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회장(오른쪽)이 호텔롯데 상장을 통해 투명경영을 약속했지만, 신동주 전 부회장(왼쪽)은 상장에 반대하며 자신이 일본을, 동생은 한국을 경영하는 예전에 방식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경사진은 롯데호텔. 박은숙 기자
호텔롯데의 그룹 내 역할은 두 가지다. 우선 일본 롯데홀딩스와 국내 계열사를 이어주는 가장 단단한 연결고리이자 한국 롯데를 지배하는 실질적인 지주사 역할이다. 호텔롯데를 장악하면 일본과의 연결고리를 좌우할 수도 있고, 국내 계열사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문제는 호텔롯데를 장악하는 방법의 차이다. 주주 구성으로만 보면 광윤사와 일본 롯데홀딩스가 거의 지분 모두를 갖고 있다. 그런데 상장을 하면 주주 구성이 달라진다. 또 상장 방식에 따라서도 주주 구성 비율이 달라질 수 있다. 증권가 관계자는 “내년 초 호텔롯데가 상장하면 시가총액 기준 약 20조 원을 예상하고 있다”면서 “상장은 1차적으로 일본 롯데홀딩스에 이익이다. 구주매출이면 매각차익을, 신주발행이면 평가차익을 누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상장으로 외부 주주가 유입되면 일본 롯데의 영향력을 그만큼 줄어든다. 일본 롯데에 대한 지분에서 상대적으로 우위인 신동주 회장이 상장에 부정적인 이유다. 반대로 신동빈 회장 입장에서는 지분에서 열세인 일본 롯데의 영향력을 줄이면서 자신의 영향력을 높이는 기회로 활용할 만하다.
신동빈 회장이 보유한 상장주식 가치는 약 1조 5000억 원이다. 호텔롯데 시가총액이 20조 원이라고 가정하면 산술적으로 7.5%의 지분을 살 수 있다. 그런데 이 정도로는 50%가 넘을 일본 롯데의 지분율에 한참 못 미친다. 게다가 호텔롯데 주식 사자고 핵심 계열사 지분을 매각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핵심 계열사 지분은 신동주 회장 측도 비슷하게 들고 있기 때문이다. 신동빈 회장으로서는 핵심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도 유지하면서 호텔롯데를 장악할 묘수가 필요하다. 그리고 실제 묘수는 있다.
호텔롯데는 지난 8월 제주도 면세사업부문을 물적분할했다. 물적분할이란 회사 내 사업부문을 떼어내 별도 회사를 설립하면서 그 주식을 모기업인 기존 회사가 100% 갖는 방식이다. 호텔롯데 매출의 86%, 영업이익의 91%가 면세점부문(6월 말 기준)이다. 시내와 공항, 서울과 지방의 면세점부문을 떼어내 제주처럼 별도 법인을 만들면 호텔롯데의 덩치는 줄어든다. 단순화해 설명하면 시총 20조 원의 호텔롯데를 2조 원짜리 호텔롯데지주회사(가칭)와 18조 원짜리 자회사인 롯데면세점(가칭)으로 나누는 방법이다. 2조 원짜리 회사가 18조 원짜리 회사를 100% 지배하지만 상법상 분명 별도법인이다.
신동빈 회장이 가진 1조 5000억 원의 자산이면 20조 원짜리 회사 지분 7.5%에 상당하는 가치지만, 2조 원짜리 회사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게다가 주식을 팔아 돈을 마련할 필요도 없다. 신 회장이 가진 계열사 지분을 호텔롯데지주회사에 현물로 출자하고 대신 이 회사 신주를 받으면 된다. 이 경우 3조 5000억 원짜리 회사 지분 43%를 확보할 수 있다. 신동빈 회장의 계열사 지배력은 호텔롯데지주로 이동하지만, 신 회장이 호텔롯데를 지배하는 만큼 지배력 총량에서의 변화는 없다.
게다가 신동주 회장과 박빙인 지분의 균형을 깰 돈도 만들 수 있다. 호텔롯데지주가 가진 롯데면세점 지분 100% 중 경영권에 필요한 부분을 제외하고 상당부분을 시장에 매각하거나 상장하는 방법이다. 이렇게만 되면 호텔롯데는 구주매출로 막대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이 돈으로 핵심 계열사 지분을 확보한다면 단숨에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다.
게다가 상장이 되면 배당도 늘고, 주식 매각도 가능해 일본 롯데 주주들에게는 현 상태보다는 분명 ‘돈이 되는’ 방법이다. 경영권 분쟁을 겪은 재계의 한 관계자는 “캐스팅 보트를 쥔 주주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뭔가 반대급부를 제시해야 한다”면서 “일본 롯데 지분이 없는 신동빈 회장이 이들을 설득했다면 돈이든 이권이든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반대급부를 약속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문제는 일본 롯데 주주들이 신동주 회장 측에 서서 신동빈 회장과 대결하는 경우다. 신동주 회장은 최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벌어지는 일은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CEO) 쓰쿠다 다카유키(佃孝之·72), 최고재무책임자(CFO) 고바야시 마사모토(小林正元·66)가 동생과 동맹을 형성, 나를 자르고 아버지를 몰아낸 경영권 쿠데타다. 아버지(신격호 총괄회장)를 배신한 사람들이 동생에게 계속 충성할 것으로 믿지 않는다”며 “당장은 3자가 협력하는 듯 보이지만, 이해가 맞아 그런 것이지 단단한 동맹이 아니다. 특히 동생 사람으로 알려진 고바야시가 동생을 쫓아내는 시나리오를 가장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 롯데는 최근 신동주 회장 측과도 접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이라도 일본 롯데 임직원 주주들이 신동주 회장과 손을 잡으면 신동빈 회장에게 치명상을 가할 수 있다. 신동빈 회장이 일본 롯데에 대한 직접적인 지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신동빈 회장 측이 추진하는 상장과 지배구조 개편 등의 과정에서 이들이 좀 더 많은 지분과 대가를 요구할 경우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증권가의 한 관계자는 “현재 일본 롯데 임직원 주주들의 지분율이면 호텔롯데 상장은 물론 그룹 지배구조 개편에서도 상당한 실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서 “결국 신동주 회장과 신동빈 회장 가운데 어느 쪽이 이들의 요구를 더 채워주느냐가 이번 싸움의 승패를 가를 최대 변수”라고 내다봤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