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경북고와 서울대 동문이며 오랜 인연을 맺고 있는 절친한 선후배 사이기도 하다. 세 번째 도전에 나서는 김부겸 전 의원의 마음은 결연하면서도, 한편으론 절친한 선배와 외나무다리에서 마주하기에 안타깝기도 하다. 그런 복잡한 심경에 놓인 김 전 의원을 지난 10월 30일, 인사동의 한 찻집에서 마주했다. 다음은 그와의 인터뷰 전문.
내년 20대 총선은 대구에서 야당 정치인 김부겸의 세 번째 도전이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차기 총선이 5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가 좋다.
“수치에 일희일비할 것 없다. 다만, 내 지지층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점은 고마울 뿐이다. 그런데도 현지 지식인들 사이에선 ‘이기기야 하겠어’ 하는 묘한 패배감이 남아있다. 너무 오래되다 보니까. 반면, 오히려 밑바닥에선 ‘바뀌어야 한다’는 의식이 올라와 있다. 4년 전만해도 대구에선 날 지지해도 나서진 않았다. 그런데 이젠 확실히 다르다. ”
―절망보단 희망인가.
“희망을 내가 노력해서 만들어야지. ‘이번엔 가능하다’ ‘포기하지 말자’ 이런 분위기를. 전남에선 이미 이정현 의원이 뚫었고, 전북에는 정운찬 전 총리가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변화의 기운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대구는 똑같은 선택을 한다? 이 격랑에서? 이 와중에 대구는 변하지 않는다? 대구시민들로서 무척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정부․여당, 특히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대구 현지 인식은 어떻게 보시나.
“아직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애잔함, 잘 되길 바라는 간절한 희망은 여전하다. 다만 대통령이 기대만큼 뭔가 시원하게 뚫어준다던지 그런 서민들의 기대감은 채워지지 않고 있다. 섭섭함과 안타까움이 있다.”
―요즘에도 여전히 가족들 모두가 일당백인가.
“물론이다. 우리 아버지 연세가 팔순이 넘으셨는데도 새벽부터 나보다 더 열심히 뛰신다. 게이트볼 장에 가서 본인이 직접 플레이 하시면서 뛰어다니신다. 우리 집사람도 하루에 5~6개 일정을 소화한다. 오늘도 내가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오후 일정은 집사람 몫이다. 아내에게 참 미안하다. 그래도 우리 집사람은 폼 잡고 까딱거리지 않는다. 단단하다. 둘 다 하루 일과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녹초가 다 된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정확히 1년 전, 기자와의 사석에서 김 전 지사의 출마 가능성에 대해 ‘설마’ 하셨다.
“허허(웃음). 벌써 그게 벌써 1년이 됐나. 김문수 선배(김부겸 전 의원과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경북고와 서울대 선후배 사이다)가 정말 나하고의 관계를 생각하면, 그렇게 해선 안 된다. 우린 단순히 정치적 관계가 아니다. 김 선배를 처음 본 게, 내가 고등학교 1년 때다. 40년이 넘었다. 그 때 김 선배는 서울대 상대서 짤리고, 물들인 군복을 챙겨 입은 채 대구로 내려왔다. 당시 나에게 있어서 김 선배는 혁명가이자 우상 같은 존재였다. 너무나 강렬한 인상이었다.”
―보통 인연이 아닌가 보다.
“우리 집사람과 형수님(김문수 전 지사의 아내)은 과거 같은 시기, 서울대 근처에서 사회과학서적 전문서점을 운영했다. 형수님은 봉천사거리에 있는 대학서점을, 우리 집사람은 신림사거리의 백두서점을 하고 있었다. 그 당시 매번 경찰들이 사회과학서점을 습격해 서적들을 압수하고 주인들을 잡아갔다. (집사람과 형수님은) 그 때 며칠 동안 관악경찰서에 끌려가서 고초를 겪었다. 우린 그런 사이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에 많이 섭섭하겠다.
“인간적으로는 정말 그렇다. 김부겸의 대구 도전은 좋던 싫던 개인 문제가 아니다. 지역주의를 넘느냐 마느냐의 문제이고, 바로미터다. 그런데 왜 그것을 김문수가 꺾어야 하는가. 그 동안 새누리당스럽게 살아온, 그리고 그 가치를 지닌 사람이 김부겸과 부딪혀서 심판을 받아야 하는데 왜 그 일을 김 선배가 하겠다는 것인지.”
―김부겸을 상대하기 위한 불가피한 여당 내 결정 가능성도 있지 않나.
“새누리당 차원에서 어느 누구도 (김문수 전 지사에게) 총대 메달라고 하지 않았다. 김무성 대표도 그저 출마를 결심한 김 선배에게 ‘열심히 해보라’는 수준이었다고 안다. 지금 여론조사 결과도 그렇지만, 김 선배가 고전하고 있지 않나. 소위 말하는 당당한 대선 후보로서의 위상에 금이 많이 갔다. 왜? (대구 수성갑 출마의) 명분이 없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안타깝다. 그 분만큼 치열하고 열심히 사신 분도 없는데. 왜 지역주의를 넘어서겠다는 대구시민의 열망을 받들고자 하는 후배의 길을 김문수 선배 가로막는 꼴이 됐냐 이거다. 또 만에 하나 새누리당이 나를 위협의 대상으로 여겼다면, 그건 여당에 허점이 있다는 거다. (김문수 전 지사의 출마는) 그것을 메울 생각은 안하고, 땜빵으로 돌파하려는 생각 아닌가.”
