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 최동원 ‘불꽃 투혼’
한국시리즈를 수놓은 최고의 피칭을 거론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투수가 있다. 아마도 한국 프로야구가 계속되는 한 잊히지 않을 그 이름. 고(故) 최동원이다. 잘 알려진 대로 최동원은 1984년 롯데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할 때 팀의 4승을 모두 만들어 냈다. 한국시리즈 1·3·5·6·7차전에 모두 등판하는 불꽃 투혼을 보여줬다.
1984년 KS에서 불꽃투혼을 펼친 롯데 최동원.
사실 롯데 강병철 감독은 7차전 선발투수 결정에 앞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강 감독의 질문에 최동원의 부친 고(故) 최윤식 씨는 “사우나를 다녀온 뒤 생각해보자”고 했다. 부자(父子)는 사우나에서 어려운 결단을 내렸고, 그 투지가 결국 역사를 만들었다. 하루 밖에 못 쉬고 다시 마운드에 오른 최동원은 피로누적으로 제 컨디션이 아닌 상태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버텨 나갔다. 그 사이 롯데 유두열은 1-4로 뒤진 8회 역전 3점홈런을 터트리면서 에이스의 투혼에 화답했다. 최동원은 결국 9회 마지막 타자 장태수를 무사히 삼진으로 잡아내면서 제 손으로 팀을 한국시리즈 정상까지 끌어 올렸다. 공교롭게도 최동원이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처음 삼진을 잡았던 타자 역시 장태수였다.
# 빙그레 송진우가 놓친 퍼펙트게임
빙그레 왼손 에이스 송진우는 1991년 해태와의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사상 첫 퍼펙트게임의 문턱을 아쉽게 넘지 못했다. 볼 판정 하나가 운명을 갈랐다. 빙그레가 2패를 먼저 안은 상태에서 대전구장 마운드에 선 송진우는 이날 8회 투아웃까지 해태 강타선에게 단 한 차례의 출루도 허용하지 않았다. 삼진 3개, 내야땅볼 12개, 외야플라이 8개로 아웃카운트를 늘려가면서 역사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갔다.
해태 김응룡 감독은 팀 타선의 침묵이 이어지자 김종모의 대타로 대전 출신 정회열을 투입했다. 정회열은 볼카운트 1B-2S서 1루수 파울플라이를 쳤다. 아웃될 수 있는 공이었지만, 포수 유승안과 1루수 강정길이 서로 미루다 놓쳤다. 대기록 달성에 대한 부담감 탓인 듯했다. 계속된 2B-2S서 송진우가 회심의 공을 던졌다. 당시 심판진 가운데 가장 스트라이크존이 정확하기로 소문났던 이규석 심판의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볼. 송진우는 지금도 당시 그 공이 스트라이크존에 꽉 차게 들어갔다고 믿는다. 그러나 판정은 되돌릴 수 없었다. 정회열은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고, 결국 8구째가 볼이 돼 퍼펙트가 깨졌다. 아쉬움 속에 다시 공을 잡은 송진우는 홍현우에게 좌전안타, 장채근에게 2타점짜리 역전 2루타를 각각 맞고 대기록 대신 패전을 안아야 했다.
# 현대 정명원의 유일한 노히트노런
현대 정명원은 1996년 10월 해태와의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최고의 역투를 펼쳤다. 정규시즌 동안 마무리투수로 활약했던 그가 깜짝 선발로 나서 포스트시즌 역사상 유일한 노히트노런을 작성했다. 정명원은 이날 해태의 29타자를 상대로 안타와 실점 없이 4사구 3개만 내주면서 탈삼진 9개를 잡아냈다. 개인 첫 한국시리즈 승리이기도 했다. 최고 구속 147km의 직구와 체인지업, 포크볼을 던지며 해태 이대진과 팽팽한 투수전을 펼쳤다. 이대진도 7회까지 3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했지만, 현대가 회심의 선발 카드로 내밀었던 정명원의 기를 꺾지 못했다. 현대는 8회말 무사 만루서 박진만과 김인호의 적시타로 2-0을 만들고, 2사 만루서 이숭용의 2타점 우전적시타로 점수를 더 뽑아 4-0으로 이겼다. 이날 정명원과 노히트노런을 합작한 포수는 김형남. 부상으로 빠진 주전 포수 장광호를 대신해 포수 마스크를 썼다가 대기록의 완벽한 조력자가 됐다.
