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창기 지역감정이 관중석에 반영
1986년 대구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삼성이 해태에게 6-5로 패하자 흥분한 극성 팬들이 해태 전용 버스 유리창을 깨고 불을 붙여 전소됐다.
사건의 단초는 그 사흘 전 광주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1차전이었다. 해태 선발은 말이 필요 없는 에이스 선동열. 그런데 3회 2사 1·3루서 구원 등판한 삼성 투수 진동한이 선동열을 상대로 예상외의 호투를 했다. 오히려 선동열이 7회 삼성 김성래에게 2점 홈런을 맞으며 흔들렸다. 한 광주 관중이 흥분했다. 7회 말을 마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던 진동한의 머리로 유리병을 던졌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진동한은 붕대를 감고 누워 있어야 했다. 화가 난 삼성은 8회 에이스 김시진까지 투입해 맞불을 놓았지만 연장 11회 끝내기로 졌다. 삼성팬들은 이날의 패배가 광주 관중의 공격 때문이라고 믿었다. 홈경기를 별렀다.
그러나 삼성은 홈에서 열린 3차전도 패했다. 격분한 일부 관중이 경기장 밖에 세워둔 해태의 45인승 리무진 버스에 불을 질렀다. 애꿎은 다른 야구팬의 차까지 파손시키면서 경찰과 대치했다. 버스가 불에 타는 동안, 해태 선수들은 1시간 넘게 야구장에 갇혀 있었다. 인명사고가 없었던 게 다행일 정도. 한국시리즈가 계속될 수 있을지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KBO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사고수습 방안을 물었지만, “축하한다. 그렇게 홈팬들의 열성이 뜨겁다면 한국 프로야구의 성공은 확실한 것 같다”는 인사(?)만 받았다. 4차전을 대구가 아닌 다른 야구장에서 여는 방안을 검토해보기도 했다. 결국 대구시와 회의한 끝에 ‘천재지변이 없는 한 예정대로 같은 장소에서 강행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신 대구구장에는 평소보다 네 배 이상 많은 경찰병력이 배치됐다. 경기는 또 다시 연장 접전 끝에 해태의 승리. 사고버스의 보상 문제는 이듬해 1월 구단주간담회에서 삼성 구단이 해태에 배상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 감독으로도 ‘여우’였던 김재박
김재박 전 LG 감독 역시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최고의 강팀으로 군림했던 현대를 지휘했던 명장이다. ‘그라운드의 여우’라는 현역 시절 별명답게, 프로 감독으로서도 상대팀과의 심리전에 무척 능했다. 2000년 한국시리즈가 대표적이다. 현대는 당시 타격왕·홈런왕·타점왕을 모두 보유하고, 1~3선발이 공동 다승왕에 오른 최강의 팀이었다. 그러나 한국시리즈 상대인 두산이 1차전에 앞서 4번 타자 김동주의 손가락 부상을 이유로 엔트리 변경을 요청하자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며 거부했다. 포스트시즌과 같은 ‘전쟁’에서는 동업자 정신이 무의미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듬해인 2001년 두산과의 플레이오프 1차전 역시 김 감독의 ‘흔들기’가 승패를 갈랐다. 현대가 0-1로 뒤진 8회 1사 만루서 두산 투수 박명환이 현대 심정수를 3구 삼진으로 잡았다. 그때 김 감독이 걸어 나왔다. 어차피 판정은 번복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게 왜 스트라이크냐”며 항의하며 시간을 끌다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김 감독은 다음 타자 이숭용 타석에서 박명환이 초구 스트라이크를 던지자 다시 나왔다. 이번에는 갑작스럽게 투구폼을 문제 삼았다. “세트포지션에서 정지동작 없이 던졌으니 보크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항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박명환의 투구 리듬은 무너졌다. 결국 밀어내기 볼넷으로 동점. 현대는 박명환이 내려간 뒤 4점을 더 뽑아 결국 역전승했다.
