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구획정안 법정처리시한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야는 주도권 싸움이 한창이다.
여야는 선거구획정안을 둘러싸고 여야 당대표, 원내대표, 원내수석부대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간사 간 4+4 회동을 사흘째 이어갔지만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여당은 지역구 의석수를 늘리고 비례대표 의석수를 줄이자는 입장이지만, 야당은 비례대표 의석수 축소를 결사반대하며 차라리 의원 정수를 소폭 늘리자는 입장이다.
이 중에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것이 야당이 들고 나온 ‘권역별 비례대표제’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비례대표를 불가피하게 줄여야 한다면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만약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한다면 비례대표 3~4석 정도는 양보할 수 있다는 게 새정치연합의 ‘마지노선’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절대 안 된다며 결사반대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대체 왜 쟁점으로 떠올랐을까.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전국을 몇 개 권역으로 나눠 인구비례에 따라 권역별 의석수(지역+비례)를 먼저 정한 뒤 그 의석을 정당 득표율에 따라 배분하는 방식이다. 현재는 전국 단위 정당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배정하는 전국구 비례대표제를 시행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한다면 현실적으로 야권에 유리하다고 보고 있다. 여당 텃밭인 영남권에 호남 인구가 적지 않은 만큼, 권역별 비례대표가 선출된다면 영남권에 야권 의석수를 좀 더 확보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실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19대 총선 득표율을 기준으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적용해 본 결과, 여당인 새누리당은 현 야당의 초강세지역인 호남권에서 ‘4석’을 얻는 데 그쳤지만, 새정치연합은 대구·경북 5석, 부산·울산·경남 14석 등 총 ‘19석’을 얻는 것으로 확인됐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때문에 새누리당에서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사실상 ‘금기어’라고 한다. 새누리당 정개특위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시행하면 제3당의 의석수가 크게 증가하는데, 현 정치구도에선 제3당이 진보정당이나 호남신당이 될 수밖에 없어 새누리당으로선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안”이라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새누리당은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다. 여당 내부에서는 유권자 지지 성향을 ‘여권 45%, 야권 55%’의 구도로 보는 것으로 전해진다.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도입된다면 여소야대가 실현될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 이는 곧 박근혜 정부 집권 후반기 급속한 ‘레임덕’을 불러올 수도 있다.
이에 새누리당은 합의 결렬 책임을 야당으로 돌리는 압박 전술로 권역별 비례대표제 주장에 빗장을 걸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우리 새누리당은 농어촌 대표성을 살리고 지역구 의원을 최대한 늘려서 농어촌의 대표성을 확보하자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며 ”그런데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비례대표 의석수만 지키려는 반복된 주장만 하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야당은 기존의 의원정수를 늘리자는 제안을 잠시 접고 권역별 비례대표제 주장에 좀 더 집중하는 양상이다. 무엇보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표면적으로 ‘지역구도’를 완화할 수 있다는 명분도 갖춰져 있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는 1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우리 당은 농어촌 지역에 선거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와 더불어 의원정수를 늘려서도 안 되고 비례대표를 줄여서도 안 된다”며 “권역별 비례대표제에 대해 적어도 뭔가 첫 걸음을 떼야 한다”며 관철 의지를 재확인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