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 교민 사회에 따르면 마카오 대형 카지노 ‘정킷방’의 한국인 알선업자가 2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마카오에서 장사하는 선배들도 많다. 원정뿐 아니라 홀던바도 같이 다니고….”
지난 20일 기자와 만난 조폭 A 씨는 이같이 말했다. 기자가 정킷방의 실체를 묻자 그는 “선배들이 직접 카지노를 운영하는 게 아니다. 일단 마카오 쪽에 호텔 카지노 룸을 빌려 VIP들을 초청한다”며 “그 방들이 정킷방이다. 그 다음 커미션을 먹는 방식이다”고 밝혔다. A 씨는 “주로 바카라, 블랙잭을 한다. 나도 몇 년 전에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프로야구선수랑 원정도 돌고 하우스도 많이 갔다”고 덧붙였다. 다른 조폭 B 씨는 “사람들이 정킷방에서 도박하는 걸 대단하게 생각하는데…”라며 “사실 단순하다. 일단 돈을 다 대주니까, 외국 나가서 편하게 놀다온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답했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해외 원정 도박을 위한 정킷방은 익숙한 단어처럼 보였다.
정킷(junket)은 ‘공무원들이 공금으로 유람 삼아 다니는 시찰’을 뜻하는 단어다. 하지만 마카오 쪽에서는 “원정 도박 고객을 알선한다”는 뜻으로 통한다. 정킷방은 개인이나 단체가 카지노 측에 일정액을 지불하고 VIP룸을 임차해 운영하는 곳이다. 국내 폭력조직은 일단 1년 단위로 70억∼150억 원의 보증금을 내고 마카오, 홍콩 등지에 카지노 VIP룸을 빌려 정킷방을 마련한다. 이곳에서 하루 수십억 원대의 판돈이 오가는 도박이 벌어진다.
서울중앙지검에 따르면 마카오 쪽은 범서방파 계열의 광주 송정리파가 주름잡고 있다. 필리핀은 청주 파라다이스파와 학동파가 세를 뻗치고 있다. 영산포파와 영등포중앙파는 캄보디아, 전남 영광파는 베트남에 거점을 두고 있다. 이들 조직은 국내 모집책에게 정킷방 고객들을 데려오도록 지시한다.
모집책들은 카지노나 골프장, 유흥주점 등을 돌면서 대상을 물색한다. 모집책들이 ‘호구’들을 물어오면 정킷방을 운영하는 조폭들은 ‘시드머니’(최초 시작하는 금액)가 수천만 원 이상인 고객을 중심으로 호텔 숙박비부터 도박자금까지 대부분의 비용을 제공한다. 억대의 도박자금을 들고 해외로 나갈 수 없기 때문에 현지에서 도박자금을 빌려주는 시스템이다. ‘도박을 반대하는 시민사회모임’ 강신성 사무총장은 YTN과의 인터뷰에서 “비행기 비용도 정킷방을 운영하는 쪽에서 낸다”며 “일단 몸만 나가면 된다. 정산은 나중에 수금책을 통해서 따로 이루어진다”고 밝혔다.
마카오 시내 카지노의 내부 모습. 연합뉴스
정킷방에선 어떤 종류의 도박을 할까. 여기서는 주로 ‘카지노 게임의 왕’이라 불리는 바카라 도박을 벌인다. 바카라는 뱅커 (Banker)와 플레이어(Player)의 어느 한쪽을 택해 9 이하의 높은 점수로 승부하는 카드 게임이다. 고객과 고객, 고객과 딜러가 승부를 할 수 있다. 불과 30초가 되지 않아 승부가 끝난다. 빠르면 한 판이 단 3초 만에 결판이 나기도 한다. 한 판이 끝난 뒤 무한대의 풀 베팅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정킷방 안에선 한 번에 3억 원씩 베팅할 수 있기 때문에 순식간에 10억 원을 잃을 수도 있다. 회전율이 빠르고 중독성이 강한 도박 방식이다.
그렇다면 조폭들은 어떤 방식으로 돈을 벌까. 정킷방을 빌리느라 거액의 임대료를 지불했으니 이들이 ‘본전’을 뽑아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 기본적으로 조폭들은 정킷방에서 고객이 쓰는 게임비의 1∼3%를 ‘롤링수익(수수료)’으로 받는다. 여기에 고객들이 잃은 돈의 40~50%를 ‘루징 수익’으로 챙긴다.
특히 해외 원정 정킷방 도박은 환치기가 되지 않으면 도박 자체가 불가능하다. 조폭들은 이를 이용해 환치기 ‘수수료’도 챙긴다. 예를 들어 고객들에게 홍콩달러로 판돈을 빌려주고 자신의 국내 계좌에는 한화로 돈을 돌려받아 차익을 얻는 식이다. 이들은 고객들이 도박자금을 갚지 못했을 경우 직접 수금에 나서기도 한다. 물론 이 작업은 국내에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해외원정도박을 즐기는 이들은 주로 누구일까. 중견 기업인들과 유명 스포츠 선수, 그리고 유명 연예인 등 부유층들이다. 국내 카지노는 보는 눈이 많아 신변이 노출될 수 있어 해외로 떠난다는 것.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6월 당시 해외원정도박 수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검찰은 수사 도중 범서방파의 두목 김태촌 씨(사망)의 양아들로 알려진 김 아무개 씨(42·수감 중)의 휴대폰에서 원정도박 관련 문자를 발견했다. 이 문자를 토대로 검찰은 정킷방 운영 폭력조직의 리스트를 확보했고 결국 광주 송정리파 행동대원 이 아무개 씨(39)를 구속했다. 이를 계기로 검찰의 칼날은 중견 기업인들을 향했다. 최근 검찰은 화장품 업계의 미다스 손으로 불리는 네이처리퍼블릭의 정운호 대표와 울산 해운업체 대표 문 아무개 씨(56) 등을 구속했다.
특히 정 대표는 이 씨가 운영한 정킷방의 단골고객. 2012년 3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그는 이 씨의 주선으로 마카오, 필리핀 등지의 정킷방에서 약 101억 원을 도박으로 탕진했다. 문 씨도 마카오의 정킷방에서 도박판을 벌였다. 검찰에 따르면 문 씨가 잃은 돈은 무려 200억 원. 정 대표와 문 씨 외에도 중견기업인들이 도박 혐의로 줄줄이 구속되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의 간판급 야구 선수들도 검·경의 수사를 받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 역시 정킷방에서 억대 도박을 벌였다고 한다. 검찰은 이 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삼성의 선수 3~4명이 이 씨를 통해 홍콩을 거쳐 마카오에서 원정도박을 벌인 정황을 잡았다. 지난 19일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이들 중 2명의 출입국 기록을 확보해 두 선수가 비슷한 시기에 홍콩에 다녀온 것을 확인했다. 경찰은 이들의 계좌와 통신내역을 추적 중이다. 결국 삼성 구단 측은 18일 해외원정도박 의혹을 받고 있는 선수들을 한국시리즈 엔트리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야구 선수들뿐만 아니라 유명 개그맨도 원정도박 의혹으로 내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킷방’ 원정도박 때문에 수많은 유명인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