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은 지난 2013년 12월 3조 3000억 원을 마련하겠다는 자구안을 발표, 그 일환으로 현대증권 매각 작업에 나섰다. 이후 지난 1월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오릭스PE를 선정, 6월에는 현대상선이 보유 중인 현대증권 주식 5307만여 주를 6475억 원에 오릭스에 매각하는 본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에 들어가면서 매각 일정은 삐걱대기 시작했다. 8월 말쯤 나올 것 같던 심사 결과는 지연을 거듭하며 넉 달째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일각에서는 자베즈와 현대그룹 간의 이면 계약과 파킹딜 의혹, 야쿠자 자금 연관설 등이 제기됐다. 결국 일본 오릭스 본사는 현대증권 인수에 부담을 느꼈고 계약해제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증권 매각은 현대그룹 자구 계획의 핵심 중 하나였다. 앞서 현대그룹은 지난 6월 현대증권 본계약 체결이 기정사실화되자 자구계획 발표 1년 6개월 만에 108% 초과달성했다며 자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초 자구안 초과달성 비율은 현대증권 매각 무산으로 80% 후반대로 떨어졌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 측은 자구안 이행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현대증권 매각 외에 자구안에 포함된 다른 방안은 거의 다 이행해 가고 있다”며 “현대증권 매각이 무산됐다고 해도 당장 어려운 상황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현대상선을 비롯한 현대그룹 계열사가 올해 안에 상환해야 하는 약 1조 원 규모의 차입금도 만기 연장과 회사채 신속인수제 등을 통해 급한 불은 끈 상황이라고 밝혔다.
자구안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현대증권 매각을 재추진하거나, 유상증자·전환사채 발행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유상증자나 전환사채 발행 등은 현대그룹에게는 부채가 아니다. 하지만 결국 주주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현대증권 매각 무산 소식이 전해진 19일 현대엘리베이터는 전환사채(CB) 발행 추진설에 대해 “운영자금 조달 등 목적으로 전환사채 발행을 포함한 다양한 자금조달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앞서 현대엘리베이터는 재무 건전성 강화를 위해 지난 7월 2775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한 바 있다. 벌써 최근 5년 사이 4번째 유상증자였다. 2대 주주 쉰들러홀딩AG와 갈등을 벌이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현대엘리베이터는 현재 유동성에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도 아니다. 지난 6월 말 기준 현대엘리베이터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1747억 원이다. 상반기 매출액도 6534억 원, 영업이익 688억 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올 3분기에도 좋은 실적을 거둘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결국 실적이 좋은 현대엘리베이터에서 자금을 조달해 계열사에 지원해준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이에 대해 현대그룹 관계자는 “현대엘리베이터 CB 발행 등 자금조달 방안 검토는 현대그룹 자구계획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현대상선의 신용등급이 낮아 채권을 발행해도 시장에서 소화가 안 된다”며 “결국 자금조달을 유상증자와 전환사채·신주인수권부사채 등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 주주들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고, 이는 주가에 영향을 끼친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유상증자가 실시되던 당시인 지난 7월 8만 9000원까지 올랐던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은 현재 절반 가까이 하락한 4만 원대 후반에서 거래되고 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