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뻘에게 90도로 인사하는 경비원의 모습이 이슈가 되자 해당 아파트 거주 학생이 엘리베이터에 ‘갑질’을 반성하는 대자보를 붙여 화제가 되었다. 사진출처=온라인 커뮤니티
해당 아파트 입주민 대표 회의에서 ‘다른 아파트는 출근 시간에 경비가 서서 인사하는데, 왜 우리는 안 하느냐’는 컴플레인이 나오자 이같이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글과 함께 올라온 두 장의 사진 속 경비원은 허리를 숙이며 아파트 입주민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문제는 비교적 연세가 많아 보이는 경비원이 교복을 입은 것처럼 보이는 입주민에게 인사를 하는 모습이다.
이에 대해 해당 아파트 관리자는 “(경비원들은) 인사를 할 때도 있고 안 할 때도 있다. (누군가가) 요구를 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의무적인 것은 아니고 자발적으로 아시는 분이 지나가면 개인적으로 인사를 드린다. 전혀 그런 일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해당 글과 사진이 공개되면서 ‘갑질’ 논란뿐 아니라 경비원의 열악한 근무여건에 대한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실제로 <일요신문> 보도 후 일부 방송 및 대다수 인터넷 매체가 후속 보도를 쏟아 내면서 사회적 이슈로 급부상했다.
사태가 확산되자 A 아파트 입주자 대표는 <일요신문>과의 전화 통화를 통해 적극 해명하는 등 사태 진화에 나섰다. 입주자 대표 B 씨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며 반박했다. 그는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인사를 강요하나). 인사 시킨 적 없다”며 의혹을 일축했다. 이어 “아파트에는 1149세대가 입주해 있다. 그동안 경비원들이 불친절하다는 불만이 입주민들로부터 많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B 씨는 또한 “아파트 지하실은 지하철 통로와 연결이 돼 있고, 이 사이에는 버튼을 눌러 여는 문이 있다. 이 버튼을 누르기 위해 아침 출근 시간에 1000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라며 “(따라서) 아침 출퇴근 시간마다 그 버튼을 누르며 문을 열어달라고 요청만 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버튼 누르는 것만 요청했는데) 인사를 90도로 하더라”라며 “인사를 시킨 적은 절대 없다”며 의혹을 거듭 부인했다.
B 씨 주장에 따르면 입주자들이 경비원에게 문 개폐 버튼을 눌러달라고만 요구했으나, 경비원들이 자발적으로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다는 것이다. 또한,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받는 것이 부담스러워 ‘묵례만 하자’고 제안했음에도 경비원들은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했다는 게 B 씨의 주장이다.
그는 “그동안 입주민들과 경비원들 사이에는 마찰이 없었다”며 “갑과 을 관계에서의 요구와 지시 같은 건 전혀 없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아파트 경비원 ‘갑질’ 문제를 처음 제기한 입주민 송 아무개 씨는 “조폭 보스에게 인사하듯 하니 죄송하고 불편했다”고 밝혔다. 송 씨는 6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불편했다. 송구스러우니까 같이 인사를 받아주긴 했지만, 출근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며 “묵례 정도라면 모를까 나이 지긋하신 경비원 분들이 그렇게 예의를 갖추니 불편했다”고 말했다.
송 씨는 이어 “몇몇 주민분들이 ‘경비원들이 불친절하다’ ‘왜 인사를 잘 안 하냐’고 컴플레인을 걸었다”며 “경비원들이 직접 고용이 아닌 용역계약이다보니 (자칫 잘못하면) 경비원들이 일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민원에 조심스러웠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또한 “이 인사(지시) 결정이 주민들 전체 의견 수렴이 아니라 몇몇 주민들의 컴플레인이 있었고, 회의에 참석한 이들이 결정을 하다보니 이렇게 된 것”이라며 “대다수의 주민들은 잘 몰랐다. 때문에 두 달 동안이나 (이 같은 상황이) 진행돼왔다”고 덧붙였다.
송 씨는 특히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제 눈앞에서 언론에서 보던 상황이 펼쳐지니 ‘이건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구나’라고 생각됐다”고 강조했다.
사건 이후 해당 아파트에 거주하는 학생이 ‘갑질’ 문제를 제기한 대자보도 화제가 됐다. 6일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따르면 해당 아파트 102동에 거주하는 이 학생은 엘리베이터에 붙인 대자보를 통해 “102동에 사는 한 학생이다.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갈 때 항상 지하 2층 주차장을 통해 지하철로 가는데 얼마 전부터 경비 아저씨들께서 아침마다 통로 앞에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90도로 인사를 하시더라”고 밝혔다.
이어 학생은 “그분들보다 한참 어린 저는 당연히 경비 아저씨 앞을 지나갈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고 갑자기 그런 일이 시작된 이유를 몰랐기 때문에 항상 앞을 지날 때마다 뭔가 죄스러운 마음으로 저도 그분들께 90도로 인사드리기만 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학생은 “너무 부끄럽다. 이 일이 제가 사는 곳에서 일어난 것도 부끄럽고, 이러한 문제가 온라인에서 이슈가 되기 전까지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던 스스로도 부끄럽다. 기사로만 보던 ‘갑질’이 우리 아파트에서도 일어날 줄은 정말 몰랐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특히 이 학생은 “존중받고 싶으면 먼저 남을 존중하면 된다. 빠른 시일 내에 이 문제가 해결되길 바란다”고 어른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이수진 기자 109dub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