―김문수 전 지사와의 오랜 인연을 생각하면, 이번 대결이 참 안타깝겠다.
“우리 요즘에도 (대구 현지 일정이 많이 겹치기 때문에) 매일 만난다. 악수도 하고, 장난도 친다. 둘 중 하나는 치명상을 입어야 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다. 다만 내 나이도 이제 육십 줄에 들어선다. 가능한 이 정치적 관계 때문에 서로 간의 인간적 관계에는 상처 받고 싶지 않다.”
―두 번의 실패가 있었다. 본지와의 지난 인터뷰에서도 말씀하셨지만, 이번 도전이 마지막이라고 하셨다.
“마지막 도전이다. 그런 각오로 임해야 된다. 이정현 의원이 호남에서 돌파했는데 이제 대구에서도 화답할 때가 되지 않았나. TK지역(대구-경북)이라고 못 한다는 게 어디 있나. 대구 정치인들 20년 동안 늘 대기업 유치 외쳤지만, 지금 대구는 지방도시 중 제일 피폐하다. 시민들이 30년 동안 배타적 지지를 줬지만 말이다. 이번 도전은 나에게 일생일대의 변곡점이다. 내 모든 정치적 자원, 네트워크, 에너지가 이번에 다 결집됐다. 이후론 내가 이런 에너지를 모을 수 없다.”
김부겸 전 의원은 40년 넘은 인연을 이어온 선배 김문수 전 지사와에 인간적인 섭섭함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야당은 여전히 헤매는 중이다.
“걱정이다. 결국 불신이 문제다. 계파 간 ‘저 사람이 꺼낸 정치적 카드는 날 죽이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호남 민심이 멀어지고 있다. 호남 민심 멀어지면 수도권까지 그 분위기가 번질 것이다. 그럼 우린 희망없다. 선거 하나 마나다.”
―야당 내 일부 탈당 세력들의 신당 창당 프로세스가 시작됐다. 분당은 기정사실 아닌가.
“그럼에도 그분들과 기회는 한 번 만들어야 한다. 야권이란 테두리 안에서 전략적 공존 모색해야한다. 나와 박영선 의원이 말하는 ‘대통합 전당대회’가 그래서 필요하다. 그렇게 해서라도 서로 상처 치유하고 해야 한다. 특정인에게 권력을 내놓아라 하는 것 아니다. 국민들에게 절박하게 ‘다시 하나가 됐다’고 하자는 거다. 거칠게 얘기해서 지금 여․야 정당 지지율이 40대 20 아니냐.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거냐.”
―지난 10.28 재보선에서 야당은 15:2로 참패를 당했다.
“졌는데 왜 아무도 아파하는 사람이 없는가. 이건 아니다. 아파야 한다. 이 당의 운명이 슬퍼서가 아니다. 이대로 가다간 총선에서 우리 의석수가 100석 이하로 떨어진다. 그럼 일본처럼 한국 정치지형은 국가주의적, 급격한 보수화의 분위기로 갈 수밖에 없다. 진보개혁 진영 자체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이 그 반증 아닌가.
“그러니까 정말 두려운 거다. 여당에서 먼저 툭 던진 프레임이다. 우린 지금 속절없이 끌려가고 있다. 게다가 이 문제는 당장 사람들이 먹고 사는 문제와 동떨어져 있다. 우리가 열심히 싸워봐야 내년 선거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없다. 우리로서는 대단히 안타깝다.”
―결국 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여당이 던진 떡밥이란 얘기인데, 해답은 있는가.
“야당이 마련할 카드가 마땅치 않다. 이 문제는 의결사안도 아니다. 정치권에선 이제 이 문제에 대해선 한 발 빼야 한다. 이 문제로 인해, 정치권이 과열되고, 또 분열되는 모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문재인 대표도 ‘전문가 토론회’를 제안하지 않았나. 다만 여당은 이 문제를 두고 군사작전 하듯이 T/F팀을 만들고 대응하는데 이건 정말 아니다. 이마저도 야당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여당은 정말 무책임한 거다.”
―야당의 산재한 문제는 결국 문재인 리더십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렇다. 그 책임은 결국 대표에게 간다. 문 대표도 이제 그저 감내하고 계실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문 대표가 개인적으론 답답하고, 억울하고 그럴 것이다. 또 누구는 뒤통수도 칠 것이다. 그런데 과거 진짜 야당 리더들은 이를 다 안고 녹여냈다. 이것 녹여 내지 못한 대표들은 그저 관리자로 단명했다. 문 대표는 이순신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이순신이야 말로 가장 억울하고 분한 분 아니냐. 그럼에도 정부가 군량미를 공급하지 않을 때도 자체적으로 농사져가며 군량미를 댔고, 그렇게 돌파하셨다. 야당 대표의 숙명이다. 분열 극복하고 껴안고 녹이셔야 국민과 공감이 가능하고 또 선거를 치를 수 있다.”
