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이 출자전환으로 취득한 주식은 총 1995만 4569주다. 주당 취득가로 따지면 13만 7227원이 된다. 그런데 최근 채권단은 이 주식을 우선매수권을 가진 박삼구 회장에게 주당 4만 1213원씩 총 7228억 원에 팔기로 했다. 무려 70%의 손실을 감수한 셈이다.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무리하게 인수하는 과정에서 채권단도 재무적투자자(FI)로 참여했던 만큼 어느 정도 손실 분담을 하는 것은 이해가 간다”면서도 “하지만 꼭 지금처럼 주가가 바닥인 상황에서 무리하게 박 회장에게 다시 매각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금호산업 주가와 자회사인 아시아나항공 주가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바닥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채권단으로서는 매각가치가 시가보다 높을 수 있는 아시아나항공을 따로 매각해 채권 회수를 극대화할 수도 있었다.
재계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은 국적항공사로, 금호산업이 가진 지분 30%의 시가는 3000억 원에 불과하지만, 경영권 프리미엄 등까지 감안하면 6000억 원에서 1조 원은 충분히 받을 수 있는 매물”이라면서 “채권단이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산업을 별도로 매각했다면 더 많은 채권 회수가 가능했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박 회장이 채권단으로부터 금호산업 지분을 매입하는 과정에서도 상당한 ‘배려’를 한 정황이 포착된다. 박 회장은 금호아시아나그룹 워크아웃 당시 전 재산을 내놨다. 사실이라면 박 회장이 가진 재산은 금호산업 지분 9.9%와 아들과 함께 보유한 금호타이어 지분 8.1%가 거의 전부다. 만약 다른 재산이 더 있다면 워크아웃 당시 은닉해둔 모양새가 된다.
박 회장은 이 두 회사 지분을 매각해 7228억 원 규모의 금호산업 지분을 매입할 계획이다.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 모두 현재 최대주주는 채권단이다. 박 회장과 아들의 지분은 경영권과 거리가 멀다. 경영권 프리미엄 없이 시가로만 따지면 약 1500억 원 정도다. 이 지분은 금호타이어와 협력관계에 있는 효성과 코오롱이 매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코오롱은 2005년 코오롱고속을 금호고속에 매각했던 인연도 있다.
금호아시아나 건물 전경.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박 회장의 금호산업 인수는 특수목적회사(SPC)를 설립하고, 이 SPC가 금호산업의 경영권(50%+1주)을 인수하는 구조다. 박 회장은 SPC에 4200억 원을 투자해 경영권을 확보하고 나머지 3000억 원가량은 금융권에서 조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이 지분을 매각한 1500억 원의 현금을 바탕으로 차입을 일으키면 최대 3000억 원까지 불릴 수 있다. 여기에 또 다른 FI들을 더하면 4200억 원 정도 마련할 수 있다. 우선매수권으로 인수할 금호산업 지분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방법(LBO)도 고려할 수 있다.
종합하면 어떤 방식이라도 금융권 또는 현재 채권단 일부로부터 다시 거액을 빌려야 한다. 일부 금융기관으로서는 무려 70%의 손실을 보고 파는 마당에 다시 돈을 빌려주는 셈이다. 박 회장 입장에서도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때와 마찬가지로 대규모 차입을 통해 인수합병(M&A)을 하는 셈이 된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사정에 정통한 한 재계 관계자는 “오랜 기간 국적항공사를 경영하다 보면 다양한 인맥과 로비수단을 가질 수 있다”면서 “그룹의 사활이 걸린 만큼 채권단 등의 우호적 태도를 이끌어 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정작 문제는 박 회장이 인수한 그 다음이다. FI를 유치하는 방식이건, 차입을 하는 방식이건 결국 수익을 보장해주거나 원리금 상환이 필요하다. 그런데 금호아시아나 계열사 가운데 제대로 돈을 버는 곳이 거의 없다.
건설업 불황이 계속되면서 금호산업 영업전망은 오리무중이고, 저비용 항공사와 외국계 항공사의 시장잠식이 확대되면서 점유율 하락 위험에 노출돼 있고 항공기 도입 관련 대규모 투자지출이 계속되면서 재무안정성 지표들이 저하된 것이 등급 하락 배경이다.
한 신용평가사 애널리스트는 “아시아나항공은 과거 대우건설·대한통운 인수에 나선 과정에서 재무부담 증가로 신용도가 낮아진 경험이 있다”며 “박 회장의 금호산업 인수에 아시아나항공의 자금이나 담보여력이 직접 동원되지는 않지만, 상당수 외부차입에 의존해야 하는 인수 구조상 향후 그룹 전반의 재무위험이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