# 삼성 배영수 아쉬운 역투
배영수.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9회까지도 승부가 안 갈라지자 배영수는 강판을 지시한 당시 선동열 삼성 수석코치에게 “1이닝만 더 던지겠다”고 했다. 연장 10회까지 한 이닝을 더 던진 뒤에야 투구용 스파이크를 벗었다. 투구수는 116개. 그러나 삼성이 다음 이닝에서 또 다시 득점에 실패했고, 경기를 끝마치지 못한 배영수는 노히트노런 기록을 공인받지 못했다. 삼성은 연장 12회말 2사 만루서 마지막 끝내기 승리 기회를 잡았다가 강동우가 몸쪽으로 바짝 붙어 날아온 현대 소방수 조용준의 공을 본능적으로 피하면서 끝내기 밀어내기 사구 기회마저 놓쳤다. 여러 모로 안타까움을 많이 남긴 경기였다.
# OB 김유동의 우승 확정 만루홈런
OB 김유동은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영원히 기록에 남을 그랜드슬램 하나를 쏘아 올렸다. OB 박철순과 명품 완투 대결을 펼치던 삼성 이선희를 제대로 울렸다. 김유동은 이미 2회 이선희의 초구를 때려 솔로홈런을 때린 뒤였다. 또 5회 2사 1·2루에서는 3-3 동점을 만드는 중전 적시타도 만들어 냈다. 9회까지 같은 스코어로 팽팽한 가운데 OB는 김경문의 기습번트 내야안타로 기회를 잡았고, 2사 만루서 신경식이 밀어내기 볼넷을 골라 결승점을 뽑았다. 그리고 계속된 만루에서 김유동이 이선희의 초구를 가격해 만루홈런을 동대문구장 담장 너머로 날려 보냈다.
이날 6타점을 올려 원년 한국시리즈 MVP가 된 김유동은 부상으로 승용차를 받았다. 당시 프로야구에 몸담았던 야구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김유동은 그 승용차를 나이트클럽 단골 웨이터에게 넘겼다고 한다. 시즌 내내 쌓아뒀던 외상값 대신 그 승용차를 양도하면서 채무 관계도 깨끗하게 청산했다는 후문이다.
# KIA 나지완 가장 짜릿했던 그 한 방
한국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역사상 가장 극적인 ‘라스트 게임’이 탄생했다. 한국시리즈를 아예 끝내 버리는 홈런이 9회말에 터졌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고, 일부러 각본을 썼다 해도 믿기 어려울 만한 상황. 2009년 KIA와 SK의 한국시리즈 7차전 얘기다.
2009년 10월 24일 열린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KIA가 SK를 6-5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날의 히어로 KIA 나지완이 9회 말 끝내기 솔로 홈런을 친 뒤 동료들과 환호하는 모습.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해태 시절을 포함해 통산 10번째 우승을 노리던 KIA와 3년 연속 우승에 도전한 SK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 정규시즌에서 박빙의 차이로 1·2위 자리를 결정했던 두 팀답게 시리즈 전적 3승 3패로 팽팽하게 맞섰다. 양 팀 선발은 KIA 구톰슨과 SK 글로버. SK는 4회초 박정권의 2점 홈런으로 기선을 제압한 뒤 5회초 1사 만루서 다시 박정권의 2루수 땅볼로 3-0 리드를 잡았다. 또 KIA가 5회말 2사 2루서 안치홍의 중전안타로 1점을 따라붙자 SK는 6회초 김강민의 희생플라이와 박재상의 적시타로 2점을 추가해 5-1까지 도망갔다. SK의 우승이 눈앞으로 다가온 듯 했다. 그러나 기적은 언제나 다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에 찾아온다. KIA는 6회말 나지완의 2점 홈런으로 추격의 시동을 걸었다. 이어진 7회말에는 안치홍의 솔로 홈런과 김원섭의 적시타가 터졌다. 5-5 동점.
그렇게 운명의 9회말이 열렸다. SK는 던질 수 있는 투수를 모두 소진한 상태. 6차전 등판 이후에 팔꿈치가 아파 쉬고 있던 채병용이 마운드에 올라야 했다. 1사 후 타석에는 나지완이 섰다. 바로 전 타석에서 홈런을 날리며 물 오른 타격감을 자랑하던 타자였다. 볼카운트 2B-2S서 채병용이 던진 시속 143km 직구가 약간 높게 들어갔다. 완벽한 먹잇감을 찾은 나지완이 무섭게 배트를 돌렸다. 공이 배트에 맞는 순간 모두가 홈런임을 직감했다. 한국시리즈 역사상 첫 7차전 끝내기 홈런이었다.
흰 공이 잠실구장 외야를 향해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고 동안, 나지완은 이미 절반쯤 울기 시작하면서 베이스를 하나하나 밟아 나갔다. 그라운드로 뛰어나온 KIA 선수들은 얼싸안고 펄쩍펄쩍 뛰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 이종범의 눈에도 눈물이 흘렀다. 한국시리즈 우승의 대업을 이룬 KIA 조범현 감독은 스승이었던 SK 김성근 감독을 찾아가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였다. KIA는 물론 모든 야구팬들이 잊지 못할 장면이었다.
