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균 국무조정실 1차장이 10월 2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방위사업청 조직·인사 혁신과 민관유착비리 근절 및 비리 방산업체 제재 강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방위사업 비리 근절을 위한 우선대책을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방산업체의 한 임원은 박근혜 정부 초기이던 지난 2013년 3월 평소 알고 지내던 무기 로비스트와의 만남을 잊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그는 “약속장소에 나갔더니 로비스트 옆에 낯선 인물이 있었다. 명함도 없었다.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을 도왔고, 당시 유력했던 친박 실세들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정치권에 수소문해보니 제법 실력자였다. 이 분야는 인맥 싸움 아니냐. 여러 번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기자가 ‘어떤 도움이냐’고 묻자 그는 “자세하게 말하긴 힘들지만 무기 입찰과 관련된 청탁이었다. 물론 우리 쪽에서 대가를 챙겨주긴 했다”고 답했다. 무기업계에선 이러한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다음은 전직 무기 로비스트의 전언이다.
“무기 사업은 흔히들 말하는 ‘그들만의 리그’다. 장벽이 워낙 높다는 얘기다. 대신 한번 진입하면 엄청난 부가 보장된다. 상상해보라. 로비스트가 사업 한 건을 성사시켜 받는 커미션이 적게는 수십억 원, 많게는 수백억 원이다. 정권 초기 실세들이 무기 사업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다. 정치권이 먼저 로비스트를 찾는 경우가 가끔 있지만 그 반대가 대부분이다. (로비스트들이) 실세들에게 어떻게 해서든 줄을 대 ‘라인’을 만들려 하는 것이다. 현 정부 들어서도 몇몇 친박 인사가 무기업계 쪽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국내에서 무기 로비스트들의 활동은 엄연히 불법이다. 그러나 공공연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 역시 부인하긴 어려운 사실이다.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한 재미사업가 고 조풍언, 린다 김 등이 1세대 로비스트로 분류되는데 그 이후 여러 명이 국내외 대형 업체들과 손을 잡고 무기 입찰 등에 관여했다고 한다. 방위산업비리정부합동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이 수개월째 내사를 벌이고 있는 함 아무개 씨 역시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로비스트이자 무기중개상으로 알려져 있다. 합수단은 미국 시민권자인 함 씨를 방산비리의 배후 중 한 명으로 보고 집중 수사하고 있다.
이처럼 은밀하고도 막대한 돈줄을 쥘 수 있는 무기업계에서도 몇 번의 ‘손바뀜’이 이뤄졌다고 한다. 대부분 정권 초 로비스트들 간에 벌어졌던 치열한 생존 경쟁이 그 원인이다. 여기엔 어김없이 정권 실세가 등장한다. 즉, 정권 실세들과 라인을 형성하는 데 성공한 로비스트들이 승승장구했다는 얘기다.
앞서의 전직 로비스트는 “사업 특성상 몇몇 로비스트들이 장기간 독식을 한다. 그런데 갑자기 떠오르는 로비스트가 간혹 있다. 거기엔 분명 정권 또는 군 인맥이 연관돼 있다. 모종의 거래가 이뤄진 것이다. 정권 필요에 따라 새로운 로비스트를 발굴하든가, 아니면 그 로비스트가 권력을 등에 업고 나타난 것”이라고 귀띔했다.
KFX 사업에 대한 논란이 식지 않는 가운데 친박계 실세 개입설이 일고 있다. 방산 비리 수사가 용두사미로 그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사진은 록히드마틴의 F-35 라이트닝 II
MB(이명박) 정부 때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군과 정치권 주변에선 친이계 실세 중 한 명이 특정 로비스트와 가깝게 지내며 한 방산업체를 위해 힘을 쓰고 있다는 말이 들렸고, 2012년엔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이 내용에 대해 내사까지 했다. 실제로 해당 방산업체는 MB 정부 들어 추진한 굵직굵직한 계약 대부분을 따내 무성한 뒷말을 낳았다.
MB 정부는 2020년까지 국방산업 및 무기 부문 세계 7대 수출국이 된다는 목표 아래 40조 원 규모에 달하는 예산을 방위력 개선사업에 책정했다. 특히 정권 말인 2012년에만 14조 원을 해외 무기 도입에 쏟아 부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계약을 따내려는 업체들 간 로비전이 얼마나 치열했을지 짐작이 가능한 대목이다. 방산비리합수단 수사와 감사원 조사 등을 종합하면 현 정부 초기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 <일요신문>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방산업체 관계자와 로비스트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검찰 관계자는 “몇몇 친박계 인사가 로비스트 및 무기업체 관계자들과 어울린 정황이 포착됐다. 그들은 공식 직함을 갖고 있진 않지만 VIP(대통령)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군 관계자들을 만났다. 사실상 로비스트 역할을 한 셈”이라고 전했다. 감사원 관계자도 “친박과 관련된 민감한 내용들이 있다고 들었다. 그 부분에 대해선 검찰 수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는 한 현직 로비스트 역시 “지난 정권에서 잘나갔던 로비스트 일부가 직을 그만뒀다. 대신 ‘뉴페이스’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며 “그 중 한 명은 박 대통령 최측근으로 불리는 비선라인 인사와 가깝게 지낸다는 말이 나왔다. 방산업체들 역시 그들을 고용하기 위해 애를 썼다고 한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박근혜 정부가 방산비리를 뿌리 뽑는다고 했을 때 업계에선 ‘특정 라인을 제거하고 자기 쪽 사람을 심으려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수사를 제대로 하려면 정치권이나 군 최고위급을 쳐야 하는데 그렇게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는 KFX를 둘러싼 석연치 않은 점들 역시 이러한 배경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야권 중진 의원의 얘기다.
“KFX 문제가 불거진 이후 청와대는 철저하게 함구하고 있다. 그런데 친박계 의원들조차 쉬쉬하며 눈치를 보는 모양새다. 이게 무엇을 뜻하겠느냐. 박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권력 심장부에서 결정됐을 것이란 얘기다. 이러니 뭇매를 맞고 있는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조차 입을 다물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 거액의 예산이 투입되는 무기 사업에 정치적 판단이 고려됐다면 국가의 근본을 흔드는 행위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방과학연구소 관계자도 “KFX를 놓고 여러 말들이 나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특정 방산업체를 위한 사업이라는 것이다. 업계에선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한 로비스트가 권력 실세들을 상대로 움직였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고 보탰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