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철 감독
최진철 감독은 칠레에 가기 전까지만해도 ‘이승우의 팀’이라는 비아냥 아닌 비아냥을 받아가면서, 팀의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물음표’의 시선에 맞닥드렸다. 하지만, 보란듯이 대한민국을 ‘이승우의 팀’이 아닌 ‘원 팀’으로 거듭나게 했다.
사람들은 최진철하면, 지난 2002년 월드컵의 주역으로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월드컵 직전만해도 최진철은 일부 축구팬들에게만 알려졌을 뿐, 일반대중에 있어서 인지도는 지극히 낮았다.
오현고 시절까지만해도 최진철은 공격수였다. 숭실대 입학 이후 수비수로 나섰지만, 98~99년 시즌엔 당시 전북 공격수 김도훈의 일본 진출로 공격수로 나서기도 했다. 187cm의 큰 키를 활용한 공격 옵션으로서 제법 쏠쏠한 활약을 했지만, 당시 황선홍, 최용수, 김도훈, 이동국, 안정환, 박성배 등의 리그 A급 공격수들의 득세로 인해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최진철은 1997년 브라질과의 A매치전에 데뷔하며 국가대표와 연을 맺었지만, 이후 연을 맺지 못하다가 히딩크 전 감독의 레이더망에 포착돼서야 다시금 태극마크를 달 수 있었다.
A매치 자체도 27살의 비교적 늦은나이에 데뷔전을 치렀지만, 본격적으로 월드컵을 통해 국민들에 각인을 시켰을 때 그의 나이는 이미 축구선수로서 황혼기라 할 수 있는 서른이었다. 한 마디로 최진철은 전형적인 ‘뒤늦게 핀 꽃’이었던 셈이다.
‘뒤늦게 핀 꽃이 더 아름답다’했던가. 최진철은 2002년 월드컵 당시, 대표팀의 쓰리백라인의 헤더형 수비수로 상대 공격수들을 경기에서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4강전 석패한 독일전에서 그는 ‘클로제’를 밀착마크하며 전 세계에 이름 석 자를 각인시켰다.
서른 여섯의 나이에 또 한번의 월드컵을 경험한 최진철은 2007년 A매치 65경기 4골, K리그 241경기 18골(오직 전북에서만 뛴 원클럽맨이다)의 기록을 남기고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