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팍은 자신에게 총격을 가한 사건에 대해 단순 강도 사건이 아닌 자신을 살해하려는 시도라고 주장했다. 그 증거로 고가 롤렉스 시계를 건드리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다.
투팍 샤커의 여성 관계는 꽤 문란했다. 사인을 요구하는 여성이 맘에 들면 잠자리에 끌어들이기도 했다. 1993년 11월의 그 여성도 비슷한 관계였다. 투팍은 그녀와 며칠 전에 만나 관계를 맺었고, 호텔 방에서 다시 만났다. 하지만 이때는 투팍 혼자가 아니었고, 그녀는 투팍과 일행들이 자신을 강간했다고 주장했다. 형사 재판이 일어났고, 법원은 그를 1급 성폭행으로 기소했으며, 판사는 적어도 1년 6개월 이상 감옥에 있어야 할 중범죄라고 밝혔다. “힘없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거친 폭력”이라는 이유였다. 재판 기간에 투팍은 토크쇼에 나와 자신에겐 죄가 없으며, 그 여자의 행동에 오히려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행들이 했던 행동에 대해선 자신이 좀 더 책임감 있게 대처했어야 했다며 당시 폭력이 있었음을 결과적으로는 시인했다.
1994년 11월 30일은 그의 범죄 혐의에 대한 배심원의 평결이 내려지기 하루 전이었다. 뉴욕의 쿼드 스튜디오 로비에서, 투팍은 갑작스러운 린치를 당한다. 세 명의 강도가 그에게 달려들어 반지와 팔찌 같은 보석류들을 훔쳐 가면서 다섯 발의 총알을 쏜 것이다. 총에 맞은 투팍은 근처 벨뷰 병원으로 옮겨졌고, 곧 응급 수술에 들어가 총알을 제거했다. 그는 무조건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의사의 명령을 어기고, 수술이 끝난 지 세 시간 후에 병원을 나섰다. 그리고 다음날 법정에 휠체어를 타고 등장했다.
이후 그는 <바이브>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에게 폭력을 가한 사람들을 실명으로 언급했다. 퍼프 대디와 그의 동료인 지미 헨치맨 그리고 흔히 ‘비기’라는 닉네임으로 불리는 노터리어스 비아이지가 자신을 죽이기 위해, 아니 최소한 치명적인 해를 입히기 위해 그런 일을 꾸몄다는 것이다. 퍼프 대디와 비기는 투팍과도 친분이 있는 뮤지션. 투팍이 서부 지역 힙합 음악을 대표한다면, 퍼프 대디와 비기는 동부 힙합을 대표하는 뮤지션이었다. 지미 헨치맨은 퍼프 대디의 비즈니스 관련자이면서도 마약 범죄와 연루되어 있는 인물이었다. 사건 당일, 퍼프 대디와 비기는 쿼드 스튜디오에 있었는데 이후 이 사실을 안 투팍은 두 사람이 누군가를 사주해서 자신에게 린치를 가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보석류를 훔쳐간 건 단순 강도 사건으로 위장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투팍의 주장. 반지와 팔찌는 빼가면서 손목에 차고 있던 고가의 롤렉스 시계엔 손도 대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 증거로 들었다.
투팍 습격을 꾸몄다고 의심 받은 힙합 뮤지션 퍼프 대디(왼쪽)와 비기.
이후 투팍은 클린턴 교도소에서 9개월을 복역한다. 항소를 했지만 결국 유죄가 선고되었고, 140만 달러의 보석금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총격 사건을 당한 후에 발표한 <미 어게인스트 더 월드>(Me Against the World) 앨범은, 첫 주에 24만 장이 팔리는 빅 히트를 기록했지만 그는 이 소식을 교도소에서 들어야 했다. 당시까지 솔로 래퍼로는 가장 많은 첫 주 판매량을 기록한 앨범이었으며, 그는 미국 팝 음악 사상 최초로 감옥 안에서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오른 아티스트가 되었다.
교도소에 있으면서 그는 새롭게 태어나려고 노력했다. 오랜 여자친구였던 케이샤 모리스와 1995년 4월 4일에 결혼하기도 했고, <군주론> <손자병법>을 비롯한 수많은 정치 서적과 군사 전략 서적들을 읽었다. 특히 그는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에게 매료되었다. 이후 투팍은 데쓰 로우 레코드의 사장인 수지 나이트가 보석금을 내주면서 출옥하게 된다. 조건은 데쓰 로우에서 세 장의 앨범을 내는 것. 그 첫 앨범인 <더 돈 킬루미나티>(The Don Killuminati)에서 그는 ‘마카벨리’라는 이름으로 대중과 다시 만났다. 그는 이 앨범에 실린 모든 곡의 가사를 3일 만에 써서 녹음했고, 모든 앨범 제작 과정에 단 7일이 걸렸으며, 이전보다 훨씬 더 어둡고 호전적이며 고통에 찬 음악을 선보였다.
그렇다면 그때 그 총격 사건은 범인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1996년 투팍이 세상을 떠난 10여 년 동안 누가 그에게 총을 쏘았는지에 대한 긴 논쟁이 있었고, 결국은 대반전처럼 범인이 밝혀졌다. 이 이야기는 다음 주에 이어진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