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투성이 상태로 김 씨가 발견된 장소를 남편 최 씨가 가리키고 있다. 작은 사진처럼 김 씨가 발견된 장소는 가까이 다가가기 전까진 작은 틈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5분 뒤 가게 앞으로 하얀 승용차 한 대가 멈춰 섰다. 앞서의 여사장은 “저기 들어오네. 저 분한테 물어보라”고 말했다. 머리가 희끗한 중년 남성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여사장에게 간단히 안부를 묻고, 빈 테이블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기자는 명함을 내밀고 가게를 찾아온 이유를 설명했다. 남성은 고개를 숙인 채 받아든 명함을 바라보기만 할 뿐, 한동안 말이 없었다. 수분 뒤 그가 말했다. “내가 그 사람 남편입니다.”
사고를 당한 김 씨의 남편 최 아무개 씨(69)는 그간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풀어놨다. 그는 수십 년 동안 운영하던 음식점을 부인의 입원비와 치료비를 위해 지난달 24일 주방장 부부에게 인계했다. 지금은 부인이 입원해 있는 병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병원 밖을 나오는 것은 집에서 몸을 씻고 근처 절에 기도를 하러 갈 때뿐이다. 큰딸과 교대로 부인 곁을 지키고 있지만, 최근에는 최 씨도 무리를 많이 했다며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기자와의 인터뷰에 앞서 최 씨는 먼저 정확히 짚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부인이 실수로 떨어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순 안전사고로 단정하기엔 이상한 점이 많다. 경찰 수사 결과를 기다리고는 있지만 한 달이 넘도록 실마리조차 잡히지 않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최 씨는 최초 사건에 대한 이야기부터 차근차근 설명해 나갔다.
최 씨가 밝힌 사고 당일은 이렇다. 지난 10월 8일, 최 씨의 부인 김 씨는 오후 7시 35분께 배달에 나갔던 그릇을 수거하러 가게를 나섰다. 평소 오토바이를 잘 타지 않는 김 씨는 이날도 400여m 떨어진 빌라를 향해 걸어서 나갔다고 한다. 그런데 13분 뒤인 오후 7시 48분께, 김 씨는 “그릇 찾을 빌라를 못 찾겠다. 정확한 위치가 어디냐”며 남편 최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 씨가 빌라 인근에 위치한 오피스텔 등을 통해 위치를 알려주자, 김 씨는 “알았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그는 가게로 돌아오지 않았다.
최 씨는 부인 김 씨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응답이 없었다. 그릇을 수거하러 나섰다 연락이 끊긴 일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최 씨는 이날 오후 8시 51분께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고, 가족 모두가 함께 사라진 김 씨를 찾아 나섰다. 신고를 접수한 수유3동파출소 경찰관 전원도 함께 나서 온 동네를 샅샅이 뒤졌다. 장수상 수유3동 파출소장은 “신고 접수 이후 교통사고 가능성을 높게 보고 길가 위주로 실종자를 수색했다. 큰 길부터 골목 사이사이 안 가본 곳이 없었다. 휴대폰 위치 추적도 그날따라 기지국이 여러 군데에서 잡혀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런데 다음날인 10월 9일 오전 7시 19분께, 김 씨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견됐다. 실종자 수색을 하던 수유3동 파출소 관계자가 한 빌라의 2.6m 높이의 옹벽(토사가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하는 구조물 또는 담벼락) 사이에서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던 김 씨를 발견한 것. 연락이 끊긴 지 약 12시간이 지난 뒤였다. 그릇을 찾으러 가야하는 오피스텔과 불과 100여m도 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었다.
김 씨가 쓰러져 있던 곳은 빌라 뒤편과 옹벽 사이에 위치한 작은 공간이었다. 최 씨는 “아내가 발견된 지점 근처 골목을 몇 번이나 돌아다녔는지 모른다. 이 동네에 오래 살았지만 가까이 가지 않고서는 그런 공간이 있는 것을 알 수도 없는 위치에 있었다. 특별한 구조물도 없는데다 어떠한 용도로도 쓰지 않는 곳이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옹벽 근처로 가까이 다가가기 전까진 작은 ‘틈’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고, 담배꽁초나 작은 쓰레기만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었다.
김 씨는 발견 당시 하늘을 보고 누워 있었으며, 희미하게 의식을 부여잡고 있었다. 긴급히 인근 병원에 옮겨져 확인한 결과, 김 씨의 부상 부위는 모두 왼쪽이었고 위중한 상태였다. 두개골 3군데와 쇄골, 어깨와 갈비뼈 6군데가 골절돼 있었으며, 갈비뼈가 폐를 찔러 출혈이 심했다. 사라진 소지품은 하나도 없었다. 주머니에 있던 현금 24만 원과 목걸이, 반지, 휴대폰 등이 그대로 있었다.
김 씨는 이날 오후 4시 30분께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로 옮겨간 이후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최 씨는 “아내는 부상이 심해 그 곳에서 밤새 있었던 것 같다. 8일엔 늦은 밤부터 비까지 내려 많이 추웠을 텐데…”라며 고개를 떨궜다.
