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길·안철수 전 공동대표와 박지원 의원 등 비주류 3인방이 20대 총선을 6개월 앞에 두고 ‘문재인 대표 제거 작전’ 최전선에서 연일 맹공격을 펼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범친노계인 한 의원은 “11월은 비노계의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라며 “그 시기를 놓치면 더는 힘을 받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11월 한 달은 국정화 정국에서 벗어나 야권 내전의 장이 될 것이란 얘기다. 11월 반란의 징후는 곳곳에서 포착됐다. 비주류 3인방이 최전선에 섰다. 박지원 의원은 “작은 선거라 변명하지 말고 큰 책임을 져야 한다”며 “적당하게 또 넘기면 다음 총선에서도 또 적당하게 패배한다. 이 기회를 놓치면, 정권교체도 물 건너간다”고 ‘문재인 사퇴론’에 불을 지폈다. 공동대표였던 김한길·안철수 의원도 “우리 당 현주소”, “더 강한 혁신이 필요하다”고 가세했다. 당내 계파 갈등이 최고조에 다른 셈이다.
특히 ‘혁신 프레임’을 고리로 문 대표를 정면 공격하고 있는 안 의원의 행보는 눈여겨볼 만하다. 비노계 가운데 대중성이 가장 높은 안 의원의 행보에 따라 당 원심력이 극대화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국정화 정국이 한창인 10월 23일과 26일 부산과 전남 여수를 찾았다. 문 대표의 일정과 겹쳤다. 문 대표의 여수 방문은 국정화 정국에서 첫 호남 방문이었다. ‘친노=낡은 진보’ 논란에 불을 지핀 안 의원이 특유의 타이밍 정치로 ‘문재인 힘 빼기’에 돌입한 것이다.
안 의원은 국정화 반대 대국민 서명운동을 펼친 문 대표와는 달리, 혁신 행보를 이어갔다. 그는 여수에서 자신의 혁신안을 거론하며 “문 대표 등 지도부가 응답하지 않고 있어 난감하다”고 힐난했다. 이들은 같은 달 28일 제6회 아시아미래포럼이 열린 서울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에서 조우했지만, 서로 눈길조차 건네지 않았다.
다음날인 29일 안 의원의 싱크탱크 ‘정책네트워크 내일’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정권교체를 위한 야당의 혁신,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2012년 대선 패배 이후 줄곧 ‘문재인 사퇴론’을 주장한 한상진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가 기조발제를 맡았다. 그러자 친노계 당직자는 “총은 외부로 쏴야 할 시기가 아니냐”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문 대표의 대선 구상 중 하나인 ‘희망스크럼’이 붕괴 일보 직전에 처한 셈이다.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불씨도 살아있다. 호남 출신인 최규성 의원(김제완주·3선)은 오픈프라이머리 도입 논의를 위한 의원총회 소집요구서를 비노계인 이종걸 원내대표에게 전달했다. 여기에는 당 소속 의원 79명이 서명했다. 문 대표는 “현역 의원 하위 20% 물갈이를 천명한 혁신위를 무력화하자는 것이냐”라며 반대했다. 의총은 몇 차례 연기됐다. 그러자 최 의원은 “당헌 위반”이라고 맞받아쳤다.
당 내부에선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의 당론 확정 여부를 떠나, 의총 소집 자체는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로 보고 있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당 지도부 중 3명이 의총 소집 요구서에 서명했다. 연말정국에서 이들이 사사건건 맞붙기라도 할 경우 자중지란에 빠지게 된다. 박근혜 정권에 맞서는 동력을 끌어올리기는커녕 20대 총선 전 최대 악재를 자초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비노계 의원실 한 관계자는 “문 대표 등 친노계가 11월 중순까지 의총 소집을 지연할 경우 당내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새정치연합 당규에 따르면 평가위는 총선 5개월 전에 의원들에 대한 평가를 마쳐야 한다. 20대 총선 5개월 전은 11월 13일이다.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위원장 조은 동국대 명예교수)는 10월 28일 첫 회의를 개시했다. 당규상 보름 만에 평가를 끝내야 한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평가위 관계자는 “12월 중순께나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문 대표가 11월 중순까지 오픈프라이머리 논의를 위한 의총을 소집하지 않는다면, 계파 패권주의는 물론 당규 위반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어떤 식으로든 11월 중 오픈프라이머리 내전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얘기다. 당 내부에선 국정화 확정고시일인 11월 5일 이후 비노계의 총궐기가 시작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여기에는 대중성을 갖춘 안 의원이 공중전을 전면화한 가운데 비주류 지도부와 호남 의원이 합세할 경우 11월 역습을 단행할 수 있다는 전략적 셈법이 깔렸다.