# 역시 홈런은 이승엽!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홈런타자인 삼성 이승엽은 2002년 LG와의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쏘아 올린 홈런포를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한다. 한국과 일본을 통틀어 수백 개의 타구를 담장 밖으로 날려 보냈지만, 이 홈런은 여전히 가장 애착을 느끼는 것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앞서던 삼성은 6-9로 뒤진 채 정규이닝 마지막 공격을 맞이했다. 7차전까지 가는 끝장 승부가 눈앞이었다. 9회말 1사 1·2루에서 LG 마무리투수 이상훈과 맞선 타자는 바로 ‘라이언 킹’ 이승엽. 그는 전 타석까지 한국시리즈 20타수 2안타의 극심한 부진을 겪고 있었다. 그러나 ‘딱’ 소리가 들린 순간 대구구장이 용광로처럼 들끓었다. 이승엽은 양팔을 높이 뻗은 채 환호하며 1루로 향했다. LG 쪽으로 기울었던 흐름이 순식간에 삼성으로 넘어오는 동점 3점 홈런이었다. 곧이어 타석에 들어선 마해영은 내친 김에 또 하나의 홈런을 때려내 끝내기 승리까지 완성해 버렸다. 우승을 오매불망 기다리던 삼성은 그렇게 극적으로 창단 후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배영은 스포츠동아 기자 yeb@donga.com
‘깜짝 스타’ 열전 한국시리즈는 다양한 스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시즌 내내 그리 빼어난 성적을 보여주지 못했던 선수들이 깜짝 스타로 등장해 한국시리즈의 판도를 바꿔버리곤 한 것. 지금은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투수로 성장한 김광현이 신인 시절 한국시리즈를 통해 최고의 피칭으로 스타덤에 올랐고 팀에서 방출될 예정이던 김선진은 최고의 홈런 한 방으로 자신의 전성기를 열었다. # ‘더 스타’ SK 김광현의 탄생 SK 김광현은 2007년 10월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가을 하늘의 별로 떠올랐다. 상대 선발투수는 1차전에서 역대 한국시리즈 최소투구 완봉승(99개)을 거둔 두산 에이스 다니엘 리오스. 반면 김광현은 시즌 3승을 올리면서 구단의 높은 기대에 못 미친 고졸 신인 투수였다. SK는 1회 2사 2루서 이호준의 중전안타로 선취점을 올린 뒤 5회 조동화-김재현의 연속타자 홈런으로 3-0을 만들었다. 김광현이 이기기 위해 필요한 점수로 그 정도면 충분했다. 한국시리즈에 히든카드로 나선 앳된 얼굴의 투수는 특유의 역동적인 투구폼과 시속 150km를 넘나드는 강속구를 앞세워 두산의 강타선을 틀어막았다. 6회말 1사 후 이종욱에게 안타를 내주기 전까지 노히트노런을 이어갔을 정도다. 공 하나하나에 힘을 실어 공격하는 눈부신 패기 앞에 두산 타자들은 속수무책이었다. 7.1이닝 1안타 9탈삼진 무실점. 김광현의 해맑은 미소와 함께 SK의 운명은 바뀌었고, 김광현 역시 한국 프로야구가 주목하는 스타 투수로 떠올랐다. 이후 구단의 간판스타로 자리 잡은 김광현은 2010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는 아예 1차전 선발투수로 나섰다. 팀의 에이스가 됐다는 방증이다. 그는 1차전에서 1회 두 번째 타자 김상수의 삼진을 시작으로 다음 타자 박석민, 2회 최형우∼진갑용∼신명철, 3회 첫 타자 강봉규까지 연속 삼진을 잡아내며 한국시리즈 역대 최다인 6연속타자 탈삼진 기록을 세웠다. # LG 김선진 운명을 바꾼 홈런 1994년 LG와 태평양의 KS 1차전에서 연장 11회 끝내기 홈런을 LG의 김선진. 사진제공=한국야구위원회 김선진은 원래 시즌이 끝난 뒤 구단에서 방출될 예정이었다. 1년 전에도 정리대상 명단에 올랐다가 구단 여직원과 결혼한 덕분에 1년간의 유예 기간을 얻은 터였다. 그러나 그 홈런 이후 LG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뒷받침한 ‘귀한 몸’으로 대접받았다. LG에서 선수생활을 6년이나 더 연장하기도 했다. 포스트시즌 30경기 58타석에 나선 김선진은 딱 하나의 홈런을 때렸는데, 그게 바로 그 끝내기 아치였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