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대표와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추후 개각에서 국회로 돌아올 최 부총리가 친박계의 대표적인 ‘김무성 대항마’가 될 것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서로 기선제압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지금 여권에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싸움이 시작됐다. 면전에 대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원거리 디스(Disrespect·폄하)’다. 둘 다 정치적 이해는 없다고 하지만 정치권의 목소리는 다르다. 추후 개각에서 국회로 돌아올 최 부총리가 친박계의 대표적인 ‘김무성 대항마’가 될 것이 기정사실화하면서 서로 기선제압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근 이런 장면이 몇몇 연출되고 있다.
지난 4일 기획재정부는 공식 트위터 계정에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소개글을 올렸다. 매주 수요일마다 기재부 트위터에는 일반상식 소개코너가 있다. 그런데 이 오픈프라이머리를 올린 타이밍이 다소 생뚱맞은 것 아니냐며 정치권에서는 기재부 트위터가 캡처돼 메신저로 떠다녔다. 이유는 단 하나, ‘기재부 수장 최경환의 김무성 디스가 아니냐’는 것이었다.
사실 오픈프라이머리, 즉 여야가 한 날 한 시에 큰 공간에서 국민을 초청해 자당 후보를 뽑는 이 경선룰은 김 대표의 아킬레스건이다. 정치생명까지 걸겠다던 이 룰은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다 현행 당헌당규상 상향식 공천룰을 바탕으로 재논의하는 것으로 돌아왔다.
이른바 원점회귀이자 김 대표의 백기투항이었다. 친박계의 매몰찬 반대에 김 대표가 두 손을 들었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래서 여권에서는 오픈프라이머리가 사실상 금기어가 됐다. 그런데 느닷없이 기재부가 이 금기어를 꺼내든 것이다. 기재부는 이렇게 썼다.
‘오픈프라이머리, 당내 경선제의 한 유형으로 대통령 등의 공직후보를 선발할 때 일반 국민이 직접 참여해 선출하는 방식. 후보자 선출권을 소속 정당의 당원에만 국한하지 않고 일반 국민으로 확대하는 것으로 국민의 선거 참여를 확대해 민주주의를 실현한다는 면에서는 긍정적이나 정당정치가 어려워진다는 부정적 면도 있다.’
김 대표가 이 일반상식을 보게 됐다면 속이 쓰렸을 터. 여권의 한 관계자는 “최 부총리가 여당으로 돌아올 시점에서 ‘김무성의 실패작’을 부각했다는 점, 기재부가 정치용어를 설명했다는 점,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발표되자마자 마치 김 대표의 할 일은 끝났다는 듯 오픈프라이머리를 꺼냈다는 점, 뭐 갖다 붙이자면 여러 정치적 해석이 나올 수 있다”고 했다.
김무성 대표도 기재부발 디스를 보고만 있지 않았다. 5일 오전 김 대표는 새누리당 금융개혁추진위가 연 금융개혁 토론회에 참석한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평소답잖게 ‘대로’했다. 김 대표는 토론회장 밖에 줄지어 서 있는 축하 화환을 가리키며 “저런 것을 기자들이 써야한다. 세미나 하는데 왜 갖다놓느냐”면서 “최경환, 이주열(한국은행 총재) 화환은 전부 국민 세금으로 보내는 것 아니냐”고 일갈했다.
김 대표의 입에서 직접 ‘최경환’이라는 이름이 거론됐고 ‘국민 세금’이란 표현까지 등장하면서 김 대표 주위를 둘러싼 당직자들이 얼어붙었다는 전언이다. 김 대표가 자기 입으로 ‘맞짱’을 예고한 것으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당내 의원들과 당직자들에게 화환을 받지 말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본인 행사도 마찬가지지만 의원들도 되도록 화환이라는 형식에서 벗어나라는 경고였다. 실제 새누리당에선 쌀 화환 주고받기가 유행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김 대표는 토론회에서 “어떻길래 우리나라 금융이 우간다보다 못하다는 취급을 받나.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됐나. (금융 당국이) 책임을 다 져야한다”고 했다. 김 대표는 임종룡 금융위원장을 보며 이런 말을 던졌지만 정가에서는 “결국 최경환 들으란 것 아니겠느냐”는 해석을 내놨다.
스위스 세계경제포럼(WEF)은 매해 국가경쟁력 지수를 조사해 발표하는데 한국의 금융산업이 아프리카의 우간다보다 뒤진다는 결과를 내놓은 지는 몇 년 됐다. 하지만 최근 최경환 부총리가 “우리 금융이 우간다보다 못하다”고 발언했는데 이를 김 대표가 받은 것이다. 결국 최 부총리도 ‘유체이탈 화법’을 쓰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무성 대표와 최경환 부총리의 정면충돌은 개헌 발언에서도 나타났다. 기재부가 오픈프라이머리는 내걸었던 4일 최 부총리는 한 방송에서 “과거 정부는 매우 단순한 방정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그런데 지금은 고차방정식으로 해결해야 한다”면서 “최근 20년 이상 (대통령제) 5년 단임제였는데 이런 제도는 정책의 일관성과 지속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친박계발 개헌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서 최 부총리는 “다양한 목표, 가치관, 이해관계가 있어 문제를 풀어내는 난이도가 높아졌는데 (현행 단임제는) 지나친 이념 논쟁, 지역주의, 이기주의로 문제해결이 어렵다”고 덧붙였다.
정치권에선 친박계가 개헌을 통해 이원집정부제를 꿈꾸고 있는 것 아니냐고 해석하고 나섰다. 외치는 대통령이 맡고, 내치는 국무총리가 책임지는 제도, 즉 ‘반기문 대통령과 친박계 국무총리’ 조합을 염두에 둔 발언이란 해석이 흘러나왔다.
이에 김 대표의 심기가 불편해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이원집정부제는 지난해 중국에서 ‘개헌 봇물론’을 설파했던 김 대표가 말한 바로 그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다. 정가의 호사가들은 “김무성 입에서는 개헌 이야기가 나오면 안 되고 최경환 입에서는 나와도 되는가”라고 반문하며 “친박계에서 최 부총리의 위치를 봤을 때 개인 견해로 보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즉, 친박계가 주도하는 개헌론은 김 대표의 개헌론과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김 대표의 개헌론에 대해 박 대통령은 즉각 “경제 블랙홀을 유발할 수 있다”고 몰아세웠고 김 대표는 하루 만에 깍듯하게 사과한 바 있다. 그 뒤 이 개헌은 여권에서 금기어가 됐다.
게다가 이 최경환발 개헌론을 최근 친박으로 분류되는 이인제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받으면서 개헌론에 슬슬 불이 붙는 모습이다. 이 최고위원은 5일 당 공식회의석상에서 “농어촌 지역대표성을 대의정치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양원제로 가야하는데 그것은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초점은 다르지만 개헌 필요성에는 공감한다는 것이다.
최 부총리를 중심으로 한 친박계가 김 대표에게 잽을 날리며 공격 자세를 취하고 있다. 김 대표는 ‘초이노믹스’를 평가하며 맞서고 있다. 최 부총리는 여의도에 돌아오는 대로 ‘무대 흔들기’에 나설 것으로 예측되고 있는데 최근 연이은 가족사 구설에 이어 김 대표는 과거 보좌진의 금품 수수 의혹까지 더해져 곤혹스러운 입장이 이어지고 있다. 이게 우연의 일치이겠느냐는 해석으로 정가의 이목이 두 사람에게 쏠리고 있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