 않다는 게 검찰 측 입장이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포스코를 사유화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측근이 관여된 협력업체에 일감을 몰아준 후 비자금을 조성하고 그 중 일부는 본인을 위해서 쓴 사람을 어떻게 눈감아 줄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결국 이 전 의원 신병 처리는 정무적 판단이 아닌 정공법만이 답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 뜻대로 하기엔 주변 상황이 별로 좋지 않다. 우선은 당장 28일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가 문제다.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이 김수남 대검찰청 차장검사와 함께 김진태 검찰총장 후임으로 어깨를 나란히 겨루게 된 것은 장기간 맥 빠져있던 포스코 수사에서 이 전 의원의 혐의가 포착되면서부터였다. 그런 만큼 그 전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될 경우 박 지검장은 ‘실패한 수사’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고, 이런 분위기가 후보추천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이 전 의원 신병처리 문제가 11월 초에 결정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후보추천위가 차기 검찰총장 후보자를 3인 이상 추천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11월 초에 그중에서 한 명을 최종 낙점한 후 이 전 의원 신병처리를 하는 게 정치적으로 부담을 덜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른 검찰 관계자는 “어차피 거의 3주 이상 신병처리 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있었는데 굳이 한두 주 더 늘어진다고 해서 문제 될 게 있겠느냐”며 “이제는 얼마나 늦춰지느냐는 중요하지 않고 후보추천위 이전이냐, 이후냐가 더 중요한 때”라고 분석했다.
물론 검찰이 정치권과의 적절한 타협을 통해 이 전 의원을 구속하지 않는 것도 여전히 유효한 카드로 남아 있다. 검찰 간부 출신의 한 인사는 “박성재 지검장이 검찰총장이 되느냐, 마느냐는 법원에 달려있다는 얘기가 서초동 바닥에서 공공연히 나오는 마당에 검찰이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설 이유는 없지 않겠느냐”며 “김진태 검찰총장이 이 전 의원 신병처리에 대해 가타부타 별 말 없이 해외 출장을 간 것도 불구속 가능성도 열어놓고 다시 검토하라는 메시지로 볼 수 있고 친박 핵심에서 검찰 수뇌부에 자신들의 입장을 전달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근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