# ‘사인 훔치기’ 논란
물론 현대 역시 앞서 언급한 2000년 두산과의 한국시리즈에서 ‘사인 훔치기’ 의혹으로 휘청거리기도 했다. 최강 전력을 자랑하던 현대가 먼저 3연승을 거둔 뒤였다. 갑자기 현대 박재홍이 2루에서 사인을 훔쳤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두산 선수들은 3차전이 끝난 뒤 선수단 미팅을 통해 전의를 불태웠다. 한 투수는 “박재홍이 타석에 나오면 머리를 맞혀버리겠다”고 흥분하기도 했다. 박재홍은 물론 “절대 아니다”라고 펄쩍 뛰었다. 그 의혹을 보도한 기자에게 강력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이 논란은 결과적으로 두산에게 호재가 됐다. 3차전까지 펄펄 날던 박재홍이 4차전부터 타격 슬럼프에 빠졌다. 그 사이 두산은 3패 뒤 다시 3승을 내리 따내며 3승 3패로 균형을 맞췄다. 김재박 감독조차 5차전부터는 표정이 조금씩 어두워졌을 정도다. 현대는 결국 7차전을 잡고 우승했고, 김 감독은 한참 뒤 “정말 사인을 훔쳤는지 안 훔쳤는지는 나도 모르지만, 상대의 사인을 눈치껏 잘 알아내는 것도 야구의 기술”이라는 지론을 밝혔다.
그런가 하면 2007년 SK와 두산의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도 두산 선발투수 다니엘 리오스가 2-0 완봉승을 올리고 난 뒤 갑작스럽게 소동이 일었다. “SK가 1루 쪽 더그아웃 옆 펜스 밑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두산 주루코치의 사인을 훔쳐보려고 했다”는 소문이 돌아서다. 흥분한 SK 관계자들은 기자들에게 직접 의혹의 원인이 된 장소를 공개했고, 당연히 그곳에 몰래 카메라는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소문의 진원지였던 두산이 공개적으로 사과를 하고, SK가 받아들이면서 일단락됐다.
# 포스트시즌 도중 투수코치 이탈
2002년은 포스트시즌이 가장 늦게 열린 해다. 한·일 월드컵이 6월, 부산아시안게임이 10월에 각각 개최됐다. 한국 야구대표팀은 기대했던 대로 금메달을 땄지만, 리그 중단으로 포스트시즌 일정이 늦춰지면서 KIA에 문제가 생겼다. KIA 김봉근 투수코치가 11월부터 SK로 옮기게 돼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시즌이었다면 한국시리즈가 7차전까지 이어지더라도 11월 초에는 모든 포스트시즌 일정이 종료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계약기간이 10월 31일까지인 코치들이 다른 팀으로 옮기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다. 양 팀 관계자들끼리 미리 파악만 하고 있다면 며칠 정도는 충분히 양해를 구할 수 있다. 그러나 KIA는 김 코치와의 계약 종료 시점에 LG와 플레이오프를 치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한국시리즈까지 가게 된다면 더 큰 혼란이 불 보듯 뻔했다. SK는 KIA에 세 차례나 “포스트시즌이 끝난 뒤에 김 코치를 데려 오겠다”고 배려했지만, KIA는 “계약 기간이 끝났으니 원칙대로 하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다”며 김 코치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포스트시즌이 한창인 시기에 갑작스럽게 투수코치를 잃은 KIA 마운드는 무사히 버티지 못했고, KIA는 끝내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 벤치클리어링의 발단된 홈스틸
2000년대 최고의 라이벌이었던 SK와 두산의 2007년 한국시리즈 3차전. 홈에서 먼저 2연패를 당하고 잠실로 온 SK는 6회 한 이닝 동안 대거 7점을 뽑아내며 9-0으로 시리즈의 흐름을 바꿨다. 그러나 빅 이닝을 만들어가던 와중에 눈살을 찌푸리게 한 벤치 클리어링이 발생했다.
2007년 한국시리즈 3차전 벤치클리어링 장면. SK가 6회 7-0으로 리드한 상황에서 홈스틸을 감행하자 두산의 투수 이혜천이 김재현에게 보복성 위협구를 던지며 난투극으로 이어졌다. 연합뉴스
SK가 7-0으로 리드한 6회초 1사 2·3루. 두산 투수 이혜천이 SK 베테랑 타자 김재현에게 초구를 던지려는 순간 3루주자 정근우가 홈으로 달려들었다. 홈스틸 시도였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놀란 두산 포수 채상병은 볼을 뒤로 빠뜨렸다. 동시에 2루주자 조동화까지 홈을 밟았다. 큰 점수 차로 앞서고 있을 때 도루를 하지 않는 것은 한국 프로야구의 오랜 불문율 가운데 하나. 게다가 그냥 도루도 아닌 홈스틸 시도가 나왔으니, SK 김성근 감독이 일부러 상대를 도발한 것인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미 앞서 언급됐던 몰래카메라 해프닝 등으로 인해 양 팀의 감정이 썩 좋지 않았던 상태였기에 더 그랬다.
