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가 지난 4일 대포차를 시중에 대규모로 유통시킨 260여 명을 적발했다. 광역수사대 관계자들이 압수한 대포차 번호판과 자동차키 등을 공개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 자동차들의 앞 유리엔 연락처가 걸려 있었다. 전화번호는 모두 같았다. 주인은 이 아파트에 사는 A 씨(35)다. 그는 고향 선배와 함께 사채업을 하고 있다. 은행 등 제도권 금융에서 대출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속칭 ‘급전’을 대출해준다. 특별한 것이 있다면 채무자들로부터 오직 자동차만 담보로 잡는다는 점이다. 성 씨는 “자동차는 부동산과 다르게 그 자리에서 바로 거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A 씨는 따로 추심을 하지 않는다. 폭력과 협박도 없다. 대신 대출에 앞서 약속한 기간에 돈을 갚지 못하거나 이자가 연체될 경우, 차량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겠다는 ‘포기 각서’를 작성한다. 또 A 씨가 담보 차량을 몰아도 된다는 내용의 ‘운행허가 각서’도 내민다. “돈을 갚지 않고 소유권을 돌려 달라거나 신고하면 작성한 각서를 근거로 채무사기혐의로 고소한다”고 말했다. 다만 A 씨는 차량을 어떻게 처분하는지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금융감독원은 시중에 유통되는 대포차의 60% 이상을 자동차 담보 전문 사채업자들이 공급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 역시 앞서의 ‘개인채권 차량’들이 대부분 대포차로 둔갑해 거래된다고 했다. 전 중고차 매매업자인 B 씨는 <일요신문>과 만나 자동차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사채업자들은 “채무자들이 상환 기일까지 원금을 갚지 못하거나 이자가 두 달 정도 연체되면 포기 각서 등을 내세워 바로 차량을 처분한다. 멀쩡했던 차가 대포차로 바뀌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채업자가 연체 차량을 중고차 매매업자나 대포차 전문 브로커에게 넘기면 ‘주인 없는 차’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B 씨는 또 “대포차로 처분하면 정상적으로 거래되는 중고차 가격보다 훨씬 싼 금액으로 거래된다. 하지만 원금 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판매하기 때문에 사채업자들에게 밑지는 장사는 아니다. 대부분 개인 중고차 매매상들에게 판매하는데, 이들은 대포차를 인터넷 중고차 거래 사이트 등에 매물로 올린다. 이를 통해 누구나 쉽게 대포차를 구할 수 있게 된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일요신문>이 최근 적발된 ‘88car’와 비슷한 중고차 거래 사이트에 접속했다. 2011년식 BMW를 싸게 판다는 글을 보고 판매자에게 전화를 걸자, 그는 “운행에 전혀 문제 없는 차다. 명의 이전도 필요 없다. 그냥 타면 된다. 정상가는 3000만 원 가까이 하겠지만 1200만 원에 가져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앞서의 B 씨는 “가격이 저렴한 물건에는 다 이유가 있다. 명의 이전이 필요 없다고 말했다는 것은 대포차란 뜻이다. 급전이 필요해 팔아넘긴 장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대포차임을 드러내고 글을 올리는 경우도 있었다. 이 글을 올린 판매자들은 ‘ㅂㅇㅊㄱ’(법인채권), ‘ㄱㅇㅊㄱ’(개인채권) 등 은어를 사용했다. 게시물마다 ‘안전한 개인 채권 차량이다. 미리 조회해 보고 연락하라’고 했지만 대부분 조회가 되지 않았다. 이 사이트에 접속하자마자 팝업되는 ‘대포차 관련 게시물 등록시 아이디 삭제, 손해배상 청구’라는 공지사항이 무색했다.
대포차는 정상적으로 명의 이전 등 절차를 거치지 않아 실제 운전자와 등록상 명의자가 다르다. 이 때문에 실제 운전자에겐 각종 세금이나 과태료가 부과되지 않는다. 보험에 가입하지 않아도 된다. 이 때문에 사고가 나도 차주에 대한 추적이 어려워 범죄에 악용되거나, 정상적으로 차량을 등록할 수 없는 채무불이행자, 불법체류자 등이 주로 대포차를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대포차 거래에 직접 나서는 일반인도 늘어나는 추세다. 한 경찰 관계자는 <일요신문>에 “대포차는 각종 세금, 보험료 등에서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비싼 외제차를 싼값에 탈 수 있어 20~30대 직장인, 대학생들이 찾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일반인들은 대포차를 구매만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앞서의 경찰 관계자는 “일정한 직업이 있으면서도 시세차익을 노리고 재테크 수단으로 대포차 거래를 하는 일반인도 있다”고 말했다. 가령 2000만 원가량을 투자해 대포차를 구입한 후, 시세보다 조금 싼 가격으로 다시 판매한다는 것. 이러한 방식으로 불과 한두 달 만에 대포차 한 대를 더 살 수 있는 자금을 모을 수 있다고 한다. 