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표가 총선 필승 카드이자 양날의 칼인 ‘통합 선대위’를 수용할지 여부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맞다. 옴짝달싹 못하게 됐다. 이제는 문 대표 스스로 남긴 숙제로 궁지에 몰렸다. 친노(친노무현) 패권주의, 보수니 진보니 하는 낡은 노선 투쟁, 정치 공학적 야권연대에만 의존하는 전략의 부재, 거대 양당 체제에서 비롯된 타성…. 2012년 대선 패배 이후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대선평가보고서>까지 냈지만, 무용지물이다. 그 중심에는 문 대표를 비롯한 친노계가 자리 잡고 있다.
“결국 통합 키워드다.”
당내 범주류 관계자는 단호했다. 흔들리는 문재인호의 위기 타개책을 묻자, 혁신보다 통합을 먼저 꺼냈다. “통합이 곧 혁신”이라고도 덧붙였다. 그만큼 절체절명의 위기다. 새정치연합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국의 출구전략으로 ‘국회 복귀’를 택하자, 여의도에는 문 대표가 통합 선거대책위원회 카드를 검토하고 있다는 말이 떠돌았다. 당내 총선 여론조사 시뮬레이션에서 “100석 이하에 그쳤다”는 소문이 나온 직후다.
문 대표에게는 국면전환을 위한 승부수가 절실했다. 특히 통합 선대위가 비노계 박지원 의원 등이 주장한 지도부 개편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분오열된 당을 단숨에 묶을 수 있는 승부수란 분석도 나온다. 당내 중간지대인 박영선 의원을 비롯해 김부겸 전 의원, 송영길 전 인천시장 등이 참여한 ‘통합행동’과 초·재선 개혁파 모임인 ‘더좋은미래’도 통합 선대위를 주창한다.
비주류 최대 결사체인 ‘민주당의 집권을 위한 모임’이나 이 중 일부 인사들이 구성한 ‘정치혁신을 위한 2020모임’도 통합 전당대회의 차선책으로 통합 선대위를 원한다. 비노계 한 의원은 4·29 재·보궐 선거 패배 등을 언급하며 “문재인 체제로는 안 된다는 게 여러 차례 증명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통합 선대위가 제 세력의 단일대오를 꾀할 수 있는 ‘초계파’ 카드라는 얘기다.
문 대표의 고심은 깊어졌다. 통합 선대위는 1%라도 지지받을 수 있는 모든 인사를 전진 배치하는 안이다. 각 계파가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카드인 셈이다. 이를 통해 제1야당 내부를 묶을 수만 있다면, 정의당과 ‘천정배 신당’ 등 당 외곽조직과의 연대작업도 한층 수월해진다. 친노계 관계자는 “문 대표는 ‘재신임 정국’에서 모든 것을 비운 것 같다”며 “차기 총선에서 패배한다면, 문 대표도 이제는 끝이다. 총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게 문 대표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 대표가 이를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자신의 미래를 예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통합 선대위는 ‘양날의 칼’이다. 일각에서 제기된 ‘문재인·안철수·박원순 연대’도 마찬가지다.
2002년 11월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가 단일화에 전격 합의한 모습.
과거 DJ·노무현 정부 10년은 ‘낮은 수준’의 통합인 연대의 산물이다. 1997년 대선 승리는 호남과 충청을 묶는 DJP(김대중+김종필) 연대의 결과물이었다. 여권 텃밭인 영남을 제외하고 호남과 충청을 포섭하는 지역구도 중심의 연대였다. 2002년 대선 땐 ‘노무현 바람’과 제3 후보인 ‘정몽준 바람’의 노·정 단일화가 형성됐다. 가치와 이념은 다르지만, 인물 연대로 ‘이회창 대세론’에 도전장을 냈다.
