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표가 비주류 인사들까지 아우르는 대규모 특보단을 구성, 통합행보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으나 제안 받은 의원들이 문 대표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 난항이 예고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하지만 아킬레스건도 여전하다. ‘친북숙주(정부여당) vs 친일유신(야당)’ 프레임이다. 이 프레임은 범야권 지지층에 대한 소구력과 휘발성은 강하지만, 국면전환을 위한 전략적 사고는 2% 부족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세론을 형성한 2000년대 중반부터 야권이 전면에 내건 ‘친일독재’ 프레임 이상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도로 민주당’ 프레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문 대표가 지난 18일 강남의 한 카페에서 가진 학부모들과의 간담회에서 박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를 정면 겨냥해 “선대가 친일·독재에 책임 있는 분들이다 보니 그 후예들이 친일과 독재의 역사를 미화하고 정당화하려는 것이 이번 교과서 사태의 배경이고 발단”이라고 한 것이 단적인 예다. 여전히 반박근혜에 의존한 이분법적 프레임에 갇혀있다.
이대로는 힘들다. 반대정당을 넘어 대안정당으로 가기엔 그 길이 너무 멀다. 제1야당의 대안·수권 정당화를 위한 플러스알파가 필요하다. 그간 야권이 당한 ‘이념전쟁의 잔혹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다. 친노계 한 관계자는 “국정화 국면과 연말정국에서 외부적으로는 ‘박근혜 vs 문재인’ 구도, 내부적으로는 문재인호의 최대 강점을 부각하는 전략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특보단이 계파 패권주의를 불식하기 위한 문 대표의 승부수라는 분석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사실상 문 대표의 당 혁신 플랜인 ‘뉴파티(New Party) 비전’의 전초전적 성격이다. 문 대표 측 내부에선 뉴파티 비전의 시너지효과를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해선 통합과 내부 소통 강화 등을 필수 코드로 보고 특보단 구성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보단 구성이 ‘뉴파티 비전 발표→대규모 인적쇄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의 문재인식 혁신의 제1단계인 셈이다.
하지만 특보단 구성의 난항도 엿보인다. 문 대표로부터 제안을 받은 김관영 의원은 “참여할 의사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문 대표 측은 총 13명의 특보단 중 70%가량을 비주류 인사로 채운다는 복안이지만, 제안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의원들은 하나같이 “결정된 바 없다”며 문 대표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문 대표 측은 특보단 구성의 역할로 ‘총선 및 공천’ 기획을 꼽았다. 이에 대해 비노 인사들은 친노 성향의 조은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장이 ‘현역 20% 물갈이’를 천명한 상황에서 어떤 롤을 부여받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문재인 체제’ 유지를 위한 들러리는 서지 않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이로써 ‘선 내부인사-후 외부인사’ 특보단 구성 작업도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범주류 한 관계자는 비주류 기류에 대해 “특보단에 참여할 경우 공천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비노계 인사들이 전면적 거부를 하지는 못할 것”이라며 “야권 대선 후보 가운데 ‘통 큰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는 정치인은 문 대표뿐”이라고 단언했다.
왼쪽부터 이용섭 전 의원, 정동영 전 장관, 천정배 의원.
두 번째 키워드는 ‘맏형 리더십’ 구축이다. 탈당한 이용섭 전 의원 등에 대한 복당 검토도 이 같은 전략에서 파생했다. ‘경제통’인 이 전 의원의 복당 카드로 ‘호남 민심 회복’, ‘친노 패권주의 해소’ 등을 잡겠다는 것이다.
86그룹 소속 한 당직자는 “이 전 의원의 경우 지난해 6·4 지방선거 공천의 최대 피해자가 아니냐”며 복당 가능성을 높게 봤다.
이 전 의원은 당시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광주시장 후보로 윤장현 전 새정치연합 창당준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전략공천하자, “김한길·안철수 두 대표는 정치 역사상 가장 구태스럽고 폭압스러운 정치횡포를 자행했다”고 비판하며 탈당을 전격 선언했다. 이후 중국 유학을 떠난 이 전 의원은 최근 기자들에게 정국 현안에 대한 메일을 보내며 정치 재개를 꿈꾸고 있다. 이달에도 △수치 중심 성장정책에서 사람 중심 행복경제로 바꿔야 △국정화라는 이름의 역사쿠데타를 당장 멈춰라 △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한다 등의 메일을 보냈다.
이밖에 문 대표 측은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과 천정배 무소속 의원까지 합치는 전략도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야권 발 정계개편의 변수인 ‘천정배·정동영’ 연대 고리를 끊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최근에는 한때 ‘리틀 노무현’으로 불린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까지 가세한 ‘천·정·김’ 연대설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 중 이 전 의원만 복당하더라도, 범야권 구도가 ‘통합(새정치연합) vs 분열(천정배 신당)’로 재편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복당 카드는 문 대표에게 ‘꽃놀이패’인 셈이다.
마지막 키워드인 총선 룰 정면 돌파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문 대표는 당 인재영입위원장을 직접 맡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당 인재영입은 20대 총선 승리의 바로미터다. 친노계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문 대표가 총선 전 당원과 국민들의 검증대에 오르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표는 지난 9월 사의를 표명한 안병욱 윤리심판원장의 후임 인선 작업부터 심혈을 기울이면서 20대 총선에서 바람을 일으킬 ‘새 인물 수혈’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과의 혁신 경쟁은 물론, ‘뉴 DJ(김대중 전 대통령)’를 선언한 천정배 신당과의 인물 주도권 다툼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전략도 깔렸다.
변수는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다. 애초 새정치연합은 22일 오픈프라이머리 의총을 예정했다. 하지만 5자 회동으로 미뤄졌다. 뿐만 아니라 문 대표는 79명의 의원이 서명한 비주류 최규성 의원의 오픈프라이머리 의총 소집 요구서에 대해 “혁신안 무력화 있을 수 없다”며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최 의원의 제안은 5대 범죄(살인·강간·강도·절도·폭력)에 해당하는 전력을 가진 인사들을 제외한 모든 의원이 참여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문 대표 측은 “이게 당론으로 결정되면, ‘하위 20% 배제’의 혁신안은 물론 중앙위 결정, 결선투표제 등 삼각 축이 일거에 무너진다”며 “오픈프라이머리를 담은 공직자선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어떻게 되겠느냐. 당은 대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문 대표의 대선플랜 키워드인 ‘통합·맏형 리더십’ 등이 일거에 무너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문 대표의 타이밍 정치와 전략적 세밀함이 향후 야권 내부 권력구도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범야권의 미래권력인 문 대표가 최대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