앞서의 경찰 관계자는 “최근 스마트폰으로 매물을 확인하고 송금부터 차량 전달까지 구매자와 직접 만나지 않고 처리하는 등 거래과정이 수월한 것도 일반인이 쉽게 대포차 거래에 접근할 수 있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대포차가 양산되고 유통하는 사례가 늘자 정부는 관련법 개정을 통해 단속 강화에 나섰다. 지난 9월 16일 국토교통부는 자동차관리법상 검사에게만 있던 대포차 수사권한을 확대해 경찰과 특별사법경찰에게도 부여해 직접 수사하고 처벌할 수 있게 했다. 경찰청 역시 별도로 지난 5월 ‘대포차 근절종합대책’을 세우고 지난 10월 27일 기준 악성 대포차 5168대를 전국 수배 조치하고 44명을 자동차관리법위반 등으로 불구속 입건했다. 현행법상 대포차를 유통한 사람은 2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앞서의 경찰 관계자는 “내년 2월부터는 대포차를 운행한 사람도 1년 이하 징역 또는 300만 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작업차’를 아시나요 고난도 작업 통해 ‘합법차’ 둔갑 이 매물들은 일반 대포차와는 다르다. ‘작업차’ 또는 ‘작차’로도 불리는 이 자동차들은 보험사가 경매에 내놓은 완파차량을 매입해 등록서류와 차대번호 등을 추출해 국내 도난차나 해외 도난차, 리스차 등의 동일 모델에 그대로 붙여 합법차로 둔갑시키는 ‘고난이도’의 작업을 거친 차다. 훔친 번호판을 같은 모델이나 연식이 비슷한 차에 붙여 다니던 ‘쌍둥이 차’와는 다르다. 거래는 은밀하게 이뤄진다. 대부분 자동차 관련 사이트, 또는 개인 메일로 보유차량과 매물 리스트, 가격, 연락처를 발송하며 전화를 하면 받지 않았다가 업자가 다시 연락을 하는 방법으로 신원을 확인한다. <일요신문>과 연결된 한 업자는 “손님 전화번호가 떴으니 만약 장난 전화면 나중에 후회할 수 있다”는 반 협박부터 했다. “차량을 직접 보고 구매하겠다”고 하자 “서로 믿고 하는 거래지만 정 원한다면 특정 장소로 오라”며 “시간과 장소는 따로 문자 메시지로 알려주겠다”고 했지만 더 이상 연락이 되지 않았다. 앞서의 경찰 관계자는 “‘합법’으로 위장하는 작전차는 단속에 쉽게 걸리지 않는다. 양산, 유통하는 업자들도 문제지만 이 점을 노리고 작전차를 찾는 일반인들도 늘고 있다”며 우려했다. 이어 “최근에는 보이스 피싱처럼 작전차를 허위로 판다고 속여 선불금을 떼어먹는 사기도 기승을 부린다”며 “이들 업자들은 대부분 대포폰, 대포계좌를 사용하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만 보고 중고 자동차를 구매하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문] |
대포차 사기도 기승 “사고 보니 과태료 300만원이 떡하니” 지난 4월, 자영업을 하는 조 아무개 씨(36)는 중고차 거래 사이트에 올라온 글을 보고 깜짝 놀랐다. 크라이슬러 세브링 컨버터블을 410만 원에 급히 처분한다는 내용이었다. 2002년식 쏘나타를 타고 다니던 조 씨는 그 글을 쉽게 지나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형편이 여의치 않아 그동안 차를 바꾼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런데 외제차를 저렴한 가격으로 판다는 말에 바로 판매자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말했다. 최근 적발된 88car 유사 사이트. 대포차 거래 금지 경고 문구가 있지만 판매 글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판매자는 조 씨에게 “차가 경남에 있으니 탁송을 하라. 대신 탁송료는 이쪽에서 부담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여기저기서 문의가 많이 들어오니 빨리 결정할수록 좋다”는 말도 덧붙였다고 한다. 직접 운영하는 가게를 비울 수도 없고 당시 작은 수술을 위해 입원을 앞두고 있던 조 씨는 흔쾌히 승낙했고, 급한 마음에 별다른 확인 절차 없이 판매자가 소개해준 탁송 기사에게 자동차 값 410만 원과 기름 값 10만 원을 입금했다. 다음날 새벽 2시께, 조 씨는 꿈에 그리던 외제차 운전석에 앉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다. 다음날 중고차 거래가 처음이었던 조 씨는 명의 이전 등 관련 절차를 묻기 위해 판매자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갑자기 연락이 끊긴 것. 여기에 예정된 수술을 마치고 퇴원했을 땐 자동차 번호판마저 사라지고 그 위엔 영치증만 놓여있었다. 조 씨는 “영치증을 보니 11건 312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돼 있었다. 더 황당한 건 다른 중고차 거래 사이트에 내 전화번호를 올려놨다는 것”이라며 “하루 종일 대포차 파는 사람이냐는 전화를 받았다. 해당 사이트에 삭제 문의를 했지만, 해당 사이트를 제외하고도 여러 군데 판매글을 올렸는지 한동안 자동차 구매 문의가 빗발쳤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대해 앞서의 전 중고차 매매업자는 “대포차 거래가 늘면서 사기도 덩달아 늘고 있다. 중고차를 구입한다면 반드시 해당 차량원부조회를 통해 압류 및 저당 건이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만약 개인간 직거래로 차량을 구매한다면 자동차등록증 소유주와 실제 판매자가 동일한지 확인해야 한다. 또한 중고차 거래 후 명의 이전이 제대로 됐는지도 꼭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