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정준양 전 포스코그룹 회장이 9월 9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소환됐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하지만 소환 3주가 다 돼가도록 검찰은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 통상 피의자를 소환 조사한 뒤 3일 내외로 사전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하는 것에 비추어 볼 때 많이 늦어진 셈. 피의자(이 전 의원)를 추가로 불러 조사하지도 않았다.
검찰의 고민이 길어진 것은 직접 사건을 맡았던 수사팀과 검찰총장 등 수뇌부의 의견 차가 발생했기 때문. 수사팀과 검찰 수뇌부가 결정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네 가지(둘 다 구속, 이상득 전 의원만 구속영장 청구, 정준양 전 회장만 구속영장 청구, 둘 다 불구속)다. 그런데 수사팀과 수뇌부의 생각이 다르다보니 결정이 더뎌졌다.
우선 둘 다 영장을 치는 경우를 가정해보자. 포스코를 사유화해 측근들 주머니에 30억 원 규모의 금전적인 이익을 줬다는 혐의의 이 전 의원과, 이에 협조한 정 전 회장 둘 다 구속 기소하는 게 상식적이다. 검찰이 설명한 혐의가 사실이라는 전제를 놓고 봐도, 다른 사건과 견주어 봐도, 둘 다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게 맞다.
하지만 법원이 그리 호락하지 않다. 강력 사건이 아닌 이상 동일 범죄에 가담한 두 명 모두에게 영장을 내주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특히 법원은 경제·정치자금 범죄의 경우 책임이 더 무거운 사람에게만 영장을 발부하는 게 관례라면 나름의 관례인데, 이를 따져보면 이 전 의원만 영장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수사팀도 그런 점을 감안해 이 전 의원에게만 영장을 청구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팀 내에서는 “30억 원이 이 전 의원 본인 주머니가 아니라 측근들에게 들어갔지만 사실상 이 전 의원에 대한 뇌물이다. 제3자 뇌물죄를 적용해 영장을 쳐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 전 의원의 건강 상태가 발목을 잡았다. 고령의 이 전 의원은 소환 조사 직후 병원에 입원하면서 나온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언론 보도가 검찰총장 등 검찰 윗선에 주효한 듯하다. 검찰총장은 건강 상태를 우려하며 이 전 의원의 영장 청구에 회의적인 입장을 내비쳤다고 한다. 특히 수뇌부는 ‘또 한 번의 실패’를 걱정했다. 정동화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에 대한 잇따른 영장기각으로 ‘표적 수사’라는 비판을 받았는데 정 전 부회장 영장 기각 이후 더 이상의 강제 수사를 진행하지 못했던 점, 또 수사가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어 만회할 기회가 없는 점 등이 고려됐다.
차선책으로 정준양 전 회장에 대한 영장 청구도 가능하기는 하지만 수사팀과 수뇌부 둘 다에게 고민을 주는 방안이다. 이 전 의원에 비해 무게감이 많이 떨어지고, 검찰이 주장해온 ‘포스코 사유화’의 정점은 누가 뭐래도 이 전 의원이다. MB(이명박) 정권 측근보다는, MB 친형 구속 기소가 수사팀에게는 더 그럴싸한 결과다.
‘우두머리’ 이 전 의원을 영장 청구하지 않고 ‘행동대장’ 정 전 회장만 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되기라도 하면, 정말 돌이킬 수 없이 ‘실패한 수사’가 된다. 정동화 전 부회장에 대한 잇따른 영장 기각까지 묶어 ‘무리한 표적수사, 검찰의 영장 청구 집착’이라는 비판 역시 피할 수 없다.
둘 다 영장을 치지 않는 방법도 있지만 7개월간 포스코만 보고 달려온 수사팀에게 절대 납득할 수 없는 방안이기도 하다. 다른 범죄 혐의자들과의 형평성도 맞지 않고, 포스코를 사유화했다는 평가를 해놓고 아무도 영장을 치지 않고 사건을 법원에 넘기는 것은 수사팀 자존심에 생채기를 남긴다.
이런저런 고민 속에 검찰은 대외적으로는 갈등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있다. 사건을 지휘하고 있는 검찰 고위관계자는 “검찰은 하나다”라는 말만 거듭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는 게 사실이다. “윗선(검찰총장)의 결정을 따라야 한다”부터 “다른 사건과의 형평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청와대에서 이상득 전 의원은 불구속 하라고 지시했다”는 말까지 떠다닌다.
반면 수사팀은 영장 청구에 무게를 두고 움직이고 있다. 특수·공안 검사들을 모아놓고 사건에 대한 브리핑과 함께 영장 실질심사를 대비했다고 한다. 검찰이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남바다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