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하급심의 판단이 엇갈리고 있다. 얼마 전 일본 AV 업체 16곳은 서울중앙지법에 국내 웹하드 업체들을 상대로 한 영상물복제등금지가처분을 신청했다. 일본 AV 업체들은 “웹하드 업체들이 영상물이 들어있는 디지털 파일을 공중이 다운로드가 가능한 상태로 업로드하거나 다운로드를 받을 수 있도록 해서는 안 된다”며 “웹하드 업체들은 사이트 회원들이 파일을 업로드할 수 있도록 저장 공간을 제공하고 대가를 지불하면 파일을 언제든지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서비스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은 일본 AV 제작 업체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법원은 “증거로 제출된 영상이 인간의 정신적 노력에 의해 얻어진 사상 또는 감정을 창조적 개성이 드러나는 표현형식을 통해 나타낸 영상저작물이 아니다”고 밝히며 “음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영상이 저작물에 해당한다고 해도 저작권자가 적극적으로 저작물을 유통하는 것까지 보호한다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결국 일본 AV의 ‘창작성’이 입증되지 않아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
일본 AV 업체들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두 달 전 이들 업체들이 부산지방법원에 낸 가처분 신청은 인용됐기 때문이다. 부산지법은 “저작물은 창작적인 표현양식을 담고 있으면 족하고 윤리성 여하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그 내용에 부도덕하고 위법한 내용이 있더라도 저작권법상 보호될 수 있다”고 밝혔다. 법원은 “웹하드 업체가 운영하는 사이트 회원들이 야동을 다운로드해 저장하면 이는 복제권 침해다. 또 야동을 해당 사이트에 업로드해 다른 사람이 다운로드할 수 있게 한다면 이는 전송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부산지법 조민석 공보판사는 “우리 법원은 부도덕한 내용이 있더라도 저작물로 보호된다는 대법원 판지를 그대로 따랐다”며 “판결에서 일본 AV의 창작성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판단이 중요한 부분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당연히 창작성은 있는 것으로 전제했다”고 설명했다. 서울과 부산 법원에 각각 영상물복제등금지가처분을 신청했던 일본의 대형 AV 제작 업체인 C 사, P 사 등 16개 회사다. 피고는 국내 웹하드 업체들로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서울중앙지법은 일본 AV의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았고 부산지법은 저작권을 인정했다.
저작권법 제2조 1항은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을 말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제2조의 13호는 “영상저작물은 연속적인 영상이 수록된 창작물로서 그 영상을 기계 또는 전자장치에 의하여 재생하여 볼 수 있거나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을 말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저작권법상으론 스스로 영상을 창작했다는 점을 중시할 뿐, 내용 면에서의 창작성을 저작권 인정의 필수요소로 보지 않는다. 하급심의 엇갈린 판단과 달리 대법원이 야동의 저작권을 인정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문화체육관광부 저작권보호과 관계자 역시 “음란물을 다른 법에서 규제를 하고 있지만 그걸 제작한 사람이나 만든 사람이나 제작사는 기본적으로 저작권을 가지고 있다”며 “또 야동이 창작물이 아니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왜 서울중앙지법은 일본 AV의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았을까. 법무법인 덕수의 임애리 변호사는 “동영상들 중에서 창작성 여부에 대해 신청인들이 충분히 주장·소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처분을 기각한 것으로 보인다”며 “민사적으로 저작권을 보호받을 수 있는 방법이 원천 차단됐다고 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임 변호사는 “가처분에는 ‘가’짜가 붙어 있듯이, 임시 처분인데 그 정도의 큰 불이익을 유통업체에게 주려면 아무래도 소명이 충분히 되어야 한다는 취지 같다”고 보탰다. 실제로 서울중앙지법은 “증거 영상 중 세 개를 제외하고 나머지 영상들은 어떠한 영상인지조차 확인이 되지 않아 창작성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실제로 일본 AV 업체들은 서울중앙지법에 AV 작품 표지 앞뒷면을 출력해 주요 증거로 제출했다. 따라서 일본 AV 업체들이 ‘창작성’에 대한 적극적인 소명이 부족했던 것이 판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저작권 인정 여부와 별개로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심의를 받지 않은 채 웹하드 사이트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일본 AV는 전부 불법 영상물이다. 영화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 제50조 1항은 “비디오물을 제작 또는 배급하는 자는 당해 비디오물을 공급하기 전에 당해 비디오물의 내용에 관하여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등급분류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상물등급관리위원회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일단 등급분류 받지 않고 국내에 유포되는 건 저작권 문제를 떠나서 불법이다”고 밝혔다.
누군가가 불법영상물인 일본 AV를 국내에 유통시켰다면 저작권 인정 여부와 상관없이 처벌받을 수 있다. ‘정보통신법상 음란물 유포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단속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김본좌 사건’의 경우처럼 엄청난 양의 음란물을 불법으로 유통한 경우에 사법 처벌이 이뤄졌을 뿐이다. 단속과 수사망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위반 음란물에 집중되는 사이 아청법에 걸리지 않는 일반 음란물은 날개 돋친 듯 불법 유통되고 있다. 일본 AV 역시 마찬가지다.
이처럼 음란물인 일본 AV가 불법적으로 유통되고 있음에도 이를 적절히 단속하지 못하는 사이 일본 AV 업체들이 저작권을 내세워 한국에서의 불법 유통을 막으려 직접 나선 것이다. 결국 논란의 핵심은 일본 AV의 저작권 인정 여부가 아닌 불법 유통을 근절할 수 있는 단속 강화가 아닌가 싶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