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기 예능 프로그램들이 워낙 높은 시청률과 케이블 재방 횟수 증가 등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갖추고 있기는 하지만 광고와 부가판권 등 전체적인 시장은 드라마에 미치지 못해 제작비 규모도 작았다. 그럼에도 예능 프로그램의 블록버스터화가 가능한 까닭은 무엇일까.
정확한 제작비 규모가 알려지진 않았지만 방송 관계자들은 KBS <해피선데이> ‘1박2일’의 남극 프로젝트에 10억여 원의 제작비가 투여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동조합(한예조)는 국정감사에서 방송통신위원회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제출한 자료를 근거로 지난 2008년 8월 한 달 동안의 각사 예능 프로그램 회당 제작비 현황을 발표했다. 당시 KBS의 예능 프로그램 평균 제작비는 2500만 원 선이고 <해피선데이>의 회당 제작비는 9207만 원이었다. 1년 반 전 자료이긴 하지만 지난해 세계적인 금융 위기로 방송사들이 제작비 절감에 나선 터라 현재 제작비가 오히려 당시보다 조금 더 낮을 것이라는 게 한예조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해피선데이>의 한 코너인 ‘1박2일’의 경우 회당 제작비가 5000여만 원 수준으로 볼 수 있다. 반면 ‘남극 프로젝트’는 3회 방송 분량을 위해 10억 여 원이 투입돼 회당 제작비가 3억여 원을 넘겨 평소의 여섯 배를 상회한다. 물론 다른 제작비를 줄여 남극 프로젝트에 집중할 수도 있지만 현재 <해피선데이>는 ‘남자의 자격’ 코너를 통해 지리산 종주, 월드컵 남아공 특집 등을 기획하고 있어 오히려 제작비는 더 많이 소요될 전망이다. 그렇다면 급격히 늘어난 제작비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이에 대해 <해피선데이>를 연출하는 이명한 PD는 “대외비라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1박2일’의 남극 프로젝트 확정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인 곳은 광고업계다. ‘1박2일’과 같은 인기 예능프로그램이 제작비 압박에 시달려야 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PPL과 같은 간접 광고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MBC 예능국 관계자는 “PPL은 협찬고지 형식으로 이뤄지는데 외주제작 프로그램만 가능해 자체 제작 프로그램에선 불가능하다”며 “제작비가 많이 드는 해외 촬영의 경우 관광청이나 현지 호텔 및 리조트에 협조를 구해 행정지원 및 숙박지원을 받았지만 PPL처럼 협찬업체를 드러낼 수 없어 한계가 분명했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1박2일’ 제작진의 남극 프로젝트 확정 발표 3일 전 의미 있는 변화가 있었다. 지난 19일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것. 개정안에 따르면 가상광고의 경우 운동경기 중계방송에 한하고 간접광고는 오락(드라마 포함) 및 교양분야로 한해 프로그램 방송시간의 5%, 전체 화면의 1/4 이내에서 허용된다. 다만 방송 시작 전 광고 포함 사실을 자막으로 고지해야 한다. 이로 인해 KBS 자체 제작 프로그램이라 협찬고지 방식의 PPL조차 불가능했던 <해피선데이>도 이제 정식으로 간접광고를 판매할 수 있게 됐다. 이제 남극 현지에서 강호동 등 출연진이 “추운 곳에선 ○○○ 브랜드가 최고”라고 얘기하고 “○○○ 항공사가 장거리 비행에서 가장 편하다” 등의 얘기를 하는 게 가능해진 것.
그러나 <해피선데이> 이명한 PD는 “시기적으로 볼 때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PPL을 통한 광고수익이 남극 프로젝트나 월드컵 남아공 특집의 제작비 조달에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런 시각에 대해선 광고업계에서도 비슷하다. 종합 광고 대행사 인터오리진의 PPL&프로모션 담당자 오영근 실장은 “그동안 PPL에 가장 적극적이지 않았던 공영방송 KBS가 방송법 시행령 의결과 동시에 그런 무리수를 두진 않을 것”이라며 “또한 예능 프로그램인 ‘1박2일’이 갑자기 10억여 원의 간접광고를 유치하는 것도 시장 규모로 볼 때 쉽지 않아 보인다”는 입장을 보였다. 다만 “지난 연말 이미 광고 클라이언트들이 간접광고 허용을 예상해 광고 예산을 10% 이상 늘리는 등 광고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며 “방송법 시행령 의결로 인해 간접광고가 불가능했던 방송사 자체 제작 예능 프로그램이 상당히 변화할 가능성은 크다”는 입장을 보였다.
당장 남극 프로젝트는 아닐지라도 예능 프로그램의 블록버스터화는 불가피하다는 예상이 가능하다. 다만 여전히 방송법 시행령 국무회의 의결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상황에서 공영방송인 KBS가 가장 먼저 그 수혜를 누리려는 듯한 모양새에 대해선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방송법 시행령 뭐가 달라질까
예능인은 웃고 연기자는 울고
이번 방송법 시행령이 방송가에 미칠 영향은 예능 프로그램의 블록버스터화뿐이 아니다. 우선 외주 제작 시스템 자체가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PPL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드라마의 경우 방송법 시행령으로 인해 외주 제작이 아닌 자체 제작도 간접광고가 가능해지면서 자체 제작 드라마의 급증이 예상된다.
얼마 전 유재석의 소속사인 디초콜릿이앤티에프가 MBC에 <무한도전> 외주제작권을 요구하며 빚어진 논란 역시 방송법 시행령 의결이 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미 높은 수입을 올리고 있는 <무한도전>에 간접광고까지 가능해진다면 엄청난 수입 창출이 가능해졌다. 자체 제작 프로그램은 간접 광고가 불가능한 상황에선 외주 제작으로 돌려 간접광고를 유치해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는 게 유리했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
연예인의 출연료도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배우의 드라마 출연료는 자체 제작보다 외주 제작이 높은 편이다. 따라서 자체 제작 드라마가 많아질수록 배우들의 출연료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반면 예능 프로그램의 경우 간접 광고 허용으로 수익이 늘어 출연료도 높아질 전망이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