다만 확전 여부는 불분명하다. ‘현역 의원 20% 물갈이’는 김상곤 혁신위원회 혁신안의 핵심이다. 문 대표 등 당 지도부는 혁신위에 사실상 전권을 넘겼다. 이런 상황에서 호남 3선 의원이 요구한 의총에서 오픈프라이머리가 당론으로 확정된다면, 즉각 호남 및 현역 의원의 기득권 지키기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 김상곤 혁신위에 이어 조은 평가위까지 가동된 상황에서 과연 두 기구를 무력화할 명분과 실익이 있느냐는 근원적인 물음에 봉착한다.
김한길계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실제 의총이 소집되면, 생각보다 의원들의 호응도가 떨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 의원이 본회의장에서 일일이 의원들에게 서명을 받으러 다닌 터라, 어쩔 수 없이 서명한 의원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논란 이후 새정치연합 의원들의 메신저 방에는 “의총 소집 취지를 잘 몰랐다”며 서명 취소 발언이 속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표는 비노계 반란설에도 불구하고 정면 돌파를 선택, 지지층 결집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전략이다.
문 대표 측 한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가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는 국면에서 우리끼리 오픈프라이머리니, 당원중심주의니 논란을 한다면 국민들의 시선이 어떠하겠느냐”며 “친노든 비노든 관계없이 지역구 바닥 표심 훑기에 나선 이들이 치명타를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비노의 반란이 처음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약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당 주류는 일단 ‘고’를 택했다. 애초 구상대로 조은 평가위에 현역 의원들에 대한 평가작업을 맡기고, 문 대표는 국정화 정국에서 ‘통합과 혁신’ 프레임을 앞세워 지지층 결집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전략이다.
판은 만들어졌다. 연말정국 곳곳은 지뢰밭이다. 국정화 반대 여론이 날로 증가하면서 반 박근혜 흐름은 한층 공고해졌다. 11월 초 한·중·일 정상회담에선 일본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문제가 국정화 논란과 맞물릴 경우 친일 프레임이 확전 양상으로 치달을 수 있다. 또한 정부가 연말 개각을 단행한다면, 여의도는 즉각 청문회 정국으로 전환한다. 박 대통령이 또 다시 ‘인의 장막’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국정화 정국이 눌렀던 화약고가 한꺼번에 터져 나올 가능성이 농후한 셈이다.
반대로 범야권 지지층 결집 요소는 곳곳에 넘쳐난다. 비노계의 반란설에도 불구하고 문 대표가 정면 돌파를 선택한 이유다. 문제는 역시 문 대표의 리더십이다. 조은 평가위는 첫발부터 삐걱거렸다. 애초 내정된 오세제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선임연구원 대신 지병근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들어왔다. 그간 86(80년대 학번·60년대생)그룹에 비판적이었던 오 연구원이 빠지자, 당 내부에선 친노 주류가 86그룹 포섭에 돌입한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조 위원장은 “살아온 경륜을 걸고 공정하게 심사하고 평가할 것”이라며 우려를 일축했다. 하지만 문 대표가 리더십의 체질을 개선하지 않은 한 돌파구는 없다. 한 정치평론가는 “문 대표의 생존전략은 이념구도로는 유능한 경제정당을 통한 ‘중도층 공략’, 이슈전략으로는 ‘뉴 파티 비전’을 통한 혁신의 길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