2007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홈스틸을 한 정근우. 연합뉴스
어쨌든 이 득점은 포수의 패스트볼로 기록돼 한국시리즈 최초의 홈스틸 기록은 무산됐다. 다만 화가 난 이혜천이 김재현에게 몸 쪽으로 깊은 위협구를 던지면서 양 쪽 선수단이 모두 그라운드로 쏟아져 나오는 난투극으로 번졌다. 특히 두산 김동주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SK 선수들에게 달려드는 바람에 동료들이 한참을 뜯어 말리는 모습이 목격됐다. 이 사태의 여파로 이혜천은 퇴장당했고, SK는 남은 시리즈에서 내리 4승을 따내 우승했다.
배영은 스포츠동아 기자 yeb@donga.com
‘감독 퇴장’ 부른 2009년 KS 김성근의 심판 흔들기? 김성근 감독. 1차전은 KIA의 정신적 지주였던 이종범의 위장 스퀴즈번트로 출발했다. 이종범은 6회 2사 만루에서 역전 2타점 적시타를 때려낸 뒤 바로 다음 타석에서 회심의 카드를 꺼냈다. 8회 1사 1·3루 볼카운트 1B-0S서 2구째에 스퀴즈번트 모션을 취하다 갑자기 배트를 뺀 것이다. 내야수들이 번트 수비를 위해 달려 들어온 사이, 1루 주자가 2루에 무혈 입성했다. 이종범은 곧이어 2타점 우전안타로 화룡점정을 찍었다. 바로 이 순간부터 이 시리즈에는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사실 이종범이 위장 번트 동작을 취했던 공은 느린 비디오 화면 상 헛스윙으로 판정됐어야 옳았다. SK도 명백한 스윙이라고 항의했다. 그러나 심판은 볼로 선언했고, 이종범은 2B-0S라는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타격해 안타까지 쳤다. 안 그래도 이 경기 4회에는 KIA 측에서 SK 전력분석팀의 수비 시프트 지시에 대해 “작전은 더그아웃의 감독과 코치들이 내려야 한다”고 문제를 삼았던 터다. 이미 시작된 두 팀의 기 싸움에 서서히 불이 붙기 시작했다. 3차전에선 아예 벤치 클리어링이 나왔다. 4회 2사 후 SK 정근우의 투수 앞 땅볼을 잡은 KIA 투수 서재응이 정근우의 뛰는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면서 1루로 천천히 공을 던졌다. 그해 정규시즌에도 한 차례 빈볼시비로 감정이 상했던 두 선수는 말다툼을 하다 감정이 폭발했다. 순식간에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고, 양 팀 선수 전원이 그라운드로 쏟아져 나왔다. 급기야 5차전에서는 포스트시즌 사상 첫 감독 퇴장이라는 사건이 벌어졌다. KIA 외국인투수 아퀼리노 로페즈의 한국시리즈 통산 8번째 완봉승도 이 해프닝에 묻혔다. 상황은 6회 1사 1·2루. KIA 이종범의 2루수 땅볼 때였다. 2루를 밟고 더블플레이를 노리던 SK 나주환의 오른발을 KIA 1루주자 김상현이 슬라이딩하면서 건드렸다. 송구가 빠졌고, 2루 주자 최희섭이 득점했다. SK 김성근 감독은 득달같이 달려 나가 “수비방해다”라고 주장했다. 반면 심판진은 “정상적인 플레이다”라고 맞서며 감독의 어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김 감독은 선수단을 그라운드에서 철수시키는 강수를 뒀다. 11분간 경기가 지연된 끝에 김 감독은 규정에 따라 퇴장을 당했다. 퇴장 이후에는 모든 입장 표명을 거부한 채 아예 숙소로 돌아가 버렸다. 물론 일각에서는 김 감독이 심판들을 의도적으로 흔들기 위해 더 격한 제스처를 취하는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다. 포스트시즌 역대 5호(한국시리즈 4호)이자 감독으로서는 1호 퇴장. 이후 이만수 수석코치가 대신 경기를 지휘했다. 물론 이대로 잠잠해질 SK가 아니다. 마지막 경기인 7차전에서는 5-5 동점이던 8회 무사 1루에서 반대의 장면이 나왔다. SK 최정의 희생 번트 때 1루 주자 정상호가 2루로 슬라이딩하면서 KIA 유격수 이현곤을 덮친 것이다. 김상현과 나주환의 충돌을 연상시키는 묘한 상황이었다. KIA 조범현 감독도 똑같이 “수비방해다”라는 항의로 맞섰지만, 판정은 이번에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바뀌지 않았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