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학교 동물생명과학관은 지난 28일부터 현재까지 폐쇄 중이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건국대학교는 호흡기 증상에 대한 선제적 대응을 위해 건물을 임시 폐쇄 중입니다.”
지난 4일 오후 1시경 기자가 동물생명과학대학 건물을 찾을 당시 건물 곳곳에는 이 같은 공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건물 측면에 있는 1층 카페로 발걸음을 옮기자 역학조사 중인 질본 연구원 2명이 눈에 들어왔다. 발바닥부터 머리끝까지, 새하얀 옷이 연구원들의 온몸을 뒤덮었고 두 사람은 하늘빛 장갑을 낀 상태였다. 유일하게 드러난 신체 부위는 고글에 살며시 비친 눈망울이었다. 침침한 눈망울이 그간의 쌓인 피로를 말해주고 있었다.
“커피숍은 뭔 죄야? 참나…” 지나가는 학생들의 수다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질본 연구원 한 사람이 카페 안쪽에 깊숙이 놓인 냉장고를 살펴봤다. 다른 직원은 역시 우두커니 서서 카페 부엌 쪽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두 시간 가까이 흘렀지만 이들은 카페 부엌 안쪽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좀처럼 볼 수 없는 기묘한 장면 탓인지 건국대 학생들은 걸음을 멈추고 머뭇거리다가 동물생명과학대 건물을 지나쳤다.
질본 역학조사과 김영택 과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건물 전체를 샅샅이 뒤지고 있다. 카페에 오염원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며 “진균과 세균은 물론 환경조사도 하고 있고 환자대조군 조사도 하고 있다. 아직 원인은 밝혀지진 않았다”고 밝혔다. 텅 빈 건물 안쪽 연구원들의 심각한 표정과는 달리, 학생들은 집단폐렴에 대한 공포를 그다지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기자와 만난 이 대학 학생은 “폐렴이 있는 학우들이 격리된 건 알고 있다”며 “우린 공포를 그다지 느끼지 않는데 학교가 대응을 잘못한 쪽으로 알려진 부분은 당황스럽다”고 밝혔다.
질본에 따르면 폐렴 의심 환자의 최초 증상 발생일은 10일 19일. 이 환자는 목이 아픈 증상과 어지럼증으로 호소하며 5일 뒤 인천성모병원에 입원했다. 환자 수는 점진적으로 늘었다. 27일 저녁 환자수가 10명이 되자 28일 급기야 건국대학교 측은 동물생명과학대학 건물을 폐쇄했다. 질본은 31일 건물 근무자와 출입자 964명을 능동감시대상자로 분류하고 이들에 대한 폐렴 증상을 확인하기 위한 모니터링 작업에 착수했다. 모니터링 대상자도 급격히 늘어나 지금은 1600명을 훌쩍 넘었다.
6일 오전까지만해도 급성 폐렴증상을 보인 환자 수는 총 52명이었다. 환자 52명은 7개 의료기관에 분산돼 격리 치료를 받고 있었다. 당시 질본 관계자는 “총 84건의 신고를 받았지만 의심환자는 발생하지 않았다”며 “52명 중 42명은 호전소견을 보이고 있다. 52명의 의심환자와 동거 중인 87명 중에 발열이나 호흡기 증상을 보이는 사례는 없다. 전파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고 말을 아꼈다. 6일 질본은 건국대학교 동물생명과학대학 폐렴 의심환자는 55명이라고 밝혔다. 3명이 늘어난 것. 하지만 질본은 입원자 55명 전원에 대한 격리를 해제하고 이 중 50명이 퇴원 절차를 밟도록 했다. 방역당국이 이번 폐렴의 전파가능성이 없다고 결론 내렸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폐렴이 전염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지만 급성 폐렴의 원인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질본은 환자들을 상대로 메르스, 레지오넬라 등 16종의 병원체 검사를 했지만 특별한 원인은 나오지 않았다. 진균(곰팡이) 배양검사도 병행하고 있지만 결과가 나오려면 2~4주 이상이 걸린다. 전문가들이 집단 폐렴 사태가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유력한 원인은 무엇일까. 환자들의 공통점을 찾아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환자 대부분이 전부 동물환경과학대학 건물 내 4~7층의 상시근무자들이었다는 점이다. 질본 역시 이들이 동물과학 대학 건물 4~7층 실험실에 있는 ‘무언가’에 공통적으로 노출돼 급성폐렴이 발병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취재 결과, 환자들 중 격리된 교수는 건국대 바이오산업공학과 소속 최 아무개 씨로 밝혀졌다. 나머지 대부분은 건국대 동물과학원생들이었다. 최 교수의 연구실은 3층에 있다. 이에 대해 역학조사과 김영택 과장은 “그 교수는 4~7층에 실험을 하러 갔다가 오염원에 노출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건국대 관계자는 “환자들 대부분은 대학원생이다. 석·박사 과정에 있는 연구원들이다”며 “격리된 교수님은 평소 3층에 있지만 지난달에 4~7층 안의 실험실을 방문했을 당시 호흡을 통해 ‘뭔가’를 들이켰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대학원생들은 지난달 말 그 건물에서 어떤 실험을 하고 있었을까. 실험이 폐렴의 원인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키’는 될 가능성은 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건국대 동물생명과학관 실험실별 연구실험 개요’에 따르면 동물환경과학대학 건물 내 4~7층 사이 상시근무자는 250여 명이었다. 그 중 약 50여 명의 환자가 급성폐렴에 걸렸다. 주로 동물생명과학대학 5층에 폐렴환자들이 많았다. 그곳엔 사료생물공학을 위한 실험실이 있다. 기능성 사료첨가제를 개발하고 미생물로부터 가축의 소화를 촉진시키는 효소를 대량 생산하고 연구하는 곳이다. 동물 사료 개발을 위한 장소인 ‘동물영상생리 및 단백체 실험실’ 역시 5층이었다.
실험의 내용과 폐렴 감염을 직접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근거는 아직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실험실 인력 250명 중 50여 명이 10월경 ‘무언가’에 노출돼 폐렴에 걸렸다는 것은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다. 질본 관계자도 “사료나 돼지 유전자도 조사 중이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지만 아직까지 특기할 만한 원인이 나온 건 아니다”고 설명했다.
동물환경과학대학 건물이 폐쇄된 지 일주일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질본과 학교 측은 정확한 원인이 나올 때까지 건물을 무기한 폐쇄할 예정이라고 한다. 현재 학생들은 대체 강의실을 통해 전공과 교양수업을 듣고 있다. 학교 측이 대체 강의실을 확보하지 못해 ‘강의실 위치에 대한 공지’를 하루 만에 번복하는 해프닝도 벌어지고 있다. 질본은 ‘건국대 집단폐렴 미스터리’를 풀기 위한 실마리를 언제쯤 찾을 수 있을까.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