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팔 일당의 4조 원대 다단계 사기 사건에 가담한 배상혁이 지난 22일 조사를 받기 위해 대구지방경찰청으로 들어서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경찰은 배 씨가 금융다단계 사기 범행에 중추적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고 조사할 방침이다. 연합뉴스
검찰 관계자는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가 석달 만에 국내로 소환된 강호용과 최천식의 사례를 들며 강태용의 국내 소환 일정을 올 12월에서 내년 2월 사이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 한국대사관 법무협력관이 중국 공안과 협의를 진행 중이며, 대검찰청 국제협력단의 최종 협의 등의 절차도 남겨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태용의 국내 소환 일정이 연기되자 조희팔 배후세력에 의한 조희팔 사망 조작 가능성이 제기됐다. 중국 위해시에서 조희팔과 고스톱을 쳤다는 조선족 K 씨는 “중국 공안이 양국 간 사회적 파장을 예상해 조희팔의 희생양으로 보낸 것”이라며 “조희팔로부터 10억 원을 받은 공안과 폭력조직 등의 비호세력이 조희팔 보호 차원에서 사망했다는 단서를 조작해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 시작점으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이 언급되고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현지에서 강태용의 주거지를 쉽게 찾아내는 등 성과를 냈다. 그리고 그 방송이 전파를 타기 하루 전 강태용이 공안에 체포됐다. 다만 강태용이 조희팔의 생존 단서를 검찰에 제공할 수도 있기 때문에 희생양일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주장도 있다.
조희팔과 최근 중국 공안에 체포된 조희팔 최측근 강태용.
하지만 유 씨의 시신을 최초로 발견한 지인이 경찰 조사에서 ‘성분을 알 수 없는 약물 냄새가 났다’고 진술해 타살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최근 유 씨가 여러 차례에 걸쳐 언론 인터뷰를 해 조희팔의 배후세력에 의한 타살 가능성이 높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실제로 유 씨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평소 심장질환이 있다는 말을 못 들었다. 사망 당일에도 스크린골프를 치고 빵만 먹고 위해시에 있는 내연녀와 김 사장(지인)을 만나러 갔다”며 “삼촌이 쓰러졌을 당시 두 사람이 침술사랑 한의사만 불렀다. 내연녀와 김 사장이 의심스럽다”고 말해 조희팔의 사망에 대해 타살 가능성을 내비쳤다.
지난 20일 대구 동구 효목동 한 사무실에서 조희팔 조카 유 아무개 씨가 숨진 채 발견돼 경찰 감식반이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인 제보자 K 씨는 유 씨의 사망에 대해 “조희팔과 고스톱을 쳤을 당시 ‘처음 중국에 왔을 때는 한국으로 돈을 가져오라고 보낸 애들인지, 돈을 가지고 있는 애들인지, 누군가가 배신을 하도 해서 돈이 없어 많이 힘들었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조희팔 세력의 내분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런 내분설은 강태용과 유 씨 사이의 관계까지 이어진다. 최근 유 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강태용과 중국 공안에 함께 붙잡혔지만 나는 죄가 없어 풀려났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유 씨가 강태용의 은신처를 중국 공안에 흘렸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대구지방검찰청은 디지털 포렌식 기법을 동원해 유 씨가 그동안 사용한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해 조사 중이며, 유 씨와 조희팔, 유 씨와 강태용 간의 돈의 흐름을 통한 조희팔의 생존 여부를 파악할 방침이다.
유 씨가 사망한 이튿날인 지난 22일 조희팔 운영 회사에서 전산 총괄실장으로 지냈던 배상혁 씨(44)가 도주 7년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배 씨는 검거 당일 오전 ‘오후 3시에 자수하러 가겠다’고 경찰에 밝혔으나 출석하지 않았다. 경찰은 전화발신지 추적 및 발신지 인근 폐쇄회로(CC)TV 분석을 통해 배 씨의 은신처를 알아낸 후 현장 급습으로 배 씨를 검거했다. 배 씨는 그동안 국내에서 도피 생활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검경 측은 배 씨의 매부인 강태용이 체포된 데다 인터폴의 적색수배자 발령으로 형량이 가중될 것을 우려해 자수를 하려 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배 씨는 조희팔의 수사 과정에서 전산 자료를 모두 파기해 증거를 인멸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희팔이 꼬리를 잘라낸 후 몸통은 살리는, 이른바 몸통 살리기 전략을 펼치는 게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조희팔 생존설 의혹이 불거진 이후 재수사에 나선 검경 측을 우려해 조희팔이 사건의 키를 쥐고 있는 최측근을 울타리 밖으로 밀어냈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거듭된 측근들의 체포가 조희팔이 정관계 비호 세력에 보내는 경고라는 해석도 있다. 꽁꽁 숨어 지내던 조희팔의 측근들이 연이어 체포된 것이 로비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정관계 비호 세력을 향한 무언의 압박일 수 있다는 것. 조희팔이 검경 측에 전달한 비자금은 34억 5000여 만 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실제로 대구영신고등학교 출신 김광준 전 서울고등검찰청 부장검사가 2억 7000여 만 원, 고교 1년 선배인 오 아무개 전 대구지방검찰청 검찰서기관이 15억 8000여 만 원을 조희팔로부터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이들 외에도 조희팔의 로비 대상이었을 정·관계 인사가 여럿 더 있을 수 있다. 강태용과 배상혁 등은 모두 조희팔의 로비리스트를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보이는 측근들이다. 따라서 이들의 검거가 조희팔 생존설의 실체와 4조 원대 다단계 사기극의 실체 파악, 그리고 은닉 재산 조사와 로비 리스트 등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반대로 아직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로비 대상들이 교묘히 수사를 방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유시혁 기자 evernur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