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예살결산특별위원회에서 추경예산을 심사하는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지난 일주일 동안 각 상임위 예비심사에서 예산이 증액된 규모는 3조 원을 훌쩍 넘는다. 정부가 제출한 원안에서 3조 원에 상당한 지역구 사업들이 추가된 것이다. 정부가 올해 SOC 사업 예산을 1조 5000억 원 감액한 채 제출했지만 국회가 다시 늘려놨다. 특히 국토위는 예비심사 과정에서 정부가 마련한 안보다 2조 4524억 원을 증액한 24조 7120억 원으로 의결했다. 사업 예산 대부분은 도로, 철도, 공항, 하천 관련 예산이 새로 생기거나 증액된 것이다. 도로·철도사업 135건 가운데 도로 건설에 배정된 사업은 총 100건인데 이 중 27건은 정부 예산안에 없던 것이었다.
또 20억 원 이하 소규모 사업 가운데 33개는 2억~5억 원씩 증액되기도 했다. 주로 지방 국도에서 나오는 국가지방도로를 새로 건설하거나 기존 국도의 확·포장, 진입출로 추가, 철도 공사 등이다. 지역구에 도로, 공항, 하천 등을 건설할 수 있는 SOC 사업이 의원들의 요청에 의해 늘어난 것이다. 지역구 의원 입장에선 SOC 같은 사업이 총선용 예산을 늘리기에 제격이다. 철도사업 중에서도 35건 중 11건은 정부 예산안에 없었지만 국토위 위원들이 추가한 신규 사업이었다.
국토위 위원뿐만 아니라 여야를 가리지 않고 다른 상임위원들도 국토위 사업 예산에 자기 지역구 사업 예산을 끼워 넣은 흔적이 발견됐다. ‘청도-밀양2 국도건설사업’이 정부 원안에 있던 4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증액됐다. 이는 최경환 경제부총리(경북 경산·청도)의 지역구와 관련 있다.
10억 원이 새로 배정된 ‘문산~도라산 전철화 사업’은 황진하 새누리당 사무총장의 지역구다. 군위~의성 국도건설, 고로~우보 국도건설 사업도 10억 원씩 신규로 배정됐는데 이는 박근혜 대통령 정무특보를 맡았던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의 지역구다. 또 ‘한기리-교리 국도 사업’의 예산 역시 45억 원에서 175억 원으로 늘어났다. 이 국도는 경북 김천와 경남 산청을 지나는데 새누리당 이철우, 신성범 의원이 이 지역구 출신이다.
야당 의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충남 천안에서 충북 청주공항을 잇는 복선전철 사업예산이 원안의 10억 원에서 347억 원으로 증액됐는데 이는 천안, 세종시 등에 지역구가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이승조, 박완주, 이해찬, 변재일 의원 등과 관련이 있다. 또 전남 강진과 해남을 연결하는 ‘옥천-도함 도로건설사업’의 예산은 2억 원에서 12억 원으로 늘어났다. 이는 새정치연합 김영록, 황주홍 의원의 지역구다.
국토위 관계자는 “국토위의 경우에는 SOC, 철도 사업이 많기 때문에 관행적으로 증액이 이뤄졌었는데 이번에는 유독 증액이 많고 삭감이 16억 원밖에 되지 않아 국회가 예산심사권을 포기한 것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며 “예결위에서 삭감이 되겠지만 상임위에서 이만큼 증액됐다는 걸 보이기 위해서 증액을 많이 한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다른 상임위 위원들의 지역구 예산을 부탁받아 암암리에 반영했고 내 예산은 증액했는데 남 예산을 감액할 수는 없으니 감액이 적었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매해 예산안 심사 때마다 되풀이되는 현상이다. 매년 12월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의원들은 지역 신문과 의정활동 보고서에 지역구 예산 끼워넣기의 결과를 공공연하게 자랑한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매번 반복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예결특위 상설화를 주장했다. 그는 “정기국회에 몰아서 하는 예산심의를 상시적으로 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1년 내내 예산을 검토하고 따져야 국민들도 상시적으로 감시할 수 있다”며 “이대로라면 예산정국이 지나 총선정국이 돼 또 예산에 신경 쓸 수 있는 시기는 지나가버린다. 매년 예산 증액으로 국가 재정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지역구 예산 나눠먹기’는 19대 국회에서 끝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