그런데 최 씨는 이날 김 씨가 중환자실로 옮겨지던 찰나 이상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는 “아내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와 큰딸이 받았다. 자신을 경찰이라고 소개한 신원 미상의 남자가 ‘특별한 혐의점이 나타나지 않으면 실족사고로 처리된다’는 취지로 설명했다”고 주장했다. 최 씨는 “발견된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2.6m 높이에서 떨어졌는데 부상이 이렇게 클 수 있나”라고 반문하며 “아내는 건강했다. 매일 걸어서 그릇을 수거하러 다녔으며 지병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앞서의 장수상 파출소장은 “당시 실종자 발견 이후 강북경찰서로 모두 인계했다. 이후 강력팀과 여성청소년계에서 각각 사건과 실종신고를 처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오후 4시 30분께는 오전 오후 근무팀이 교대를 한 상태라, 상황도 파악하지 못한 오후 근무자가 그런 말을 할 수도 없다. 실제로 이날 근무자들을 상대로 확인했지만, 전화를 건 사람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최 씨는 “아내 핸드폰 통화 내역엔 파출소 전화번호가 찍혀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이 핸드폰은 서울강북경찰서 강력6팀으로 넘겨졌고 증거품으로 조사 중이다.
이날 ‘이상한 전화’를 받은 즉시 최 씨와 두 딸은 사고 지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김 씨가 쓰러져 있던 지점에서 피 묻은 각목과 쇠파이프를 발견했다. 두 딸은 담을 넘어 옹벽 아래로 내려가 비닐 봉투에 담아 왔고, 이를 경찰에 가져다주지 않았다. 최 씨는 “당시엔 경찰을 믿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의 현장 조사가 이뤄진 후였다.
최 씨 가족이 경찰에 범죄 가능성을 제기하며 항의했지만 당시 경찰은 “사고와 관련 없는 것으로 판단돼 수거하지 않았다”며 “증거품으로 넘겨주면 확실하게 밝혀드리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가 발견된 지 4일 뒤였다. 그리고 이날 서울강북경찰서는 보도 자료를 통해 “60대 여성이 실종 신고 된 후 12시간 만에 중상으로 발견됐다”며 “현장에서 혈흔이 묻은 각목과 쇠파이프를 발견하고 정확한 경위를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최 씨는 “경찰에 각목과 쇠파이프를 넘긴 건 아내가 발견된 지 10일 후인 지난 10월 19일”이라고 말했다.
김 씨가 발견된 주택가 진입로. 근처 CCTV에 사고 지점을 빠져나가는 차량 한 대가 포착됐다.
인근 골목에 CCTV가 드문드문 설치돼 있었지만 사고 지점 골목은 주변 CCTV가 아예 닿지 않는 곳이었다. 현장을 촬영할 수 있는 바로 옆 빌라 주차장에 CCTV가 설치돼 있었지만, 이는 작동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경찰은 지난 10월 8일 오후 7시 53분께 바로 옆 골목에 설치된 CCTV를 통해 사고 지점 골목을 빠져나오는 NF쏘나타 한 대를 발견했다. 현재 경찰은 이 차량에 대해 ‘범죄 차량’ 또는 ‘유일한 목격자’ 등 여러 가능성을 열어 두고 추적 중이다.
경찰은 현재 각목과 쇠파이프, 사고 지점에 있던 담배꽁초 등 증거품 26여 점을 국과수에 넘겨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 가운데 4점이 돌아왔지만 “혐의점 없음”으로 분석됐다. 또한 사고를 당한 김 씨의 부상 소견도 국과수 법의학팀에서 분석 중이지만 언제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다. 사건 발생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안전사고’였는지, 범죄와 관련된 ‘사건’인지 밝혀진 것은 없다.
이에 대해 강북경찰서 형사과장은 “각목과 쇠파이프는 현장 조사에서 관련이 없는 것으로 판단했고, 그 이후에 가족들이 따로 수거한 것”이라며 “가족들이 범죄 관련 사건 가능성을 제기해 ‘증거품으로 확인해 드리겠다’고 말씀 드리고 국과수에 보냈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각목과 쇠파이프가 아니라 알루미늄 창살과 침목 종류였다”고 덧붙였다. “(실족) 사고로 판단하느냐”는 질문에는 “수사 진행 중이라 말씀드릴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지난 9월 25일은 최 씨의 생일이었다고 한다. 최 씨는 “생일을 맞아 딸들이 ‘엄마, 아빠 해외여행 보내 주겠다’며 여행 준비를 하다 아내가 이렇게 됐다”며 “얼마 전 아내의 눈에 초점이 맞기 시작했다. 눈물만 맺혀 있던 눈에 생기가 돌아오자, 두 딸이 아내 앞에서 ‘엄마, 빨리 일어나서 아빠하고 해외여행 가야 하잖아’하고 울었다”며 고개를 떨궜다.
이날 인터뷰를 마친 최 씨는 “인근 절에 기도를 드리러 가야 한다”며 자리를 떠났다. 이후엔 “아내가 있는 병원으로 가 밤새 간호할 것”이라고 했다. 김 씨는 아직도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지난 11월 8일부터 미음을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담당 의사는 어려운 고비는 넘겼지만 두세 달 더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평범했던 한 가족의 삶이 단 하룻밤 새에 눈물과 기다림으로 바뀌어 있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