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세포소녀>의 한 장면
결국 이 남성은 절도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천재 골프소년’으로 불렸던 이토 유키(27)라는 사실이다. 대체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일본 프로골프 선수 이토 유키가 가정집에서 옷을 훔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나리타 경찰서에 의하면, 용의자 이토는 “여장한 게 들킬까봐 두려워 옷을 훔쳤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당일 자정이 넘은 시각. 이토는 혼자 사는 아파트에서 약 10㎞ 떨어진 주택가에 도착했다. 세일러복 상의에 체크무늬 스커트를 입고, 긴 가발을 쓴 상태였다. 단지 길을 따라 유유히 걸을 생각이었으나, 지나가던 노인 남성에게 발각된 게 화근이었다. 남성은 이토가 여장한 모습을 보더니 비난을 퍼붓고 경찰에 신고했다. 이윽고 현장에 경찰차가 나타나자 이토는 순간적으로 달아났다.
사실 일본에서 남자가 여장을 하고 다닌다고 해서 ‘죄’가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신원이 밝혀지는 게 어지간히 싫었던 모양이다. 급기야 이토는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르고 만다. 한 가정집에 침입해 빨랫줄에 널어 둔 옷가지를 훔친 것. 스커트 대신 훔친 반바지로 갈아입고, 이번에는 다른 집으로 들어가 부엌에 있는 남성용 작업복까지 훔쳤다. 세일러복과 가발을 벗어던지고 다시 평범한 남성의 모습으로 돌아오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행위는 결국 부메랑이 되어 ‘치명상’을 안겼다. 주위를 순찰하던 경찰관에게 불심검문을 당하자, 그 자리에서 절도를 인정하고 체포됐기 때문이다. 경찰조사에서 그는 “여장이 취미다. 남몰래 집에서만 즐기다가 거리에 나가보고 싶어졌다”면서 “여장한 사실이 들킬까봐 두려워 옷을 훔치게 됐다”고 털어놨다.
이토 유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사상 최연소로 관동 아마추어 골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컵을 거머쥐었고, 일본 국가대표팀에도 선발됐다. 기세를 몰아 2006년에는 골프다이제스트어워드 주니어 대상까지 수상했다. 현재 일본의 ‘골프 황제’ 이시키와 료(24)도 받은 적 있는 영예로운 상이다.
순풍에 돛 단 듯 순항하던 골퍼 인생은 프로로 전향하면서 깊은 슬럼프에 빠졌다. 정신적 압박감에 드라이버 입스(공포증)가 찾아왔던 것. 과도한 긴장감으로 손과 손목 근육이 떨리는,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됐다. 이로 인해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상금을 거의 받지 못했으며, 골프장에서 코치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근근이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고교시절 이토와 같은 골프부였던 한 동창은 “아무도 그에게 여장 취미가 있는 줄 몰랐다”고 전했다. 그래서 “사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술자리 벌칙게임으로 여장을 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 친구들 사이에서 떠돌았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목소리도 들린다. 골프 전문지 기자들 사이에서는 “중성적이고 얌전한 성격으로, 헤어스타일도 눈썹도 단정히 다듬는 등 남자 프로골퍼에는 드문 타입”이라는 말이 오갔다는 것이다.
일본 주간지 <주간겐다이>는 “과거의 영광과 달리 현재 골퍼로서의 경쟁력이 점차 고갈되어 가는 상황에서 불안과 스트레스가 그를 폭주하게 만든 것 같다”고 표현했다. 실제로 일본에서 여장이 취미인 남성들은 성적 소수자와는 별개로, 스트레스 해소가 목적인 경우가 많다. “화장을 하고 여자 옷을 입으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설명이다.
더욱이 요 몇 년 사이 여장을 즐기는 남성은 비단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40~50대 중년까지 연령층도 다양해져, 도쿄 도심에는 여장남자들을 위한 카페와 클럽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따라서 퇴근길에 여장카페에 들려 변신을 꿈꾸는 회사원 남성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때문인지 일본 네티즌들 가운데는 “이토의 여장 취미에 대해 비난할 마음은 없다”는 의견이 제법 많았다. 다만 “절도는 엄연한 범죄로 용서할 일이 아니다”라는 점에서는 입을 모았다. 덧붙여 “아직 27세다. 가능하면 세일러복을 벗어던지고, 재기에 성공하기 바란다”는 응원의 목소리도 이어졌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여장하고 싶은 이유 설문조사 “아내보다 예쁠 것 같다” 헐~ 여장을 하고 싶은 이유로는 “변신에 흥미가 있어서” “묘한 쾌감이 있을 것 같다” “내가 여장을 하면 아내보다 예쁠 것 같다” 등등의 의견이 눈에 띄었다. 이와 달리 “하고 싶지 않다”고 응답한 남성들은 “여장 자체가 기분 나쁘다” “변태로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왜 하고 싶은지 이유를 모르겠다” 등 신랄한 의견을 쏟아냈다. 그렇다면 여장에 관심이 있는 남성들은 과연 어떤 차림을 꿈꿀까. 앞서 질문에서 “여장을 해보고 싶다”고 대답한 남성들에게 “하고 싶은 여장 코스프레”를 묻자 다음과 같은 순위가 나왔다. 1위 스타킹에 오피스정장 차림, 2위 간호사복, 3위 세일러복, 4위 유카타나 기모노 같은 일본 전통의상, 5위 메이드복. <web R25>는 “이밖에도 스튜어디스 제복, 차이나 드레스, 학교 수영복, 치어리더 복장 등이 순위에 올랐다”고 밝혔다. [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