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남 검찰총장 내정자. 일요신문 DB
“이제 슬슬 마무리할 때가 오지 않았습니까. 수사팀들은 다들 출구전략 짜느라 바쁠 겁니다. 한 달 동안 얼마나 더 찾을 수 있겠어요? 정리하겠죠.”
차기 총장으로 김수남 대검 차장이 낙점되기 직전, 후보 하마평을 나누던 중 한 검사가 내놓은 전망이다. 기업 특수수사에 밝은 그는 “그림을 미리 그려놓고 시작하는 공안 수사랑 다르게, 특수 수사는 어디서 새로운 의혹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걸 전제로, 의혹마다 확인하고 법리적으로 처벌하면서 그림을 그려나가는 구조인데 인사가 코앞이니 혐의마다 무작정 확인할 수 없고 이제 혐의를 추리기 시작할 단계”라고 귀띔했다.
사실 고위간부(검사장)-중간간부(부장검사)를 거쳐 평검사까지의 인사는 매년 2월 초나, 중순쯤 마무리 되는 게 통상적이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 검찰총장 인사가 변수가 됐다. 그러다보니 내년 1월 초에서 중순쯤에는, 평검사 인사까지 마무리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전망을 다소 구체화 해보면 우선 12월 초 김수남 차장이 별 탈 없이 검찰총장에 취임하고 12월 말 검사장 인사를 내고, 1월 초에는 부장검사 인사를 낸 뒤 늦어도 1월 중순까지는 평검사 인사까지 마무리한다는 것이다. 그럼 1월 말부터는 새로운 라인업으로 2016년 수사를 시작할 수 있다. 2월 말에야 평검사 인사까지 마무리됐던 올해 인사와 비교해 보면 한 달에서 한 달 보름가량 빠른 셈이다.
이런 관측이 힘을 받는 주요 배경은 바로 ‘총선’이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최대한 빨리 라인업을 꾸려야 한다는 설명인데, 신임 총장 입장에서도 자기가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을 최대한 빨리 요직에 앉힌 뒤 총선을 맞이하고 싶을 수밖에 없다. 특히 선거 사건을 맡는 공안부 세팅이 빠르면 빠를수록 안정적으로 총선을 치를 수 있다.
그러다보니 특수부 산하 기업 수사의 마무리가 가시화 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고위 관계자들은 “(검찰총장) 인사와 관계없이 수사는 계속될 것”이라는 말을 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특히 친 MB(이명박 전 대통령)계 인사들이 수장으로 있던 농협중앙회와 KT&G 수사는 확실히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수사팀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어야 한 달이다. 그 안에 혐의와 소환조사, 주요 피의자들의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보고하고, 허락을 받아야 한다.
‘최강 화력 집결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임관혁)의 농협중앙회 수사 단계부터 다시 짚어보자. 지난 10월 5일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의 최측근 손동우 전 안강농협 이사를 구속하며 수사의 8부 능선을 넘는 듯했다. 그런데 손 전 이사는 최 회장에 대한 ‘충성’을 지켰다고 한다. 최측근임을 증명하듯 자신의 비리에 최원병 회장의 개입 여부를 진술하지 않은 것.
검찰은 손 전 이사가 “농협 계열사와의 거래를 도와주겠다”며 협력업체로부터 받은 수억 원대의 돈과 각종 편의가 당연히 최원병 회장의 존재와 묵인 덕분에 가능했다고 보고 있지만, 손 전 이사의 충성에 발목이 잡혔다.
최 회장의 부인과 손 전 이사가 함께 비리를 저질렀다는 얘기도 농협중앙회 안팎에서 무성하다. 하지만 검찰에서는 법리적인 부분으로 처벌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말도 함께 나온다.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있지만, 손 전 이사의 진술이 없으면 법리 처벌의 단계가 아니라 도덕적인 문제로 끝나기 때문이다.
왼쪽은 농협중앙회와 최원병 회장. 오른쪽은 KT&G와 민영진 전 사장.
최원병 회장도 최근 주변에 검찰 수사에 대해 자신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임기를 다 채울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주위를 안심시켰다는 것이다. 아직 검찰은 ‘위(최원병)’로 올라가기 위해 꼭 확인해야 할 NH개발 대표 소환조사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남은 한 달 동안 최원병 회장의 혐의를 특정하고 주요 피의자들을 소환하는데 집중하면서도, 여차하면 최 회장을 포기하고 수사를 마무리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성완종 특별팀’에 투입됐던 특수3부(부장검사 김석우)가 수사 중인 KT&G도 상황은 비슷하다. 당초 KT&G 수사는 특수1부와 달리 민영진 전 사장, 백복인 현 사장 중 누구를 최종 타깃으로 할지도 확실하지 않은 모양새로 진행됐다. 밑에서부터 다지는 과정과 함께 투 트랙으로 과거 민영진 전 사장에 대한 의혹도 확인했지만, 지난해 경찰에서 한 차례 훑어보는 과정에서 무혐의 처분이 난 것들이 많아 검찰에게는 쉽지 않은 수사였다. 그러다보니 ‘검찰이 들여다봐도 아무 것도 없을 것’이라는 말이 KT&G를 중심으로 흘러나왔다.
특수3부는 이를 보기 좋게 만회했다. 협력업체와 KT&G 간 계약 구조가 통상의 기업과 다른 점을 파악한 뒤 이들 간의 수상한 돈 거래를 찾아냈다. 민영진 전 사장의 최측근 중 1인이었던 이 아무개 부사장을 구속 기소했다. 그리고 협력업체 대표 등을 모두 구속하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특수3부 역시 더 이상의 ‘위’로 올라갈 길을 찾지 못했다. 민영진 전 사장등이 회사 비자금과 당시 비리에 개입했다는 의혹 중 일부를 찾아냈지만, 이들의 개입 여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증거나 진술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의 경우처럼 법리 처벌까지 연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다보니 두 수사팀 모두 출구전략을 짜는데 집중하고 있다. 실패했다는 소리와 표적수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는 마무리하는 모양새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억지로 위를 향하는 듯한 느낌을 줘서도 안 되고, 수사가 이뤄진 사회적 의미를 집대성할 수 있어야 한다. 거악척결과 일벌백계의 메시지를 남겨야 한다.
무엇보다 법원으로 사건이 넘어갔을 때 ‘유죄’가 나와야 한다. 무죄가 나오면, 수개월간의 수사는 물론 검사들의 경력에도 상처가 남는다. 한 달의 시간 동안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와 특수3부, 두 수사팀이 어떤 출구 전략으로 미로를 헤쳐 나올지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
남윤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