다만 노·정 단일화 때와는 달리, DJP 연대는 한국 정치의 거물급 간의 만남 또한 여권 분열(이회창 한나라당 대선후보와 이인제 국민신당 대선후보), 초유의 사태였던 IMF 금융위기 등과도 맞물렸다. 연대 및 통합으로 대선판을 뒤흔들었던 것은 사실상 노·정 단일화가 유일했다는 의미다. 문 대표의 통합 승부수가 통한다면, 2015년 판 ‘노무현 바람’을 재연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문제는 통합 선대위 구성 시 문 대표의 2선 후퇴가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문 대표가 선뜻 통합 선대위 카드를 선택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새정치연합이 통합 선대위 체제로 전환한다면, 현 최고위원회 역할과 충돌한다. 양자를 분리해 운영할 경우 문 대표는 ‘막후 정치’ 논란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통합 선대위가 ‘들러리 선대위’로 전락한다면, 안철수 의원 등 비주류가 참여할 명분도 실익도 없다.
2011년 11월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범야권 통합안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반대의 경우도 문제다. 문 대표가 권한을 모두 포기한다면, 당 주류와 비주류의 위상이 뒤바뀐다. 친노계 내부 반발이 불가피하다. ‘저승사자’ 조은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와의 공천권 문제도 걸려있다. 최악의 경우 ‘친노 대학살’로 이어질 공산도 크다. 2012년 대선 당시 손학규호의 퇴장도 비슷했다. 2010년 10·3 전대에서 당권을 잡은 손 전 고문은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야권대통합을 승부수로 던졌다.
결과는 미완에 그쳤다. 진보진영은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탈당파(통합연대) 간 진보통합을 꾀했다. 민주개혁진영은 민주당과 시민통합당(혁신과통합),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간 통합으로 민주통합당을 만들었다. ‘야권 중통합’에 그친 것이다.
이는 ‘비노 학살’로 이어졌다. 한명숙 당시 민주통합당 대표를 중심으로 이미경 총선기획단장, 우상호 전략홍보본부장 등이 ‘친노 중심의 공천’을 단행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누더기 공천으로 타격을 입은 민주통합당은 통합진보당과 야권연대를 꾀했다. 결과는 ‘박근혜 비대위원회’를 앞세운 새누리당의 대승. 다만 친노는 다수 의석을 점하며 ‘문재인 대선 후보 만들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문 대표는 그해 7월부터 시작한 지역순회 경선에서 13연승을 거두며 결선투표 없이 본선에 직행했다. 손 전 고문은 당시 기자들과 만나 통합 승부수와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측근들이 다 말렸다. 그냥 이대로 가면 대선 후보가 되는데, 왜 통합을 하느냐고 말했다. 일부 사람들은 ‘바보 손학규’라고 했다. 그렇지만 그게 시대정신이라고 생각했다. 손해인 줄 알지만, 통합을 외쳤다. 그렇게 하면 친노든 비노든 상관없이 국민들이 알아봐 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문 대표가 통합 선대위로 당내 권력의 ‘n분의 1’로 전락한다면, 제2의 손학규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 대표의 통합 승부수가 잘 되면 ‘노무현’, 잘 안 되면 ‘손학규’라는 얘기다. 문 대표 측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선대위로 권한을 이전하는 문제는) 문 대표 혼자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최고위원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최종적으로 결정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이에 비주류 박지원 의원은 “문 대표는 ‘내년 총선에 실패하면 자기는 정치가 끝이다’라고 말했는데, 내년 총선 실패가 빤히 보인다. 왜 자기도 죽고 당도 죽이려 하느냐”며 사실상 백의종군을 촉구했다. 한 평론가는 “문 대표가 혁신과 통합 없이 어떤 승부수를 던진다고 해도 통하지 않을 것”이라며 “안철수부터 박지원, 김한길까지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통합 리더십을 보여줘야만 2017년 대선까지 순항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대선에서 연대를 꾀한 노 전 대통령의 변방 이미지가 세대교체 키워드와 맞물리면서 포텐(잠재력)이 폭발했다. 그렇다면 문 대표는? 여전히 물음표다. 문재인 운명의 시계추는 지금도 흐르고 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