―일부 비노진영 의원들은 문재인 대표의 사퇴까지 거론한다.
“난 비주류들의 그러한 요구와 움직임에 절대 동의 안한다. 김영춘 전 의원과의 토크콘서트에서 어떤 당원이 얘기하더라. ‘이번 기회에 생각이 다른 사람과는 갈라지자’고. 정말 철딱서니 없고 무책임한 소리다. 내가 혼을 했다. 문재인 대표 물러나는 게 답이 아니다. 문재인만으론 안되지만, 문재인 빼면 뭐가 되는가.”
―안철수 의원의 독자적인 요구에 대해선.
“내가 누구를 평가할 입장은 아니지만, 안철수 전 대표는 약간의 피해의식이 있는 것 같다. 정치권에서 본인은 이용만 당한 것 같다는. 안 전 대표가 혁신위 모든 것을 부정하는 평가에 대해선 절대 반대다. 단, 안 대표가 자기의 정치적 절박성을 갖고 던진 일부는 문재인 대표도 답할 부분이 있다. 해서 안 전 대표를 안아야 한다. 안 전 대표는 야당의 유력 대선 후보다. 그에게도 설 자리를 주면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
김부겸 전 의원은 오랜 신뢰관계에 있는 남경필 경기지사의 연정을 예로 들며, 후의 일이지만 여당 소장파 정치인들과의 ‘의견교류그룹’ 결성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혁신위의 결정에 따라, 현직 의원 20%가 잘려나간다. 이미 이에 대한 평가위가 가동되기 시작했다.
“두렵다. 그 과정에서 이른바 친노 진영이 자기희생 없는 결과를 내민다면, 절대 반대진영에서 승복 안 할 것이다. 답 없는 소용돌이가 될 것이다. 자칫하면 돌이킬 수 없는 분열이 일어나고 총선 패배로 이어질 것이다. 국민과의 약속이다. 장난치지 말고 철저하고 공정하게 임해서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 조금이라도 사적인 잣대로 들이민다면 괴멸이다.”
―공천 결과에 대한 일부 당내 반발을 어떻게 처신할 지 문제도 남는다.
“이런 공천 문제가 사실 처음은 아니다. 매번 삼분의 일은 갈렸다. 2008년 공천심사위원장이었던 박재승 변호사는 정말 공정하면서도 혹독하게 칼을 휘둘렀다. 그래서 안희정, 설훈, 신계륜, 박지원 등 정치인들이 억울하게도 칼을 맞았다. 하지만, 그렇게 했기 때문에 당시 위기 속에서도 80석 이상은 건졌던 것이다. 분명 억울한 사람 생긴다. 하지만 혁신위 결정이기 때문에 없던 일로 하자면 안 된다. 다시 말하지만, 계파의 잣대는 곧 괴멸이다.”
―박영선 의원, 안희정 충남지사 등 이른바 중립에 가까운 개혁진영의 교류가 잦아졌다. 특히 통합행동이란 조직 활동이 눈에 띄는데. 그 역할론은.
“당장 우리 통합행동을 통해 뭔가 새로운 흐름을 만들겠다는 것은 아니다. 일단 친노와 비노 사이에서 조정을 해보겠다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다만, 난 현재 대구에서 작은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대구에서 살아남는 것. 이를 통해 당의 외연을 넓히는 것, 상식과 합리가 통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진정 나아갈 수 있는 진보 개혁 세력을 만드는 것이 내 역할이다. 그 이상은 지나친 비약이다.”
―여당 소장파․개혁세력과의 결합 가능성 역시 관심사다.
“나와 오랜 신뢰관계에 있는 남경필 경기지사를 봐라. 딱 당선되자마자 연정을 했다. 과거 대결적 진영논리에 갇힌 정치인들과 접근법이 다르다. 경기도 연정해서 잘못됐다는 얘기 없다. 뭔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과 ‘정당을 하겠다’는 것 보단, 비슷한 고민과 전망을 하는 사람들과 의견그룹을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이를 통해 에너지를 모아 간다면, 지금 정당들의 ‘적과 아로 구분하는 생각’을 조금씩 무너뜨릴 수 있다.”
―유럽에서나 볼 법한 연정을 그리는 거냐.
“남경필 지사가 보여주지 않았나. 경기도는 1200만 명의 도민이 살고, 연간 20조를 쓴다. 대한민국 전체 운명, 이렇게 풀어야 한다. 대통령은 야당 불신하지 말고, 야당도 대통령 너무 몰아붙이지 말아야 한다. 능사가 아니다. 지금 한국은 완전 골목선수다. 밖에 나가면 제대로 선수 대접도 못 받는다. 박근혜 정부가 주변국과의 외교에 있어서 어느 하나 이니셔티브를 취한 게 없지 않나. 앞으론 협력해서 풀 일이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